외제차 리스업체 주소지가 군청?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6.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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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업계, 유령 지점 개설 등 편법 영업 실태 드러나…지자체에 세금 확보해주는 조건 내걸어

ⓒ 시사저널 박은숙
독일 자동차 BMW의 리스 전문 업체인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이하 BMW파이낸셜)는 얼마 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지점을 설립했다. 하지만 실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사업자 등록을 했음에도 상주하는 직원이 전혀 없었다. 임대한 사무실 면적도 4㎡(약 1평)가 전부였다. 사업자등록증에 표시된 주소로 가보니 BMW의 국내 딜러사인 동성모터스 대리점이 있었다. 대리점 직원들은 “그런 곳은 없다. BMW파이낸셜의 지점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라고 말했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지점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수천 대의 법인 리스 차량이 해마다 이 지점을 통해 등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리스 차량은 사용자(리스회사)의 주사무소(본점)가 있는 지자체에 등록해야 한다. BMW파이낸셜의 본점은 현재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다. 강남구청에 등록해야 정상이다. 본점과 실제 자동차를 관리하는 사용 본거지가 다를 경우 등록 관청을 변경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있다. BMW파이낸셜은 ‘페이퍼 지점’을 내세워 사용 본거지를 경남 창원으로 바꾸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자체별로 채권 매입 비율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서울은 취득세 7%와 별도로 차량 가격의 20%에 달하는 도시철도채권을 매입해야 한다. 그런데 지방에서 등록하면 6% 안팎의 지역개발채권만 사면 되므로 유령 법인을 내세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지점 다수

이런 방법으로 BMW파이낸셜이 지난 5년간 등록한 차량은 2만2천여 대에 달한다. 서울 강남구에 내지 않은 세금만 1천4백82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용 본거지를 옮기면서 매입하지 않은 20%의 도시철도채권 액수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강남구청측은 최근 세무조사를 통해 문제를 모두 파악했다. 조만간 누락한 세금을 모두 추징할 예정이다.

토요타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이하 토요타파이낸셜)와 폴크스바겐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이하 폴크스바겐파이낸셜)의 사례는 더했다. 두 회사의 지점 주소는 현재 경남 함양군청의 종합민원실로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상주 직원은 물론이고, 사무실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차량을 등록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토요타파이낸셜은 지난 5년간 4천7백45대를 함양군청에서 등록했다. 폴크스바겐파이낸셜 역시 9백3대를 등록했음에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함양군청이 민원실을 지점으로 쓸 수 있도록 두 회사에게 특혜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함양군청은 지난 2011년 2월 이철수 함양군수 명의로 ‘무상 사용 승낙서’를 작성했다. ‘군청 1층 종합민원실 내에 민원인이 이용하는 공간의 일부를 두 회사의 지점으로 사용하는 것을 승낙한다’라는 내용이었다. 보증료나 임대료도 없었다. 이로 인해 함양군은 막대한 규모의 취득세와 지역 발전 기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리스업체 역시 20%에 달하는 도시철도채권을 매입하지 않음으로써 수백억 원대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었다. 강남구청은 이 거래 역시 편법으로 보고 세금을 추징할 예정이다.

일부 지자체는 업체에 리베이트성 경비 제공

자동차 리스업계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 강남구청의 조치에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국내 리스업계의 이익단체인 여신금융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행법상 법인은 사업자등록증 등을 제출하면 본점 이외의 장소에서도 차량 등록이 가능하다. 신청 내용이나 서류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가 받아들인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해명했다. 업계에서는 오히려 서울시의 채권 매입 비율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세금 부담이 낮은 지자체에 등록하면서 절감한 리스 비용은 결국 이용자의 혜택으로 돌아가게 된다. 서울시의 채권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현행법상 차량의 사용 본거지는 자동차를 주로 보관·관리 또는 이용하는 곳으로 명시되어 있다. 리스업계가 그동안 실체도 없는 유령 지점을 통해 차량을 등록한 만큼 법적 논란이 예상된다. 이성섭 변호사는 “지점 주소지를 사용 본거지로 해서 차량 취득세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특히 지자체가 특정 기업에게 특혜성 지원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일부 지자체는 리스업계에 리베이트성 경비를 제공하기도 했다. 글로벌 오토 리스 전문 업체인 오릭스캐피탈코리아의 경우 현재 경남 창원과 대구 등에 다섯 곳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릭스는 해마다 대구시로부터 ‘세수 증대 지원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지원받고 있다. 액수를 떠나 공공 기관인 지자체가 특정 기업에게 리베이트성 경비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실제로 지자체와 리스업계의 ‘이상한 동거’는 현재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제주도는 최근 현대캐피탈에 특혜성 지원을 하면서 지자체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현대캐피탈은 올 초까지 경남 창원시 중앙동에 있는 지점을 통해 차량 등록 업무를 대행해왔다. 하지만 지난 2월 사용 본거지를 제주도로 이관했다. 이에 맞추어서 제주도는 자동차 취득세를 기존의 7%에서 5%로 조정하는 내용의 조례를 개정했다. 다른 리스업체의 제주도 진출을 막은 의혹도 있다.

한 리스업체 관계자는 “제주 지점을 만들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았다. 현대캐피탈과 제주도가 모종의 거래를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행정안전부까지 나서면서 취득세 인하 문제는 ‘없었던 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법인 차량과 달리 개인 차량은 사용 본거지 이동이 쉽지 않다. 현대캐피탈의 경우 실제 사용자(99%)와 제주도민(1%)이 공동으로 차량을 소유하는 형식으로 사용 본거지를 바꾼 사례를 여러 건 포착한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지자체의 리스업체 모시기 경쟁이 큰 문제

KT 계열인 KT캐피탈 역시 최근 경남 창원에서 부산으로 지점을 이전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특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KT캐피탈과 부산시의 MOU에 따르면 KT캐피탈은 모든 리스 차량의 사용 본거지를 부산으로 이전하기로 약속했다. 이미 다른 지역에 등록한 차량 역시 빠른 시간 안에 부산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대가로 부산시는 리스 차량 전담 창구를 개설해줄 뿐 아니라 연간 납부 금액의 0.5%를 포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심지어 주소 이전 수수료를 시에서 선지원한 후 포상금에서 차감하기로 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했다. 이에 따른 특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스업계 안팎에서는 자동차 리스업체를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의 경쟁 과열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정부는 최근 전국 어디에서건 차량 등록이 가능한 ‘전국 무관할 자동차 등록제’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 간에 ‘리스업체 모셔가기’ 경쟁이 벌어졌다.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 부작용이 표면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남구청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서울의 구청 주변에는 지역 군청이나 시청의 지역 사무소가 들어서 영업 경쟁을 벌이고 있다. 왜곡된 행정은 결국 선량하게 20%의 채권을 구입하는 개인을 피해자로 내몰 수 있다는 점에서 시정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수천억 원대 세금 추징 가능성…초대형 소송 터질 수도 

서울 지역 구청과 리스업계 간 신경전이 확대되면서 대규모 소송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등록된 자동차 리스사 25곳 중 24곳의 본점이 현재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중구 등에 있다. 이 중 10곳이 현재 유령 지점을 통해 세금을 줄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머지 회사 역시 비슷한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수천억 원의 세금을 빼앗긴 서울 지역의 지자체는 세금 추징과 같은 강경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리스사들이 본거지를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매입하지 않은 채권까지 포함하면 소송 금액은 1조원을 상회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히 주요 리스회사의 본점이 몰려 있는 강남구청의 움직임이 완강하다. 이미 행정안전부(행안부)에 세금 추징을 위한 유권 해석을 서울시를 통해 보내놓은 상태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리스회사의 편법 영업 관행은 정당하게 20%의 채권을 매입한 사람들에게 역차별이 될 수 있다. 행안부에 의뢰한 답변서가 오는 대로 세금 추징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리스업계의 반발 또한 예사롭지 않다. 강남구청 등이 세금을 추징하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반응이다. 이를 위해 최근 공동 대응 전선을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모처에서 모임을 갖고 공동 대응 입장을 확인했다. 소송을 맡을 법무법인 역시 선임해두었다”라고 귀띔했다.

때문에 행안부의 결정에 따라 전쟁의 구도 역시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행안부가 강남구청 등의 손을 들어줄 경우 최대 1조원대의 소송이 발생할 수도 있다. 행안부는 현재 서울시가 보낸 유권 해석 내용을 심도 있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판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의 지자체가 거액의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 리스업계는 다시 지방의 지자체에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리스업계는 현재 “차량 등록 신청을 받은 지자체는 문제가 있으면 거부할 법적 의무가 있다. 지자체가 관련법상 정당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등록을 받아주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거액의 추징을 당할 경우 지자체 쪽에 보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행안부 역시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왜곡된 세금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행안부가 신속히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행안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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