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 각오하고 그린 좀 더 아름다운 세상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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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행위미술의 이론과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명해

행위미술 이야기 - 윤진섭과의 대화 이혁발 지음 사문난적 펴냄 304쪽│2만5천원
20여 년 전 행위 작가 김석환씨가 요트를 끌고 지리산 두류봉에 올라갔다.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방식의 하나로써 그 행위를 한 것인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미친 놈”이라고 욕했다. 요즘에는 행위 작가를 두고 그렇게 매몰차게 말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지난 현충일, 한강변의 한 야외 공연장에는 그런 행위 작가와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어우러져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방송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행위 작가를 보는 듯한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행위미술이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지 알려주는 <행위미술 이야기>를 쓴 미술가 이혁발씨. 이씨는 회화·설치·사진 등 다양한 장르에서 현장 활동가이자 행위미술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낀 대로 “행위미술은 발상의 전환, 신선한 아이디어로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해주며, 삶을 사유하게 만들고,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좀 더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또 다른 행위미술 작가인 윤진섭씨와 대담을 나누는 형태로 정리해 행위미술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체험을 할 수 있게 꾸몄다. 우리의 전통 제례나 무속 신앙 같은 제의적 의식으로부터 시작해 현대적 퍼포먼스나 사회적 매체인 소셜 미디어와 결부된 행위미술의 변화를 거쳐, 미래의 유전공학·인공지능·생명공학과 결부된 행위미술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한국 행위미술의 이론과 역사 전체를 탐색하고 있다.

1970년대를 전후해 서양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도 본격적인 행위미술이 펼쳐졌다. 지금에는 촌스러워 보이는 것들도, 당시에는 현실에 대한 풍자였고 당당한 발언이었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고, 언론 지상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윤진섭 작가는 “세계에 대한 주체적 참여자로서의 인간은 오로지 몸을 통해 세계를 파악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을 보고, 피부로 접촉하고, 코로 냄새를 맡음으로써 세계 속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존재의 생생한 느낌을 맛보는 것이다. 이 느낌, 우리의 몸이 바깥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각으로 느끼는 이 느낌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이다. 그것은 항구적인 것이다”라고 행위미술의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이 책에는 당시의 사진과 신문 등 자료들도 게재해 눈길을 끈다. 5백50여 장에 이르는 생생한 현장 사진 자료들은 일회성과 우연성을 그 특징의 한 축으로 삼는 행위미술 작품들을 시각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진 자료에 덧붙여 작가의 기획 의도나 작품의 전개 과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작가 지망생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행위미술의 세계를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윤작가는 “퍼포먼스는 무용이나 연극, 오페라와 같은 공연예술과 달리 대본에 의한 ‘모체(matrix)’가 없이 진행되는 ‘실연 예술(live art)’이다. 퍼포먼스 작가들은 이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라며 미래의 행위미술가들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꽤나 공들여 책을 엮은 이혁발 작가는 “예술가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야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위 작가들같이 순수 예술혼에 빠져 있는 이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그것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더욱더 많아지면 세상은 좀 더 싱싱하고 풍요로운 아름다움의 세계로 갈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다”라며, 출간의 의미에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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