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들 몰려드는 긴장의 바다 서해, ‘신냉전 체스판’ 되는가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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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서 열강들의 각축전이 시작되었다. 오는 8월 중국이 첫 항공모함을 서해에 배치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일본은 이지스함을 배치할 것을 검토하고, 미국·러시아도 각각 계획을 발표했다.

서해가 일본·미국·중국 등 열강들이 충돌하는 ‘격전장’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8월 취항할 첫 항공모함 ‘바랴그’의 활동 장소로 서해를 택했다. 일본은 이지스함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지난 5월30일, 일본 방위성이 북한의 미사일 궤적을 더 쉽게 탐지할 수 있도록 ‘발사 지점 주변 해역’인 서해에 이지스함을 배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역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서해에 항공모함을 보내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이지스함의 서해 파견을 검토하고 있는 일본 방위성은 겉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탐지를 이유로 들고 있다. 이지스함은 최첨단 센서와 정보 시스템, 미사일 등을 갖춘 함정으로 고성능 레이더의 경우 최대 1천㎞ 이상 떨어진 곳의 항공기도 추적할 수 있다. 일본은 현재 한 척당 건조 비용이 최대 2조원에 달하는 이지스함을 여섯 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물론 공해상에서만 이루어지는 감시 활동이라고 하지만, 일본의 이지스함이 서해에 들어오면 이는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 된다. 일본 내부에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일 관계의 특수성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레이더 반경이 1천㎞나 되는 이지스함이 굳이 서해까지 진입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시아 중시’ 밝힌 미국의 ‘피봇 플레이’

미국은 최근 회전축을 뜻하는 ‘Pivot(피봇)’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왔다. 미국 국방 전략의 전환을 표현하며 쓰는 말이다.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6월1일부터 아시아 순방길에 나섰다.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본 등 우방국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국방 전략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6월1~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국방 관련 관료·전문가 회의인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한 파네타는 “2020년까지 미국 군함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되는 비율을 현재의 50%에서 60%로 늘리겠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전략의 중심축이 ‘아시아와 태평양’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힌 셈이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RAS) 산하 세계 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IMEMO)의 알렉산더 딘킨 소장은 미국의 피봇 플레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중국을 군사적으로 억눌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 중국은 엄청난 경제적 이익과 그것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군의 전략도 그렇고 원자력잠수함 역시 대서양이 아닌 중국을 고려해 태평양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사일 방어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미사일 공격을 격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서해는 그동안 남중국해에 비해서 덜 주목되었다. 그러나 이제 바뀌었다. 미국의 폭스뉴스는 지난 6월4일 “미국 해군이 2014년 진수되는 스텔스 구축함을 서해에 배치할 방침이다”라고 보도했다. 서해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남중국해에서의 갈등이 서해의 긴장을 높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남북 간 북방한계선(NLL) 갈등 등 서해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런 사고가 거꾸로 남중국해의 갈등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결국 서해에서 벌어지는 열강들의 각축전은 남중국해-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제해권의 패권을 누가 갖느냐 하는 것과 연결된다.

중국은 ‘평화적’이라는 의도를 강조하고 있지만 중국 군사력의 현대화 속도는 주변국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국방비를 절감하지만 중국은 지난 10년간 연간 12%의 국방 예산 증가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물론 실제로 어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군사력 쥔 중국, 호전적 경향도 보여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중국의 2000년 국방비가 약 3백억 달러(35조1천억원)였지만, 2010년에는 약 1천2백억 달러(약 1백40조4천억원)까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SIPRI는 중국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적인 숫자에 50% 정도를 덧붙여 국방 예산을 추측한다. 중국은 국방 예산을 연구·개발과 같은 기본적인 항목을 제외하고 발표하는데, 만약 중국 정부의 최근 발표에 이러한 항목을 추가할 경우 2012년 중국의 국방 예산은 약 1천6백억 달러(약 1백87조2천억원)로 추정된다. 지금의 추세가 유지된다면 중국의 국방 예산은 2035년 이후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

중국의 군사력 변화를 이야기할 때 미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A2/AD(접근 금지/접근 거부) 전략을 원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A2/AD 전략을 수행하려면 기술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수천 기의 정확한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대함미사일을 장착하고 최신 제트기와 잠수함, 장거리 레이더와 감시 위성 그리고 미군의 눈을 어지럽히는 사이버 무기와 우주 무기 배치 계획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핀 포인트로 지상과 함대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을 강화하고, 사이버 무기와 대위성 병기에 의해 타국의 군사 자원을 파괴하거나 무력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국군의 현대화 방향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평택 해군기지와 불과 6백㎞ 거리인 중국 북해함대에 배치될 것으로 추정되는 항공모함 ‘바랴그’를 서해와 남중국해에 띄우고 2천7백㎞ 떨어진 해상의 항공모함 갑판에 탄두를 유도하고 명중시키는 신형 탄도미사일 ‘둥펑’의 실전 배치 같은 것을 뜻한다. 중국 동부에서 이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 미국의 항공모함이나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와 한국, 더 나아가 괌의 미국 공군기지까지 표적이 될 수 있다.

국방비의 규모 그리고 군사력의 근대화로 손에 넣은 힘을 어떻게, 누가 사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중국 군사력에 대한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불러온다. 중국 관영 영문판 신문인 글로벌타임스는 남중국해 갈등이 불거지던 2011년 10월 사설을 통해 ‘중국에 대한 대응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대포 소리가 울려퍼질 각오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해상 분쟁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관영 신문의 이런 노골적인 표현과 해군의 열혈 사령관들의 생각이 크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2005년에 정리한 ‘군사 전략의 과학’이라는 글에도 ‘중국의 군사 전략의 본질은 적극적인 방어이지만 만약 적이 우리의 국익을 해칠 경우 인민해방군의 임무는 선제공격을 해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에서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서해에 끌어들인 장본인은 한국이다”라며 강한 반한 감정이 일어났었다. 이를 생각해볼 때 서해에 미국과 일본 함정이 늘어나면 중국 또한 군사력을 서해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서해가 전쟁의 바다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러시아 공군이 마음만 먹으면 20분 이내에 일본을 지구에서 소멸시킬 수 있다.” 중국의 환구시보가 지난 2월15일 러시아 퇴역 소장 출신인 군사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기사는 자극적이다. 기사의 배경에는 한 사건이 있었다. 일주일 전인 2월8일, 러시아 공군의 전투기와 폭격기, 공중급유기, 조기경보 통제기 등 최소 다섯 기가 일본 영공에 접근하자 일본 자위대의 전투기가 추적해 쫓아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을 협박하는 발언이 러시아 언론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의 환구시보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러시아 군부의 대일관도 흥미롭지만 중국이 러·일 사이에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도 관심을 모은다.

러시아, 강력한 오일머니로 재무장 중

중국과 러시아의 공통 관심은 서해에서 만났다. 지난 4월22일부터 27일까지 6일간 중국과 러시아 해군은 ‘해상 연합 2012’라고 명명한 공동 훈련을 실시했다. 장소는 중국 해군 북해함대 사령부가 있는 칭다오였다. 한반도와는 서해를 끼고 마주보고 있는 장소이다.

이 대규모 공동 연습에 중국 해군과 러시아 해군 모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참가했다. 중국측 사령관인 딩이핑 중장은 “중국 해군이 외국 해군과 실시한 공동 군사 훈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훈련 내용도 풍부하다”라고 말했다. 중국 해군은 이번 훈련에 많은 전력을 투입했다. 북해함대뿐만 아니라 동해함대·남해함대의 함정도 참가했다. 서해를 중심으로 투입될 중국의 첫 항공모함 ‘바랴그’가 5번째 시험 운항을 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러시아 해군 역시 ‘항공모함 킬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순양함 ‘바랴크’를 비롯해 순양함 세 척, 보조 함정 세 척 등 총 일곱 척을 참여시켰다.

러시아군은 내부 정비를 완비하면서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원유 등 에너지 자원으로 국고 수입이 윤택해지면서 국방 예산은 해마다 20~30%의 인상적인 성장률을 보였다. 외부에 공표된 예산에는 연금, 연합 군대 관련 경비, 무기 수출 대금 등이 빠져 있다.

총액도 적지 않지만 인상률이 눈에 띈다. 2005년 발표된 국방 예산은 1백87억 달러(21조9천억원)로 한국 수준에 불과하지만, 기타 비용을 추가하면 2백58억 달러(30조2천억원), 구매력 평가로 환산하면 5백91억 달러(69조1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2007년 오일머니 유입으로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 달러(1천1백70조원)를 돌파했지만, 미국은 국방 예산만 5천억 달러에 달했다. 따라서 러시아는 신형 전략 핵미사일 등 소수 정예 무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의 공식적인 군사비 액수는 2009년 3백83억 달러(44조8천억원)로 GDP 대비 3.1%이다. 그러나 관련 예산까지 포함하면 2009년 약 5백72억 달러(66조9천억원)로 GDP의 4.63%에 이른다. 해마다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군사비를 투자하는 셈이다.

미국은 ‘피봇’을 선언하며 ‘아시아-태평양’으로 눈을 돌렸다. 서해에 항공모함과 스텔스 구축함 등이 뜰 판이다. 이에 맞서 신경이 곤두선 중국은 러시아를 서해로 불러 합동 훈련을 실시했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을 이유 삼아 서해에 이지스함을 파견하려 하고 한국 정부는 이를 용인하고 나섰다. 서해라는 체스판을 두고 열강들의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중국해 논의하자"는 미국 손 뿌리친 중국의 속셈 

1년 전인 2011년 6월, 베트남 하노이와 호치민에서는 ‘반중국 시위’가 펼쳐졌다. 남중국해의 영유권 문제 때문이었다. 5월 말, 베트남 중남부 해안에서 약 1백20㎞, 중국 하이난 섬에서 남쪽으로 약 6백㎞ 떨어진 지점에서 베트남 탐사선이 해저 자원 조사를 실시했는데, 중국의 감시선이 활동을 방해하면서 충돌이 시작되었다. 중국과의 충돌이 발생한 직후 베트남 해군은 남중국해에서 실탄 훈련을 실시했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으로 ‘징병령’까지 시행하며 중국에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

 

필리핀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다. 올해 3월 필리핀 석유 탐사선이 중국의 감시선으로부터 방해를 받았다. 게다가 중국이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 남사군도 일부 섬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군사 시설을 만들자 필리핀 국민의 반발이 극에 달하고 있다. 베트남과 필리핀의 군사력은 중국에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중국에 반발할 수 있는 것은 미국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아세안(ASEAN) 국가의 등 뒤에는 미국이라는 큰형이 서 있다.

 

2010년 7월 아세안 지역 포럼(ARF)에 참석한 클린턴 국무장관은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는 미국의 국익이다”라고 말했다.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에게 강한 직구로 승부했다. 이후 미국은 함대를 이끌고 베트남·필리핀과 잇따라 합동 훈련을 가졌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필리핀과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일본·한국·타이완과 연결해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것이 미국의 주요 전략이었다.

 

미국이 중국을 무작정 몰아붙인 것은 아니다. 대화의 제스처를 먼저 보인 쪽은 미국이었다. 2011년 6월7일 천빙더 중국 인민군 총참모장은 홍콩 상보와의 인터뷰에서 “5월에 미국 정부에서 외무장관-국방장관 수준의 2 대 2 협의에 대한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라고 밝혔다. 미국이 2 대 2 협의를 통해 미·중 안보 대화를 최상위 논의 자리로 ‘격상’하려 시도했지만 중국이 단호하게 거절한 셈이었다. 더는 미국과 군사 교류를 하고 싶지 않다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강한 의사 표시였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미국과 중국의 남중국해·서해에서의 갈등은 쉽게 꺼지지 않는 불씨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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