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밑에서 캐낸 ‘서울메트로’ 비리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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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뻔했던 의혹들, 박원순 시장 취임 후 자체 감사로 드러나…김익환 사장 사퇴 압박 카드로 읽혀

최근 서울시 안팎에서 박원순 시장(왼쪽)이 오세훈 전 시장(오른쪽)때 임명한 산하 기관장 물갈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가운데 건물은 서울메트로 본사. ⓒ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해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시장이 서울 시정 업무를 한창 보고받고 있을 때, 서울시는 산하 기관인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에 대한 특별 감사에 들어갔다. 감사 기간은 11월21일부터 12월9일까지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시장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서울시 안팎에서 “박원순 시장이 오세훈 시장 때 임명한 산하 기관장 물갈이에 나선 것이 아니냐”라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당시 특감을 통해, SBA는 지난해 초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헤드헌팅업체인 ㅇ사에서 추천한 변보경 후보를 단독으로 이사회에 제청했고, 수수료 명목으로 변대표의 연봉에서 20%인 2천5백30만원을 ㅇ사에 주었던 사실 등이 드러났다. 변대표 채용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졌던 것이다. 

특히 “헤드헌팅업체인 ㅇ사의 대표인 유 아무개씨가 오세훈 전 시장과 교양서를 함께 저술하는 등 친분이 있다”라는 주장까지 나와 논란이 벌어졌다. ㅇ사의 유대표는 오 전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창의 서울, 아침 특강’을 한 적이 있고, 서울시가 수여하는 상을 받았던 인물이다.

인사 비리 등 각종 의혹 제기돼

당시 오 전 시장측은 “ㅇ사의 대표와 평소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내는 사이가 절대 아니다. 교양서의 공저자가 된 것은 오 전 시장의 강연 내용을 출판사에서 엮은 것일 뿐이다. 특히 오 전 시장은 재임 시절, 시와 산하 기관 간부 인사에 헤드헌팅사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헤드헌팅사를 이용했던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히며 불쾌한 감정을 강하게 드러냈다. 지난 5월26일, 오 전 시장은 6개월간의 일정으로 영국에 연수를 떠났다. ㅇ사측에서도 “서울시에서 먼저 의뢰가 들어와 적임자를 추천했을 뿐이다”라며 서울시의 인사 비리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시 내부에 대한 자체 감사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동시에 다른 산하 기관 등으로 감사 범위도 확대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18일 “SBA에 이어 서울메트로와 SH공사의 대표 선임 과정에 대해서도 감사에 들어간다”라고 발표했다. 특히 ㅇ사가 서울메트로와 SH공사 사장 공모에도 후보자를 추천했는데, 모두 임원추천위원회를 거쳐 사장으로 임명되었던 점이 주목되었다. 시는 2009년 SH공사, 2010년 서울메트로 사장 등이 임명된 인사 추천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감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세훈 시정(市政)’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쇄신을 천명한 셈이다.

실제로 임기를 2년이나 남겨놓은 변보경 SBA 대표는 지난 3월2일자로 사퇴했다. SBA에서 ㅇ사에 2천5백30만원의 수수료를 지급한 것 등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5월7일 포스텍기술투자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전영씨가 후임 대표로 내정되었다. SH공사 역시 사장 임기 만료 즉시 새로운 사장을 임명하는 절차에 들어갔고, 지난 5월6일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종수씨를 사장으로 내정했다. 어찌 보면, 오 전 시장 시절 임명된 서울메트로 김익환 사장만 ‘외로운 섬’으로 남게 된 모양새이다. “서울메트로 안팎에서 김사장의 향후 거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서울시 감사관실은 지난 4월 말,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 대한 자체 감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시사저널>은 이 감사 보고서에 실린 전체 내용 가운데 일부를 입수했다. 서울메트로의 인사 비리 의혹과 함께 비위 직원 감싸기 의혹 등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김익환 서울메트로 사장(오른쪽)이 지난 2월2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지하철 1호선 사고의 원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사장의 비위 직원 감싸기 논란도 불거져

우선 감사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인사 비리 의혹부터 살펴보자. 이미 언급한 대로,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메트로·SH공사·SBA 사장은 오세훈 시장 시절 헤드헌팅사인 ㅇ사로부터 추천을 받아 임명되었다. 감사 보고서에서는 이에 대해 ‘전문 인력을 추천해주고 연봉의 20%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 헤드헌팅사는 우수 인력이 남아도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보편화되기 어려운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문제의 ㅇ사 대표(유씨)는 오세훈 전 시장과 교양서를 공동 저술하는 등 친분이 있는 자에 해당되어 형법상 제3자 뇌물죄에 해당되는 인사 비리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서울메트로 김익환 사장은 2010년 8월 취임 이후 매달 헤드헌팅업체 ㅇ사에 ‘수백만 원’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지금까지 ‘뇌물’에 가까운 소개 수수료 ‘수천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라고 적시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헤드헌팅사인 ㅇ사가 ‘김사장으로부터 2천8백만원만 수수료로 받았다’라고 주장하고 있어, 좀 더 면밀한 감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헤드헌팅업체 ㅇ사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회사 업무와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다”라고만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메트로측은 “지난 2010년 6월29일부터 7월16일까지 1차 사장 공모를 했으나, 적격자가 없었다. 이에 서울시에서 헤드헌팅사에 후보자 추천 의뢰를 하게 되어 김사장이 선임되었다”라고 밝혔다.

김사장이 비위 직원을 감싸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보고서에는 ‘김익환 사장이 지하상가 임대차 계약서에 부당 특약을 멋대로 삽입한 후 사장 직인까지 임의로 날인한 직원을 징계하기는커녕 오히려 승진시켜 본사의 주요 부서에 배치하는 등 공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위를 감싸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의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7월4일 당시 서울메트로 직원 오 아무개씨는 화장품회사인 ㅇ사와 네트워크형 화장품 전문 매장 60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임대차 계약서 표준안 제23조에는 ‘동일 역 동일 업종 제한 폐지’라고 규정되어 있다. 한마디로 한 지하철 역사에 동일한 업종의 가게 여러 개가 영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씨가 ㅇ사에만 특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감사 보고서는 ‘ㅇ사는 ㅇ사가 입점한 역에 다른 화장품회사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오씨에게 로비를 하여 ‘제23조와 관련하여 ㅇ사가 입점한 역에는 타사 브랜드 입점을 제한’토록 부당 특약을 추가시켜 계약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로비를 받은 오씨가 서울메트로 재무팀 관계자를 시켜 (당시 김상돈) 사장의 직인을 무단으로 가져오게 한 다음 자신이 멋대로 부당 특약을 삽입한 계약서에 임의로 날인하여 계약 효력을 발생시켰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 내부에 도덕 불감증 팽배”

2년이 지난 2010년 8월 사장으로 취임한 김사장도 오씨의 부당 특약 삽입 사실을 보고받고, 그를 사법 당국에 고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메트로의 인사 및 징계 규정에 따라 중징계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오씨를 4급에서 3급으로 승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본사의 주요 부서에 영전 전보 조치를 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서울메트로 직원들 사이에서 도덕 불감증과 한탕 만능주의를 팽배시키고 있으며, 사법 당국의 수사가 끝난 다음 오씨의 재산이 갑자기 늘어나 ㅇ사에서 사후에 뇌물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게 나돌았다”라고도 말했다.

서울메트로측은 이와 관련해 “오씨를 경찰에 사문서 변조 위조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으나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하지만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가 있기 때문에 서울메트로 내에서 자체 징계 절차에 들어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4월6일 오전 9시15분께 일어난 지하철 2호선 정지 사고 현장. ⓒ 뉴시스
서울시의 자체 감사를 통해 서울메트로측이 지하철 사고 원인을 거짓으로 발표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지난 4월2일, 김익환 사장은 “안전한 지하철과 신속한 서비스를 실현하겠다”라며 안전관리단을 신설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그런데 불과 나흘 후인 4월6일 오전 9시15분께 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잠실 방향으로 운행 중이던 열차 서너 대가 1시간40분가량 정지되었고, 그날 오전 10시50분께에야 운행이 재개되었다. 당시 언론에서도 이 사고를 크게 보도한 바 있다. 사고 당시 서울메트로는 사고 원인으로 “강풍으로 인해 노후화된 전선이 늘어지면서 운행이 중단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사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사고 원인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였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당시 강풍은 순간 최고 초속 6m 이내였다. 사고 구간은 자동 열차 운전 장치(ATO·Automatic Train Operation) 시범 구간으로, 노후화된 시설은 새로운 시설로 이미 교체되어 (서울메트로측이) 거짓 변명을 하였다. 전동차가 멈추어 선 원인도 전기 소모량이 많은 ATO를 탑재한 열차를 해당 사고 구간인 변전소와 변전소 사이에 세 대 이상 투입하는 바람에 발생한 과부하로 인한 정전으로 운행이 정지된 인재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강풍에 의한 천재지변이라고 거짓말하였다. 과부하 정전으로 인한 운행 중단은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복구해야 하는데도 늑장 대응하여 시민들이 선로로 걸어 출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보고서에서는 이에 대해 ‘김익환 사장은 서울메트로를 경영 혁신하기는커녕 지하철 운행 중단 사고 원인을 거짓 호도하고 사후 처리도 늑장 대응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측은 이와 관련해 “사고 당시 사고 원인을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발표했던 것은 아니다. 사고 이후 한 달 넘게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강풍 때문은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사고 구간은 변전소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과부하에 의한 정전으로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며, 시설이 노후화했던 것도 아니다. 정확한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서울시 등 유관 기관에 보고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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