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곳곳에 ‘일제 잔재’가…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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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참전 용사였을 고인의 비석에 계급이나 호칭 대신 ‘징용’이란 용어가 새겨져

서울국립현충원 겨레의 길에 있는 리기다 소나무. 원산지는 아메리카이다(위). 아래는 서울국립현충원의 묘역에 ‘징용’이라 쓰여 있는 비석. ⓒ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 6월6일, 제57회 현충일을 맞아 수많은 참배객이 국립서울현충원(서울 동작구 흑석동)을 찾았다. 1955년 국군묘지로 시작해 1965년 국립묘지로 승격한 서울현충원에는 항일 독립 투사, 한국전쟁 참전 용사, 순직한 군인·경찰 등 수많은 순국 선열이 안장되어 있다. 그러나 <시사저널> 취재 결과, ‘민족의 성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현충원 곳곳에서 일제의 잔재가 버젓이 남아있는 현장이 확인되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는 서울현충원을 관리·운영하는 국방부와 서울현충원 당국의 무신경과 안일한 일 처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서울현충원에는 5만5천여 구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묘소마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한국전쟁 참전 용사의 경우 앞면에는 계급과 이름이, 뒷면에는 사망한 날짜와 장소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의 비석에는 계급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징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말대로 하자면 한국전쟁 참전 용사가 아닌 한국전쟁 ‘강제 징용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해외 동포 유해 발굴 사업을 벌이고 있는 ‘사단법인 홍화평설립준비위원회’ 전재진 사무총장은 “징용이라는 용어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대본영이 국가총동원법을 발동해 조선인을 강제 연행해 군이나 군사 시설에 강제 배속한 경우에나 쓸 수 있는 말이다. 한국전쟁 때 국군을 모집한 수단이 징용이 아닌데, 어떻게 한국전쟁에 참가한 사람을 ‘강제 징용자’로 만들어버리는가. 일제의 잔재인 ‘징용’이라는 단어가 비석에 새겨져 있는 것은 호국 선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계급 확인이 어렵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쓸 수 있는 ‘학생(學生)’이나 ‘선열(先烈)’로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도로 ‘겨레의 길’ 양쪽으로 왜송도 ‘빽빽’

서울현충원 곳곳에 심어져 있는 왜송(倭松·리기다 소나무)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왜송은 일제 강점기와 1960년대 녹화 사업을 거치면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목재로도 사용할 수 없고 외관상으로도 좋지 않아 전국적으로 벌채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얼마 전 천안시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이 있는 매봉산 일대의 왜송을 베어버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서울현충원의 현충천에 건립되어 있는 수충교와 정난교 사이에 지금도 40그루의 왜송이 버젓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겨레의 길’이라고 명명된 도로 양쪽으로 왜송이 빽빽이 들어서 있어 그 의미를 무색케 하고 있다. 나무 고고학 분야의 권위자인 박상진 경북대 임학과 명예교수는 “왜송은 미국이 원산지이나 일제 강점기 때 들여와서 왜송으로 불리고 있다. 어찌되었든 현충원 내에 외국산 소나무가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서울현충원측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을 국방부에 떠넘기는 듯한 모습이다. 서울현충원 관계자는 “징용이라고 새겨진 비석은 현충원 초창기에 세워진 것이다. 아마 군인이 아닌 유해들을 이렇게 분류한 것 같다. 60년도 더 된 비석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비석 하나에 30만~40만원이 드는데 그 많은 비석을 다시 세울 수는 없지 않나. 국방부가 결정할 사안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왜송에 대해서는 “국산 소나무만 너무 고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청와대 뒷산에도 수십 그루의 왜송이 있다. 전두환 정권 때 (서울현충원에) 왜송을 심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나무들을 일시에 다 제거해버리면 그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점차적으로 왜송을 교체하는 방안을 모색해보겠다”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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