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김두관, 누가 웃을까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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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기반 서로 같아 보완재 아닌 대체재…앞으로 두세 달간 ‘기선 잡기 혈전’ 불가피

5월22일 야권의 대권 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왼쪽)과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창원 MBC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3주기 추모문화제에 참석해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 뉴스뱅크 이미지

“이 망국적인 지역 구도가 허물어지지 않는 한, 민주당(진보 진영)에서 정상적으로 정권을 잡기는 어렵다. 특히 호남 지역 후보가 나오면 필패이다. 그나마 영남 지역 후보가 나와야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02년 대선은 앞으로 두고두고 민주당의 교과서로 남을 것이다.”

5년 전인 지난 2007년 10월,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의 전신)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진보 진영의 한 중진 인사는 기자에게 2007년 대선의 완패를 확신하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었던 그는 2002년 대선 때 노후보의 대선 캠프를 이끌며 승리했던 그 감격을 잊지 못했다. 결과론이지만 그의 장담대로 정후보는 당시 대선에서 약 5백만표 차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완패했다. 호남에서는 80%대에 이르는 압도적 지지를 얻었지만, 영남에서는 10.3%의 득표율에 그쳤다. 반면 2002년 대선에서 노후보는 영남에서 25.8%의 득표율을 올렸고, 호남에서는 93.2%의 압도적 몰표를 받았다.

‘영남 후보가 필승 카드’ 인식 강해

6월3일 열린 민주당 서울시당 개편대회에서 이해찬 후보(왼쪽)와 김한길 후보가 우상호 후보의 연설을 듣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보수 진영이 영남권을, 진보 진영이 호남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금의 정치 구도에서 대선이 자칫 영남 대 호남의 지역 구도로 갈 경우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인구 비율상 영남 인구가 7 대 3 정도로 우세하기 때문이다. 김영삼 민자당(새누리당의 전신) 후보와 김대중(DJ) 민주당 후보가 맞붙은 1992년 대선이 그랬다. DJ가 1997년 대선에 다시 도전하면서 보수 진영의 김종필 자민련 후보와 손을 잡는 파격을 단행한 것은 순전히 영남에 맞서기 위한 ‘호남+충청’의 지역 연대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지만, 당시 보수 진영의 분열로 영남표가 갈리는 어부지리 효과도 누렸다. 진보 진영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준 기회였던 셈이다.

이때부터 진보 진영에서는 하나의 대선 공식이 생겼다. 호남의 확실한 지지 기반 위에 영남표를 30% 이상 잠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충청권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수도권에서 우세를 차지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앞에서 언급한 노후보 캠프 출신의 중진 인사는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의 깜짝 돌풍은 광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호남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충청권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행정 수도 이전이라는 공약을 내세운 것도 주효했다”라고 승인을 분석했다.

민주당에서 ‘영남 후보론’이 필승 카드로 계속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한때 지지율 20%대 이상을 치고 올라간 것도 그가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다크호스’로 부쩍 김두관 경남도지사를 많이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범야권 후보로 분류되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역시 부산 출신이다. 정동영 상임고문이 지난 4·11 총선에서 전주 지역구를 떠나 부산 영도 출마를 시도했던 것도 지역 구도에 따른 이런 고민과 무관치 않다.

물론 비영남권 후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5월 말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서는 지역 구도가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영남 후보론을 제기하는 것은 지금의 당내 권력 구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다”라고 ‘친노’ 진영을 겨냥했다. 하지만 손 전 지사의 한 측근은 “‘친노’는 영남이고, ‘비노’는 호남이라는 등식은 잘못되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손 전 대표의 중도 진보 이미지가 영남 정서에 더 어필될 수 있다”라고 강조하고 나서는 등 영남 지역에 상당한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6월9일 치러진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한 민주당은 이제 본격적인 대선 체제에 돌입했다. 유력 대권 주자들의 공식 대선 출마 선언도 잇따를 전망이다. 당초 이번 전대가 당내에 ‘문재인 대세론’ 분위기를 상승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으나, 결과적으로는 앞서가던 문고문을 주춤하게 만들고, 뒤에 늘어서 있던 손 전 대표, 김지사, 정고문 등에게 자극을 가함으로써 마치 춘추 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잠룡들의 쟁투 양상을 가속화시켰다. 당헌 개정 가능성으로 인해 차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었던 박영선·이인영 전 최고위원 등도 이번 대선 구도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국가비전연구소가 여론조사 기관 ‘타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6월7일 발표한 민주당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가 관심을 끌고 있다.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문재인 고문이 24.4%, 손학규 전 대표가 22.8%, 김두관 지사가 20.7%로, 세 후보가 모두 오차 범위 내에서 초박빙의 접전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정동영 고문은 9.1%, 정세균 전 대표는 7.9%로 뒤를 이었다. 이보다 앞서 <시사저널>은 지난 5월22일자(제1179호)에서 ‘민주당 대권 구도, 문재인·김두관·손학규 3파전 굳어진다’를 보도한 바 있다. 이를 본 일부 다른 후보 진영에서 항의가 뒤따르기도 했으나, 그동안 기자가 꾸준히 접촉해온 여러 정치·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거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했다.

“될 만한 사람 밀어주는 호남의 선택도 중요”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최근 여론조사의 흐름을 분석해보면 아주 미세하게나마 문고문의 하락세와 김지사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친노·영남의 지지 기반이 겹치는 두 주자의 관계는 한 명이 올라가면 한 명은 내려가야 하는 엇갈리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최근 문고문이 10% 안팎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김지사가 아직 마의 5%대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문고문이 한 자릿수로 내려오고 김지사가 5% 벽을 넘는다면 치열한 혼전 양상으로 가게 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때는 호남의 민심이 관건이 될 수 있다. 호남 민심은 ‘될 만한 후보’를 밀어주는 경향이 강한데, 지금은 안철수 원장에게 쏠려 있는 호남 민심이 향후 손 전 대표까지 포함한 민주당의 세 주자 중 어디로 향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지난 5월27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대선 다자 구도 정례 여론조사에서 호남 지역 1, 2위는 현재 여·야 선두를 달리고 있는 안원장(32.6%)과 박근혜 전 새누리당 위원장(19.9%)으로 각각 나타났다. 그 뒤를 보면, 문고문(9.4%), 손 전 대표(6.1%), 정고문(5.5%), 김지사(5.2%) 등의 순이었다. 정고문이 이들 가운데 유일한 호남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나머지 세 주자들의 호남 민심 잡기 각축전도 점차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고문의 한 측근은 “우리도 어제 발표된 대의원 여론조사 결과를 보았지만, 유력한 후보들이 다수 등장해서 서로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라고 밝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벌써 6월인데, 아직도 5%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로 12월 대권을 노리기는 어렵다. 최소한 두 자릿수, 15% 정도는 나와야 한다. 그런데 당장 큰 변화의 계기가 없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아직 문고문이 훨씬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김지사와 손 전 대표도 조만간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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