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 폭탄 안은 ‘조마조마 경제’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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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출 등 급속히 늘어 1천조원대 육박…신규 창업자들도 증가해 규모 더 커질 가능성

ⓒ 시사저널 임준선

“20대는 학자금 대출에 쫓겨 살고, 30~40대는 부동산 대출금에 쫓겨 살고, 50~60대는 은퇴 이후 그나마 하나 남은 유일한 노후 대책인 부동산의 가격 하락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오랫동안 일반인을 상대로 재테크 상담을 해온 송승용 행복재무설계 이사는 요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두 빚에 쫓겨 사는 시대가 가계 부채 1천조 시대라는 것이다.

박정순씨(68)는 1990년대부터 부동산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 정점은 5년 전이었다. 서울 용산의 대규모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에 조합원 몫으로 나온 60평형대 오피스텔을 아들 명의로 하나 사들였고, 당시에 황금알로 예견되었던 판교 상업지구에도 땅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박씨는 강남의 아파트를 처분하고 경기도 동탄의 싼 아파트를 구해 이사했다. 동탄 쪽 부동산 전망도 괜찮다 싶어서 몇 년 깔고 앉아 있으면 은행 이자 이상은 나올 듯싶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조바심을 내고 있다. 오피스텔 중도금으로 대출받은 5억원은 이자만 내고 있다. 오피스텔이 완공되자마자 잔금 처리를 위해 시세보다 싸다는 2억원대에 전세를 놓고 4년여 동안 매해 전세금을 올려 4억원 가까이 올렸지만 더 이상 올리기도 무리이다. 한때 13억원대까지 호가가 나왔던 오피스텔은 요즘은 11억원대 후반에도 선뜻 임자가 나서지 않고 있다. 그는 “실기한 것 같다. 초반에 그냥 팔아버렸어야 하는데. 그동안 이자 낸 돈을 따지면 11억원대 이하로 팔면 오히려 손해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박씨는 요즘 동탄 아파트를 비워놓고 충남 해안가의 작은 공업도시에서 모텔을 빌려 부부가 함께 일하고 있다. 공사 현장이 많은 지역이라 출장을 온 직장인들이 장기 투숙하고 있어 모텔 월 임대료를 내도 월 5백만 원 정도는 손에 쥐고 있다. 하지만 이 돈에서 은행 이자로 나가는 돈이 3백만원 정도이다. 모텔이라도 안 했으면 은행 이자를 어찌 감당해야 했을지 박씨는 아찔하기만 하다. “올해는 반드시 용산 집이 팔려야 하는데….” 박씨의 한숨이 길어진다.

비교적 평온한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정년 퇴직한 구성환씨는 서울 구로구에 있는 30평형대 아파트 한 채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전부이다. 10년 전쯤 서울 평촌에 짓고 있는 아파트에 청약해 작은 평수가 당첨되어 한 채를 마련했었지만 5년 전 아들 결혼을 앞두고 처분했다. 상당 부분 빚으로 마련한 아파트여서 크게 남은 것도 없었다. 약간 남은 돈을 활용해 이 부부는 처음으로 자신들 명의의 아파트를 서울에 마련했다. 그동안은 계속 전세로 살아왔었다. 그의 부인 김선자씨는 “그때 빚잔치를 하고 남은 돈으로 이 아파트를 마련했다. 요즘 시세를 보면 그 아파트는 팔기를 잘한 것 같은데 이 집을 산 것이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자꾸 집값이 떨어진다고 하니…”라고 덧붙였다. 박씨의 최대 고민은 집을 계속 보유해야 할지, 매각해 금융 자산으로 돌리는 것이 유리한지 여부이다.

소득은 늘지 않고 이자만 야금야금

가계 자산을 늘리는 데 최대 공헌자였던 아파트를 이용한 재산 증식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의 선대인 소장은 “1996년 1분기 주택담보대출은 44조3천억원 정도였다. 이것이 2010년 2분기에는 3백72조8천억원까지 늘어났다. 일반 가계가 막대한 빚을 짐에 따라 그에 대한 이자 때문에 소비 지출 여력이 줄었다. 가계가 부동산 투기 붐에 가담하기 이전인 2000년 무렵에는 해마다 25조원가량의 이자 수입이 생겨 소비에 쓸 여력이 늘어났다. 반면 그 이후로는 오히려 해마다 20조~50조원 규모의 이자를 지출하게 되었다. 즉, 일반 가계는 다달이 은행에 월세 형태로 100만~2백만원의 이자를 내는 바람에 소비를 줄여야 했다. 이같은 소비 여력 감소로 생겨난 국내총생산(GDP) 감소는 해마다 1~3% 전후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내내 민간 소비가 위축되어 평균 4~5% 수준의 경제 성장에도 밑바닥 경제는 늘 불황에 시달려야 했던 주요 이유이다. 이같은 내수 불황은 다시 일자리 부족과 저임금 일자리 양산과 양극화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었다”라고 진단했다.

폭락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 부동산 거품 붕괴가 이미 진행되고 있고, 가계 부채 1천조 시대의 최대 폭탄이라는 것은 이미 다수의 경제연구소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시중 은행의 지점장을 맡고 있는 한성백씨는 “아파트를 지으면 누가 사나. 개인이다. 건설 경기가 버틴 것도 결국 가계 부채와 연계되어 있어서다. 부동산 가격은 투기적 부분에서 실수요 부분으로 가는 순간 꺾이기 마련이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투기적 수요와 기대가 있을 때 주가가 오르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한지점장 역시 서울 동부에 있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몇 년 전 분양받았던 인천 송도 지구로 최근 이사한 뒤 쓰린 속을 달래고 있다. 그가 분양받은 가격보다 시세가 더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동산으로 인한 가계 부채는 사실 은행 입장에서는 큰 리스크가 없다. 집값의 60% 이하로 대출해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베이비부머들이 은퇴하면서 창업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 교육을 받았고 똑똑하다. 지금보다 서비스업 시장의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질 것이고, 성공자는 더 줄어들 것이다. 직장인에게 대출은 큰 문제가 아니다. 매달 외부에서 현금이 들어오니까. 문제는 창업 시장에 뛰어드는 베이비부머나 50대 이상의 계층이다. 고정적인 현금 수입이 끊긴 이들이 금융기관에서 창업 자금을 빌리지만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다. 이들이 금융기관의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의 몰락이 가계 부채의 또 다른 뇌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40대 후반 이상에서 신규 창업에 나서는 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50대 중반 이후의 은퇴 계층에서 창업을 고려하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창업 컨설턴트인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큰돈 들이지 않는 소규모 창업에 대한 문의도 많지만, 최근 들어서는 50대 이상 은퇴자 중 투자금 규모가 큰 창업 아이템을 저울질하는 상담자들이 과거보다 많아졌다”라고 전했다. 경제력이 중산층 이상으로 분류되는 이들도 최근 시장 상황의 변화를 위험하게 보고 있고, 이들 역시 개업 자금에 대한 부담이 크다.

“누군가는 손해 볼 수밖에 없는 시간 임박”

서울 동북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개인 의원을 운영하던 40대 후반의 의사 민규정씨는 지난해 말 의원 문을 닫았다. 그의 클리닉이 자리 잡고 있던 지하철역 반경 50m 이내에만 같은 진료 과목의 클리닉이 3년 사이에 세 군데가 더 생겨났다. 진료 과목이 겹치는 소아과, 내과, 이비인후과를 합치면 일곱 군데나 되었다. 내원 환자 수는 떨어지고 간신히 간호사 월급만 주는 수준이라 일할 의욕도 나지 않았고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는 일단 의원 문을 닫았다. 그는 다시 병원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이미 웬만한 수도권까지 꽉 찬 상태라 투자금을 20억원대 이상으로 확 늘리지 않는 한 답이 없었다. 이럴 경우 그는 적어도 5억원 이상을 신규로 대출받아야 하지만 이자 비용을 감안했을 때 승산이 있을지 여부에 대해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몫이 좋다는 곳에서도 작은 규모의 클리닉이 줄도산하는 것을 지난 몇 년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들 때문에 4년 전부터 8학군으로 와서 전세를 살고 있는 그는, 요즘 자신의 삶이 ‘빚 좋은 개살구’가 아닌가 고민하고 있다. 전세를 준 그의 아파트 가격은 하락 기조를 보이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전세금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칭 일류대 경영학과를 나온 김현성씨는 20여 년 동안 증권회사에서 일해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아는 이의 레스토랑 주방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요리를 배운 그는 올 초 서울 종로구에 작은 레스토랑을 열었다. 투자금의 상당 부분은 남의 돈이었다. 투자금 중 2억여 원은 아파트를 처분해 전세로 옮기고 남은 돈을 투자한 것이다. 아파트 시세가 더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지만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다행히 시작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는 요즘 식당으로 돈 버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다만 50세면 사실상 수명을 다하는 직장 생활을 자기 손으로 끝내고 스스로 정년을 결정할 수 있는 ‘가내 수공업자’가 된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이 두 주인공은 40대 이상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전문가 또는 엘리트로 불리는 계층도 늘어난 동종 업자 간의 경쟁 때문에 고민하고, 부동산 가격 하락에 전전긍긍하는 한편 은퇴 이후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부가 발표한 각종 경제 지표는 우리나라가 점점 더 돈이 많아지고 기업은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많은 사람들이 만져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통계에도 부자들이 만지는 돈과 최하 계층이 만지는 돈의 크기가 갈수록 더 차이 나고 있다. 기업을 살리겠다는 구조조정과 수출 장려용 고환율 정책, 기업 부담을 덜겠다는 고용 유동성 강화 정책이 오히려 경제의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중산층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한지점장은 “말로는 아파트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하지만, 자기 재산이 무너지는 것을 누가 바라겠느냐. 그러나 선택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임박했다”라고 말했다. 

문을 닫은 가게 모습. ⓒ 뉴스뱅크이미지
서민 경제의 몰락이라는 현상은 중소 상공인이 처한 현실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식당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이씨 부부는 부부가 끌어모은 4천만원을 밑천으로 동네에서 작은 횟집을 운영하기로 하고 자리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사채업자가 1천만원을 투자한다고 해서 동업하기로 했다. 개업 준비 중에 갑자기 사채업자가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요구해왔다. 사채업자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이씨 부부는 그의 투자금을 일수 대출로 돌리고 매일 10만원씩 100일간 무이자로 갚아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개업 준비 기간이라 부부에게는 현금 수입이 전혀 없었다. 결국 연체가 지속되면서 가게는 사채업자에게 넘어갔다. 이씨 부부는 원금 4천만원 중에서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파산했다.

이 사례는 금융소비자협회에 접수된 실제 사례로, 소상공인이 제도권 금융에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상공인이 처한 어려움은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채 상황 조사’라는 설문조사 결과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전국의 소상공인 3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는 모집단이 작다는 한계는 있지만, 현재 소상공인의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소상공인의 84.3%가 ‘부채가 있다’라고 답했고, 그중 70.5%는 ‘원금도 못 갚고 있다’라고 답했다. 즉, 10명 중 8명은 업체 경영 등을 위해 외부에서 돈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부채가 있다고 응답한 소상공인의 사업체당 평균 부채 금액은 1억1천3백64만원이었다.

이는 한국은행이 2011년에 실시한 가계 금융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부채 보유 가구의 평균 부채 금액 8천2백89만원보다 3천만원 정도 더 많은 것이다.

부채가 있는 소상공인이 지출하는 월 이자 비용은 평균 94만원이었다. 지난 2010년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조사한 ‘전국 소상공인 실태조사’에서 소상공인의 월평균 순이익이 1백49만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채로 인한 이자 부담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채가 있는 소상공인의 월 매출액은 평균 2천7백38만원으로 월 이자 비용이 94만원이라면 매출액 대비 이자 비용이 3.4% 수준이다. 이는 월 매출 100만원당 3만4천원을 이자를 갚는 데 써야 한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2011년 중소기업 실태 조사에서 중소 제조업체의 매출액 대비 이자 비용이 2.0%였던 점이나 상장 법인이나 비상장 주요 기업의 매출액 대비 이자 비용이 1.3%(2011년 한국은행 기업경영 속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소상공인의 생존 비용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상공인의 현실이 더욱 암울한 것은 돈을 빌려 쓴 소상공인 중 29.5%만이 원금을 갚아나가고 있을 뿐, ‘원금은 못 갚고 이자만 내고 있다’가 62.2%, ‘돌려 막기로 이자만 커지고 있다’가 8.3%로, 부채를 짊어진 소상공인 10명 중 7명은 원금은커녕 이자 내는 것도 버거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 지원단의 김민창 과장은 “우리나라에 자영업자가 많다고 하지만 OECD(국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제조업 중심 국가라고 부를 만한 나라가 많지 않다. 미국도 금융과 농업이 중심이다. 고용을 늘려주는 서비스업이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라며 대기업이 소상공인이 할 만한 업종까지 진출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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