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급 시장의 ‘CJ 아성’을 누가 흔드나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2.06.16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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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엔터테인먼트, 올 상반기 관객 점유율에서 심각한 부진…롯데엔터테인먼트·NEW의 약진 눈부셔

ⓒ 시사저널 전영기

“이러다 몇 년 안에 롯데가 배급 1위에 오르는 이변이 벌어지는 것 아냐?” 최근 충무로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영화계에서 CJ엔터테인먼트의 아성은 여전하다는 의견이 아직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상반기 영화계 지각변동의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가 시장 변화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상반기 한국 영화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편당 관객 수만 따지면 NEW·쇼박스가 ‘알찬 장사’ 한 셈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13일까지 올해 한국 영화 배급 1위는 역시 CJ엔터테인먼트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상반기 선두 자리는 빼앗기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자세한 수치를 들여다보면 CJ엔터테인먼트의 위기가 엿보인다.

부동의 1위 CJ엔터테인먼트의 전국 관객 점유율은 27.7%(자회사 필라멘트픽쳐스 점유율을 포함하면 34.4%)이다. 지난 한 해 CJ엔터테인먼트의 관객 점유율은 41.2%였다. 2010년 점유율은 41.4%였다. 아직 하반기가 남아 있다고 해도 올해 유난히 심각한 부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2, 3위와의 간격도 많이 좁혀졌다.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가 21.3%로 CJ엔터테인먼트를 추격하고 있고, NEW(20.5%)의 약진도 눈부시다. 오리온그룹 계열의 쇼박스㈜미디어플렉스가 19%로 4위에 올랐으니 춘추 전국 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한 시장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2, 3위였던 롯데와 쇼박스의 관객 점유율은 각각 26.3%와 15.6%였다. 4위였던 NEW는 12.3%를 기록했다. 순위별로 격차를 보였던 지난해 점유율과 달리 올해 상반기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 1강 2중 1약 체제를 형성하던 네 회사가 1강 3중의 체제를 구축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롯데를 통해 상영된 영화는 21.5편(0.5편은 전해 개봉작)으로 CJ엔터테인먼트(22.5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CJ엔터테인먼트의 영화 1편당 관객 수가 더 많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14.5편을 상영했고, 롯데는 8.5편으로 관객과 만났다. NEW와 쇼박스는 4편에 불과했다. 편당 관객 수만 단순하게 따지면 NEW와 쇼박스가 가장 알찬 장사를 한 셈이다.

개별 영화 순위를 보아도 피 말리는 시장 싸움을 가늠할 수 있다. 올 상반기에 개봉한 한국 영화 흥행 1위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4백68만3천6백여 명)로 쇼박스의 투자·배급 영화이다. 2위는 <건축학개론>(롯데)으로 4백10만4천명을 모았다. 3위는 CJ엔터테인먼트의 <댄싱퀸>(4백1만명)이 차지했고, 4, 5위는 <내 아내의 모든 것>(3백54만명)과 <부러진 화살>(3백41만7천여 명)로 모두 NEW의 작품이다. 어느 한 배급사가 상위권을 석권하지 못했고, 영화들 사이의 관객 수 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어느 한 배급사의 독주를 허용하지 않은 관객 점유율과 비슷한 양상이다.

CJ엔터테인먼트의 시장 장악력은 여전

정지훈이 주연을 맡은 CJ의 와 초호화 캐스팅을 앞세운 쇼박스의 .
CJ엔터테인먼트의 부진은 올해 관객의 영화 소비 성향과 맞물려 있다.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보다 도전적인 소재나 형식을 선택한 다크호스가 흥행을 주도했다. <범죄와의 전쟁>은, 이제는 한물갔다는 평가를 듣던 조폭이란 소재를 사회 비판적인 시선으로 끌어  안으며 관객의 갈채를 이끌어냈다. 도발적인 소재와 빼어난 기획력을 갖춘 <내 아내의 모든 것>과 <부러진 화살>도 의외의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가 기대작으로 내세운 영화가 ‘너무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CJ엔터테인먼트가 잦은 내부 인사로 조직의 체질이 허약해진 점도 관객 점유율 하락에 한몫했다는 분석이 충무로에서 나온다.

여름 시장에 이렇다 할 영화가 없다는 점도 CJ엔터테인먼트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당초 여름 시장을 목표로 했던 재난영화 <타워>가 11월로 개봉 일정을 옮기면서 약골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지훈(비) 주연의 100억원대 공군영화 <R2B: 리턴 투 베이스>가 8월에 개봉할 예정이나 영화계의 기대는 그리 뜨겁지 않다. 반면 쇼박스는, 김윤석·김혜수·이정재 등 초호화 캐스팅에 최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도둑들>로 여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CJ엔터테인먼트가 왕좌를 호락호락 내주리라 생각하는 영화인은 거의 없다. 영화 사업에 대한 오너의 의지가 워낙 강한 데다 자금 동원력은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가을에 이병헌의 첫 사극 주연작인 <광해, 왕이 된 남자>로 반전을 노릴 여지는 아직 많다. 2등 배급사 롯데와의 격차도 여전히 10% 넘게 나고 있다. 시장 1위 CJ엔터테인먼트의 업계 장악력은 아직도 타사가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강하다는 의견도 많다.


연초부터 ‘인사’ 행진 계속하며 조직 정비…CJ 부진, 이유 있었네 

“CJ엔터테인먼트 인사가 아직도 안 끝났다는데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이냐.” 투자배급사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한 프로듀서가 지난 5월 말에 한 말이다. CJ의 투자를 받기는 해야 하는데 누구와 접촉을 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 던진 하소연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는 연초부터 인사 행진을 계속해왔다. <마이웨이> 흥행 부진 등을 이유로 투자본부장이 바뀌었고, 주요 영화를 담당했던 투자팀장이 다른 일을 맡게 되었다. 저예산 영화 투자 담당자는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마케팅 담당자들도 대거 인사 소식을 전했다. CJ엔터테인먼트 대표 역할을 맡았던 김정아 상무는 해외 사업만 전담하게 되고, 길종철 전 CJ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연구소장이 국내 부문을 담당하는 공동대표 체제가 가동되었다.

주요 자리가 물갈이되면서 제작사가 혼선을 빚는 일이 잦아졌고, 조직도 많이 흔들린다는 평을 들었다. 언제쯤 조직 재정비가 끝나고 안정적인 체제에서 영화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들이 충무로에서 꼬리를 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의 부진은 미완성 인사 탓이 크다는 말이 이어졌다.

6개월가량 연쇄 인사로 뒤숭숭한 분위기를 이어가던 CJ엔터테인먼트는 지난 6월11일 정태성 전 해외사업 부문 상무를 선장으로 임명하며 조직 리노베이션을 완료한 분위기이다. 정상무는 쇼박스 상무 출신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와 <괴물> <미녀는 괴로워> 등의 투자 관리를 하며 쇼박스를 업계 강자로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자 감각이 남다르고 영어·일본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해 해외 업무에도 능하다. 김우택 NEW 대표와는 쇼박스 근무 시절 대표와 상무로 호흡을 맞춘 사이인데, 현재는 시장 다툼을 벌여야 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정상무는 사업으로서의 영화를 보는 눈이 탁월하다. CJ엔터테인먼트의 업계 파워와 그의 리더십이 제대로 결합되면 시장 지배력이 더 커질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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