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전해야 사는 나라 생활 패턴을 바꾸다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2.06.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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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직장인들의 귀가 시간 빨라지고 조리 문화에도 변화 / 전기 제품 사용에도 크고 작은 실천이 생활화되고 있어

일본 정부가 절전을 위해 설치한 새로운 형태의 LED 가로등 아래로 도쿄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 Xinhua

안전 문제로 가동이 중지되었던 후쿠이 현 오오이 원전의 재가동을 둘러싸고 격렬했던 찬반 공방은 일단 재가동하는 쪽으로 매듭지어졌다. 반대 입장의 선봉에 섰던 하시모토 도오루 오사카 시장도 한여름에 한정한다는 전제 아래 동의했다. 하시모토 시장은 오사카를 비롯한 간사이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생각할 때 안전 문제가 완벽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여름철의 전력 부족 문제 가 심각하다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본은 지난 5월5일 전국의 50개 원전을 대상으로 안전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가동을 중지시켜, 올여름 전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쿄전력은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가정용 전기요금을 평균 10.28%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연료비 상승 등으로 생긴 연간 6천7백63억 엔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전기 수요 요인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주간뿐만이 아니고 야간 시간대까지 요금 상승을 검토하고 있다는 데 대해 사회단체와 시민들은 즉각 반발했다. 비효율적인 경영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려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세는 요금을 올리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도 가격 상승만이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현 시점에서 달리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력회사들, 절전 협력 캠페인 실시

여론의 눈총을 뜨겁게 받고 있는 전력회사들은 자구책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홋카이도는 도마리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이 전면 중지되었고, 화력발전소 중 최대 출력을 내는 도마토우아츠마 4호기마저 정기 검사를 위해 가동이 중지된 상태여서 올여름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홋카이도전력은 해결책의 일환으로 올여름 절전에 협력하는 가정에 상품권을 주는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 8월과 9월에 지난해에 비해 7% 이상~15% 미만을 절전하는 경우 1천 엔(1만4천원)을, 15% 이상 절전한 경우에는 2천 엔(2만8천원)을 주기로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온 도쿄전력은 신규 발전 사업자들을 위해 자사 송신망을 사용하는 경우 요금을 10% 정도 낮춰주는 안을 제시했다. 큐슈전력은 전력 부족이 예상되는 경우 두 시간별로 전력 공급을 중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들도 다방면에 걸친 대책을 세우고 있다.

절전 때문에 가장 크게 피해와 불편을 겪게 되는 쪽은 국민들이다. 지난해에 계획 절전이 실시되었을 때만 해도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인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또다시 전력 부족 사태를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절전으로 인해 일상생활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먼저 직장인들의 귀가 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하게 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조리 문화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가능한 한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며 불을 사용하지 않고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조리가 늘어나고 있다. 음식 중 면 종류가 늘어나는 대신 튀김 종류가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면 소면, 메밀, 우동, 소바, 사라다 등과 같이 불이나 조리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덴푸라, 돈가스와 같이 튀기는 음식이나 샤브샤브, 스키야키와 같이 불을 많이 사용하는 음식은 줄어들고 있다.

한편 전기 제품에 대한 절전 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자원·에너지청의 추산에 따르면 여름 한낮에 가정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은 에어컨이다. 전체 사용량의 58% 정도를 차지한다. 그 다음은 냉장고, 조명 기기 순이다.

절약 컨설턴트인 마루야마 하루미 씨가 추천하는 절전 비법 중 하나는 페트병에 물을 담아 얼린 페트병을 선풍기 바람에 쏘여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전등을 끄거나 플러그를 뽑는 일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에어컨이 있는 실외 주변에 물건을 놓지 않거나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사용하는 등 절전을 위한 크고 작은 실천이 생활화되어가고 있다. 가능하면 에어컨 사용을 피하다 보니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는데, 문제는 벌레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 골칫거리라는 점이다.  방충망을 설치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또 낮에는 창문 방향으로 햇빛이 직접 닿지 않도록 햇빛 차단 시트를 붙이는 가정도 있다. 일찍 귀가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인터넷을 하거나 TV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도 일상생활의 변화이다. 귀가 시간이 빨라진 만큼 취침 시간 역시 빨라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외식 산업 타격…LED·의류 산업 등은 호황

지난 5월21일 정부의 절전 캠페인에 따라 선풍기를 사러 나온 도쿄 시민들. ⓒ AP 연합
절전은 맞벌이 부부들의 생활 패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쉬는 날이 각각 다르거나 주중에 쉬고 주말에 일하는 회사에 다녀야 하는 사람들은 주말에 아이를 맡기기 어렵게 되어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재택 근무도 가정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기업들은 기획 부서나 시스템 분야 중심으로 재택 근무를 권장하고 있다. 연구직이나 디자인과 같은 업무를 대상으로 재택 근무를 실시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재택 근무를 해본 결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기회가 많아 좋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반면, 중년층 전업주부의 경우 집에 있는 남편의 식사 등을 뒷바라지 하느라 가사 업무가 늘어 싫다는 의견도 있다.

절전 대책에 따른 조기 귀가, 재택 근무 문화의 확산은 소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찍 귀가해서 가정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밖에서 식사하는 기회가 줄어들게 되어 외식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 침체로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중 타격을 받는 셈이다.

반면 호경기를 맞은 분야도 있다. 가정 전기료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조명 등을 LED로 교체함에 따라 LED 조명과 형광등 산업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LED의 경우 정부가 절전을 위해 백열전구 생산 및 판매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의류의 경우 마와 같은 천연 소재나 통풍성이 좋은 옷들이 많이 팔리고 있다. 가정에서는 벌레를 막는 약품을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약품 및 생활 잡화를 취급하는 전국 체인점인 마스모토키요시의 경우 지난 4~6월 동안 모기 퇴치제의 매출이 예년에 비해 25% 증가했다.

대지진 이후 심각한 전기 부족을 경험한 후에 구매 행동 패턴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디자인이나 유행에 따라 구매한 이기적 동기에서 제품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세상을 위한다는 공익성과 이타적 동기에 의해 구매한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절전으로 인한 변화 중의 변화는 의식 변화이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두 번째 절전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공통된 변화는 절전 문화에 익숙해가고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나’ 중심의 생활에서 가족과 함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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