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본 롯데도 가세 맥주업계 ‘신삼국지’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6.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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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하이트진로 텃밭에 그룹 차원 ‘도전장’ 내밀어 15년 만에 삼파전 구도 재현하며 맥주 시장 재편할 듯


4조원 규모의 맥주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지난 15년간 구축한 텃밭에 롯데그룹이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롯데는 그동안 맥주 시장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까지 나서 “맥주 시장 진출은 우리의 숙원사업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지난 2009년 신회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오비맥주 인수전에 나섰다. 데뷔전은 실패로 끝났다. 외국계 사모펀드와 기존 맥주업계의 견제로 쓴맛만 보아야 했다. 이후 독자적으로 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 결과물이 최근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롯데는 오는 2014년까지 충주 기업도시 사업 지구 안에 9만5천㎡ 규모의 생산 공장을 건립할 예정이다. 지난 6월6일 1천7백91억원 투자를 확정했다. 인근 충주신산업단지에 들어서는 33만㎡ 규모의 본공장 건립 역시 2017년까지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지난해 주류 계열사의 통합 작업까지 마치는 등 맥주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맥주업계가 새로운 삼국지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맥주 시장은 ‘삼파전’ 구도였다. 오비와 조선(현 하이트진로), 진로쿠어스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진로가 부도를 맞으면서 업계가 ‘양강’ 체제로 재편되었다. 오비맥주와 조선맥주는 각각 진로의 맥주(카스)와 소주(진로)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이후 맥주 시장은 10년 이상 오비와 하이트가 지배해왔다. 롯데의 맥주 공장 건립이 마무리되면 국내 맥주 시장은 다시 삼파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시장 구도가 재편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증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롯데의 유통망과 자본력에 시장 요동 칠 것”

롯데가 5~10%의 점유율만 확보해도 시장은 적지 않게 요동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유진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판매 촉진비와 광고비만 연 1천억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점유율을 지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마케팅 비용이 크게 불어나면서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주식시장 역시 새로운 시장 구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맥주 시장 진출을 밝힌 지난 2009년 10월부터 최근까지 롯데칠성음료의 주가는 61.40%나 증가했다. 코스피 증가율(13.33%)을 다섯 배 가까이 웃돌았다. 이에 반해 하이트진로는 지난 5년간 47.66%나 하락했다. 두 회사의 주가 차이에는 실적 영향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칠성은 최근 5년간 매출이 꾸준히 상승했다. 지난 2008년 1조1천8백억원에서 2010년 1조3천억원으로 올랐다. 지난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주류BG가 합병하면서 처음으로 2조원대를 돌파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줄곧 시장 1위를 지키면서도 매출은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 2008년 1조2백68억원에서 2010년 1조2백23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진로가 하이트맥주를 합병하면서 매출이 1조3천7백억원까지 늘어났지만, 부채 역시 2조원대로 커졌다. 유진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그룹은 주류 계열사를 합병하면서 부채 비율이 68%에서 66%로 하락했다. 하이트진로의 부채 비율은 1백19%에서 1백51%까지 높아진 만큼 주가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본력이나 유통망이 강한 롯데의 잠재력이 반영된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거미줄처럼 얽힌 전국의 소매 유통망과 자본력으로 맥주 시장을 공략할 경우 피해가 불가피하다. 내부적으로 롯데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면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검찰이 최근 하이트진로의 영업점 세 곳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 연장선에서 해석되고 있다. ‘처음처럼’에 사용되는 알칼리 환원수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루머가 최근 시장에 파다했다. 롯데주류는 루머의 유포자로 하이트진로를 지목했고, 검찰은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트진로가 롯데의 상승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 유해성 논란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다. 그만큼 업계가 롯데의 잠재력에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라고 귀띔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순위 역전되기도

이 과정에서 기존 맥주 시장의 점유율 역시 요동을 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장 1위 업체는 오비맥주였다. 70%(오비) 대 30%(조선)의 비율을 20년 가까이 유지해 왔다. 하지만 진로가 카스를 내놓고, 조선이 하이트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점유율 격차가 줄어들었다. 조선은 지난 1996년 오비맥주를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이후 16년 동안 시장 구도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7년까지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의 점유율 차이는 20%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후 격차가 조금씩 좁혀지더니 지난해 50.5% 대 49.5%로 점유율이 역전되었다. 올 상반기에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의 점유율은 53.8% 대 46.2%로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이호림 오비맥주 사장은 최근 일본 교토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확실히 1위에 올라섰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하이트진로의 반격 역시 만만치가 않다. 최근 광고 모델로 영입한 김연아씨를 앞세워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하이트와 진로의 통합으로 주춤했던 영업망 역시 조만간 시너지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하이트와 진로의 영업망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마케팅을 소홀히 한 면이 없지 않다. 현재 서울과 부산의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통합 영업을 벌이는 만큼 조만간 1위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맥주 맛처럼 다른 ‘3인3색’ 맥주업계 CEO

롯데그룹의 가세로 맥주 시장에 전운이 확산되면서 CEO들의 면면도 주목되고 있다. 최근 시장 1위 타이틀을 재탈환한 이호림 오비맥주 사장은 월마트코리아와 트라이브랜즈(옛 쌍방울)의 CEO를 거친 마케팅 전문가이다. 이사장은 지난 2007년 4월 사장에 취임한 뒤 점유율 확대에 주력해왔다. 젊은 층을 겨냥한 카스와 오비 골든라거, 프리미엄 맥주인 카프리 등 ‘메가 브랜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이남수 하이트진로 영업총괄 사장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이사장은 관료 출신(행정고시 19회)으로 1989년 진로에 입사했다. 이후 해외사업본부장, 진로 사장을 거쳐 통합 출범한 하이트진로의 관리총괄 사장에 임명되었다. 영업총괄은 김인규 사장이 맡았다. 통합 회사가 출범한 직후 시장 점유율이 뒤집히면서 이사장이 영업총괄 사장에 취임했다. 오비맥주에 밀린 시장 점유율을 회복해야 하는 무거운 임무가 앞에 놓여 있는 셈이어서 향후 이사장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롯데그룹의 주류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재혁 사장은 ‘기획통’으로 통한다. 그는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20년이나 근무했다. 시장 흐름을 예측하는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롯데칠성음료 기획담당 임원 시절에는 ‘스카치블루’를 도입해 위스키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롯데그룹 주류 계열사들의 통합 작업을 주도했다. 이에 따라 기획과 영업, 마케팅에 특출난 실력을 보유한 맥주업계 CEO들의 향후 대결 구도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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