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에, 협박에…“악마를 보았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6.1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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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채의 덫에 걸린 피해자들 사례 / 직장까지 찾아와 행패 부리기 일쑤

불법적인 계약으로 사채를 이용한 후 피해를 입은 여성(오른쪽)이 증거 서류를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사채를 잘못 쓰면 인생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는 불법 사채로 인해 패가망신한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신용불량자, 이혼, 성폭행, 인신매매, 가정 해체 등의 단어가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사채업자의 협박에 못 이겨 자살한 경우도 빈번하다. 한 번 ‘불법 사채의 덫’에 걸려들면 만신창이가 되어서야 빠져나올 수 있다.

<시사저널>은 사채업자에게 당한 두 명의 피해자를 만났다.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딸이자 친구였고, 또 아버지였다. 이들을 괴롭힌 불법 사채의 추악한 뒷모습은 상상을 초월했다.

올해 서른한 살인 이정은씨(가명·여)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가 사채의 마수에 빠져들게 된 것은 지난해 2월이다. 이씨는 2006년에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월급을 타면 모두 부모에게 맡기고, 자신은 용돈을 타 생활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개인 비자금’이 필요했다. 이씨는 월급을 타면 일정액을 떼어내고 부모에게 맡겼다. 물론 부모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씨의 부모가 딸의 월급이 적게 들어오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부모님을 속였다는 죄책감도 들었다. 이씨는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다른 곳에서 돈을 빌릴 방법을 강구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집으로 연락이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비밀리에 돈을 빌리기로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무서류·무담보·무방문 대출’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했다. 여느 금융회사 사이트와 다를 것 없이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씨는 의심 없이 사이트에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에게 사정을 말하자 다른 번호를 알려주며 통화해보라고 했다.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자 이번에는 필요한 서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번호를 알려주며 필요한 절차를 밟으라고 했다.

마지막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자 한 중년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불법 사채업자 김광옥(가명)이었다. 이씨는 사채업자와 직접 연결될 때까지 총 세 단계의 통화를 거쳐야 했다. 사채업자 김씨는 이씨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주겠다”라며 회사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이씨가 부담스럽다며 거부하자 그렇다면 직접 자신의 회사로 찾아오라고 했다.

알려준 주소로 찾아간 이씨는 깜짝 놀랐다. 사무실이 아니라 일반 주택가에 위치한 가정집이었던 것이다. 김씨는 이씨에게 100만원을 빌리기 위해서는 각종 수수료 및 공증비 명목으로 3백30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급전이 필요했던 이씨는 이를 수락했다. 월급날 갚으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씨는 월급날에 맞춰 2월25일, 3월25일, 4월25일에 각 1백10만원씩을 김광옥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계약서를 작성하자 김광옥은 위임장을 내밀었다. 공증을 받는 데 필요한 절차를 김씨에게 모두 위탁한다는 내용의 위임장이었다.

위임장에 농간 부려 갚을 돈 불려놓기도

사채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불법 사채업체와 작성한 공정증서와 위임장. ⓒ 시사저널 박은숙
그런데 이상했다. 김광옥은 위임장에 차용 금액을 ‘7백만원’으로 작성하게 했다. 변제 날짜도 코앞의 날짜로 쓰라고 했다. 이씨가 의문을 제기하자 김광옥은 “혹시 돈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돈만 갚으면 아무 상관없으니 신경 쓰지 마라”라고 말했다. 이씨는 이 말을 믿고 별 의심 없이 위임장에 도장을 찍었다.

훗날 이것이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 달 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씨가 돈을 갚지 못했다며 회사로 월급 압류 신청이 들어온 것이다. 당시 공정증서 위임장에 적혔던 7백만원에 대한 채권 추심이었다. 당황한 이씨가 전화하자 김광옥은 “그것은 원래 공증 떼면 날아가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마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자신의 문제가 회사와 엮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이씨가 “완납하려면 얼마가 필요하냐”라고 묻자 김씨는 “2백30만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3월25일 해당 금액을 모두 완납했다.

기존에 김씨에게 지급하기로 한 돈 3백30만원을 모두 갚았으니 빚에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었다. 사채업자 김씨는 당시 공정증서에 기록된 7백만원에 대한 변제는 전혀 안 되었다며 이씨를 압박했다. 애초에 해당 위임장에 도장을 찍은 것이 잘못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김광옥은 회사에 찾아와 채권을 추심하며 이씨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채무자를 당황시키기 위한 사채업자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하루에 전화가 스무 통씩 오기도 했다. ‘XX년’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쏟아졌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이씨는 김씨를 회사에 찾아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씨는 김씨에게 회사에 찾아오지 말라며 자신의 월급통장과 인감도장을 넘겼다. 이는 사채업자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었다. 김씨는 이씨의 인감을 이용해 이번에는 차용금 1천만원짜리 공정증서를 만들어 이씨를 몰아세웠다.

사채업자 김씨는 계속해서 이씨의 회사에 찾아왔다. 심지어 직접 이씨의 상사를 만나 “쟤(이씨)가 어떤 애인 줄 아는가? 7백만원씩 빌려서 돈도 안 갚는 애이다”라며 이씨를 모욕했다. 소액재판에도 불려다녔다. 사채업자는 판사 앞에서도 뻔뻔하게 “쟤(이씨)는 법도 모르는 애이다”라며 오히려 큰소리로 몰아쳤다. 이씨는 서러웠다. 인감도장을 함부로 타인에게 주면 안 된다는 것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는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는 세상의 진리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먼 길을 지나와 있었다. 이씨는 법정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덕’인 법은 이씨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이씨는 결국 경찰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이씨는 경찰청 홈페이지에 자신의 사연을 올렸다.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답변이 없자 직접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사채업자의 주소를 말하자 관할 경찰서로 연결해주었다. 해당 경찰서로 전화하자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전화하라고 했다. 그렇게 지쳐가던 이씨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게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불법 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지난 4월부터다. 불법 사금융 신고센터 ‘1332’로 전화하자 관할 경찰서를 연결해주었다. 관할 경찰서로 연결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경찰은 김씨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고 곧 검찰로 해당 사건을 송치했다. 이씨가 찾아갔을 때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던 경찰이 대통령 발표 한마디에 1백80˚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씨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김씨가 형사 처벌을 받더라도 이씨가 인감도장을 찍었던 금액 7백만원에 대한 민사 소송은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도 이씨에게 전화해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사채업자라고 하면 대부분 험악한 인상의 ‘조폭’ 같은 인물을 연상하지만 김광옥과 같이 철저하게 법으로 무장해 피해자를 괴롭히는 ‘사기꾼형’도 있다. 이씨는 “예전에는 TV에 사채 피해자들이 나오면 ‘저런 것을 왜 당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급한 상황에서 직접 겪어보니 나도 모르게 지금 이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현재 사채업자 김씨를 상대로 소액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인쇄업을 하고 있는 신호연씨(가명·49)도 불법 사채업자의 희생양이 되었다. 지난 2010년 11월쯤 신씨의 아버지가 척추에 염증이 생겨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다. 입원 치료비와 간병비를 합쳐 한 달에 5백만원의 치료비가 들어갔다. 아내가 맞벌이를 하고 있었지만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신씨는 은행 문을 두드리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은행 문턱을 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시중 은행 및 저축은행들을 10군데 이상 돌아다녔지만 어느 곳도 대출을 해주는 곳은 없었다. 과거 카드 대금을 연체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병원비 문제로 하루하루 고민하던 중 회사 근처 바닥에 널브러진 일수 대출 전단지를 보게 되었다. 통화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 전화 통화가 이후 신씨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해당 번호로 전화를 하니 사채업자들이 신씨의 회사로 찾아온다고 했다. 채무자의 근거지를 확인하기 위한 사채업자들의 전략 중 하나이다. 건장한 20대 남성 두 명이 찾아왔다. 신씨는 이들에게 총 3백만원을 일수로 빌렸다. 일단 수수료로 7%를 제외하고 선이자로 20만원을 떼어낸 금액 2백59만원을 지급받았다. 이후 신씨는 72일 동안 5만원씩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72일 동안 다 갚은 후에도 같은 조건으로 반복해서 빌렸다. 하지만 사업이 힘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일이 잘 될 때는 하루 5만원은 돈처럼 안 느껴졌지만 사업이 기울자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수사 중인 상황에서도 문자로 으름장

결국 제대로 돈을 못 갚을 상황이 되자 사채업자들은 돈을 추가로 빌릴 것을 권유했다. 그런 식으로 빚을 내서 빚을 갚다 보니 금액이 연체되기 시작했다. 사채업자들의 압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하루만 입금을 안 해도 곧바로 전화가 왔다. 20대 초반의 덩치 큰 수급사원들이 찾아와 반말을 섞어가며 신씨를 위협했다. 신씨의 대학생 딸 또래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빨리 갚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알리겠다”라며 신씨를 협박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자 신씨의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집에서 TV를 보다 전화라도 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신씨는 “지금도 수급사원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20대 초·중반 나이에 오토바이 타고 작은 일수 가방 들고 다니면 사채 수금사원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전했다.

신씨는 결국 인터넷에 사채 피해 등에 대한 글을 뒤지며 대책을 찾아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민생연대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생연대에 전화를 하자 동작경찰서의 지능수사팀을 연결해주었다. 신씨는 “불법 사채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경찰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는 계약을 하고 빌렸으니 무조건 갚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마침 불법 사금융 특별 단속 기간과 맞물려 수사는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은 끈질겼다. 이들은 심지어 수사 중인 지금도 문자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정될 때 갚아라, 믿고 있겠다”라며 신씨를 집요하게 재촉하고 있다. 신씨는 “하루에 몇만 원 갚는 일수 시스템을 우습게 볼 수 있지만 막상 자신의 상황이 되면 그렇지 않다. 또, 도박처럼 중독성도 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사채는 무조건 쓰면 안 된다고 충고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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