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권 외치다 ‘운명’에 빠져들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06.17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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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인생 행로’ / 민주화 운동 전력 탓에 판사의 꿈 접어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 활동하며 노무현과 숙명적 만남

경희대 재학 당시의 문재인 고문과 아내 김정숙씨, 특전사 복무 당시의 문재인 고문(오른쪽). ⓒ 시사저널 사진자료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은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함경남도 흥남에서 살았으나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떠나 거제로 피난했다. 이후 문고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부산 영도로 이사해 이후 부산에 정착했다.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온 문고문의 가족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문고문의 아버지가 장사에 나섰다가 부도를 맞으면서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문고문은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곧잘 해 부산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경남중과 경남고에 차례로 진학했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그는 공부보다는 책 읽기에 더 관심을 가졌다. 대신 닥치는 대로 책을 독파하며 내면을 가다듬고 사회의식을 키웠다. 학교 공부에만 충실한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술과 담배를 하면서 이른바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유기정학을 받은 적도 있었다.

문고문은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가 신입생이던 1972년,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문고문은 함께 하숙 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선배들과 교류하며 사회의식을 키워갔다. 특히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의 저작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문고문은 1974년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며 학내 학생운동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그 이듬해에는 비상학생총회를 주도하다 구속되어 학교에서 제적되었다. 문고문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으며, 곧 강제 징집되어 특전사령부에서 군 복무를 했다.

1979년 제대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의 봄’을 맞아, 제적되었던 학교에도 복학했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의 집권에 맞서 민주화 시위에 참가했다가 다시 구속되었다.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때, 문고문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약 재판에 회부된다면 합격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학교측의 구명 노력 덕에 석방되어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는 시위 현장에서 만난 대학 후배 

1982년, 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고문은 판사를 지망했다. 그러나 우수한 성적에도 임용되지 못했다. 시위 전력 때문이었다. 결국 문고문은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사법고시 동기였던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를 통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에서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운명’과도 같았던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문고문과 노 전 대통령은 주로 시국 및 노동 사건을 맡아 변론했다. 두 사람은 부산·경남 지역을 대표하는 인권 변호사로 자리매김했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13대 국회에 입성하며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 문고문은 부산의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활동하며 노 전 대통령을 도왔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아 부산·경남 지역 세력을 조직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정무특보, 대통령 비서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문고문은 아내 김정숙씨와의 사이에 아들 준용씨, 딸 다혜씨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한 아내 김씨는 문고문의 대학 2년 후배이다. 함께 학생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문고문과 가까워진 후 7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문고문이 최루 가스에 맞아 실신했을 때, 아내 김씨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면서 사랑이 싹텄다는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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