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변한 러시아, 푸틴은 알아차릴까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12.06.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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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식 끝난 뒤 민주화 개혁 요구 반정부 시위 잇달아…6년 임기도 채울 수 있을지 의문

 

지난 5월31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 현장에 푸틴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한 남성이 걸어가고 있다. © AP 연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 60세이다. 이 정도면 세상을 알 만한 나이이다. 그는 대통령 8년, 총리 4년을 거쳐 지난 5월 6일 6년 임기의 3기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식은 반(反)푸틴 시위로 얼룩졌다. 집시법을 고쳐 거액의 벌금을 물려도 시위는 줄어들지 않는다. 야당 인사들을 구금하고 인터넷 블로그를 검열해도 반푸틴 운동은 가열된다. 1990년 소련으로부터 러시아가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6월12일에는 모스크바 중심가에 3만명이 모여 푸틴식 독재의 종식과 민주화 개혁을 요구했다. 지난해 12월 부정 선거 규탄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경찰이 단속을 하지 않고 방관하는 태도를 보여폭력적 충돌은 없었다. 야당 인사들은 경찰도 시위에 동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푸틴에게 지난 세월은 순탄했다. 주변은 순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마치 비잔티움 시대로 돌아간 듯 모두가 그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췄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직면한 러시아는 옛날의 러시아가 아니었다. 복종하는 듯한 외양의 밑바닥에는 전에 보지 못한 저항과 거부의 기운이 감돌았다. 러시아는 근본적으로 변했다. 푸틴이 주시하는 가운데 그렇게 변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서슬퍼런 러시아가 푸틴의 면전에 버티고 있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은 푸틴뿐이다. 푸틴시대의 갈등과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러시아 국민은 이제 자신들의 몫을 요구한다. 푸틴은 이에 답해야 한다. 시위에서는 “러시아를 되찾자”라는 구호가 이채로웠다. 푸틴 일당이 러시아를 국민으로부터 강탈했다는 의미이다. 푸틴에 대한 과거의 형식적 지지는 사라졌다. 푸틴이 직면한 도전은 태산 같다. 국민의 욕구에 부응하면서 앞으로 6년 또는 12년의 재임을 보장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야 한다. 경제도 회복하고 개혁도 해야 한다. 좀 더 민주적인 지도자로 변신하지 않으면 저항에 부딪힐 것이고, 유연성을 보이면 그가 가장 걱정하는 사태, 즉 권위를 상실한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처럼 유약한 대통령의 모습 따위는 푸틴의 머릿속에 없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딜레마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선택을해야 한다. 그것도 혼자 해야 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고독한 선택이다. 그 선택은 당장 해야 한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후계자 선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를 지경

2000년 5월7일 러시아 크렘린 궁에서 푸틴(왼쪽)의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눈물을 훔치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오른쪽). © EPA 연합

지난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어느 날 유세장에 모인 군중들은 “푸틴은 러시아의 미래이다” “푸틴의 대안은 없다”라고 환호했다. 그러나 함성은 가슴에서 우러나온것이 아니었다. 무언가 유보적이었고 절제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의 냉소 때문에 푸틴의 시대가 가려질 이유는 없다. 그의 측근인 한 금융인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자신이 푸틴에게 6년 임기 이상은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는 것이다. 많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푸틴의 집권은 단순히 ‘길고 긴 시간’이 아니라 ‘너무나 긴 시간’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 충고의 이유였다. 러시아 헌법은 2008년에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하도록 개정되었다.

 푸틴에게는 잔여 임기를 무사히 채우는 것 못지않게 시급한 과제가 있다. 6년 후가 될지 12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종국에는 권력을 넘겨주고 크렘린을 나와야 하는데 누구에게 넘겨주느냐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보리스 옐친은 12년 전 푸틴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무사히 크렘린 궁을 나왔다. 그러나 푸틴에게는 아직 믿을 만한 후계자가 보이지않는다. 푸틴이 이번에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면 축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3번째 임기는 얘기가 달라진다. “위대한 러시아를 건설하겠다”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경청하는 사람이 없다. 장기 집권에 따른 권태가 푸틴의 약발을 모두 잠식했기 때문이다. 푸틴에게는 시간이 없다. 지금부터 후계자를 찾아나서도 바쁘다. 후계자는 서서히 키우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푸틴으로서는 후계자를 찾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이 일이 잘못되면 그의 정치 인생 전체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심지어 푸틴이 1차 6년 임기를 완주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 들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으로 푸틴에 반대하는 시위가 지속되면 푸틴은 보나마나 이를 강경 진압할 것이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은 혁명이나 쿠데타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푸틴을 가까이서 보좌한 심복의 입에서 이런 분석이 나오는 것이 심상찮다. 항로를 변경하지 않을 경우 빙산과 충돌하는 타이타닉 호의 운명과 유사한 셈이다. 1999년 옐친이 47세의 KGB 요원이었던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했을 때 그를 취재했던 기자들은 푸틴을 “절제되고 점잖은 정치인이다”라고 묘사했다. 푸틴은 당시 후계 지명에 대해 “대통령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온당치 않다”라고 말했다. 푸틴에 대한 기자들의 판단은 지금의 시각으로는 빗나간 것이었다. 권력에 대한 야망을 절제된 언어로 포장한 푸틴의 위장술에 언론이 속은 셈이다. 옐친은 당시 진퇴양난이었다. 임기는 1년 남았으나 지지율은 바닥이었다. 68세의 고령에 병들고 지친 그는, 임기를 6개월 남긴 시점에서 푸틴에게 권력을 넘기고 하야했다.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부패 혐의로 인한 기소를 면할 수있었다. 그 다음에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났다. 평소 정치를 싫어하는 푸틴이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는 경기 침체로 기가 죽은 러시아 보통 국민과 체첸의 분리주의자들을 연결시키는 기발한 능력을 발휘했다. 당장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으로떠올랐다. 푸틴의 인기는 바로 잃어버린 제국의 복원이라는 야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푸틴에 대한 저주가 시작되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푸틴만 감지하지 못했다.

 푸틴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삭막한 풍토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래서 매사에 단호하고 능률적이었다. 체첸 분리주의자들을 기어코 진압하겠다는 결의에 불탔다. 그의 집권 초기 첫 1개월 동안 그의 지지율은 2%에서 즉각 27%로 치솟았고 러시아인의 70%는 그를 신뢰했다. 푸틴은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그때 자신이 보통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2010년 한때 푸틴의 지지율은 80%에 달했다. 여기서 멈추었다면 오늘 푸틴의 위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젊은 시절부터 권력의 마력에 취한 그는 자신의 야망과 국민의 열망을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졌다. 그것이 총 28년의 장기 집권 음모로 나타났다. 국민들은 기절초풍했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푸틴은 무조건 싫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었다. 사나운 호랑이 등에 올라탄 푸틴은 이제 내릴 준비를 해야 하지만 안전하게 착지할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21세기 지형에서 스탈린식 영광을 꿈꾼 것이과욕이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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