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경영자로 뜬 금융계 ‘이단아’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금융부 기자 ()
  • 승인 2012.06.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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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 통념 깨는 상상력 강조하며 몸소 실천…부서 간 간극 줄인 회의 등 호평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 정태영 제공
‘혁신을 꿈꾼다면 중요한 힌트 하나. 전문가 지식의 반만 쌓으라. 너무 다 알면 오히려 불리하다. 여백을 당신만의 생각으로 채우라.’(6월4일)

‘잡다한 생각은 틀로 정리돼야 한다. 그런데 그 틀에 오래 머물면 생각을 가두기에 또 버려야 한다. 발전은 틀에서 다른 틀로 이동하는 일의 연속이다.’(6월7일)

사색가나 방랑 시인의 글 같다. 알고 보면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서서 회의하고 생수병 디자인하고…

정사장은 금융계에서는 ‘이단아’로 불린다. 틀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경영하는 방식도 통념을 깬다. 정사장의 팬도 수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정사장이 공동 저자로 참여해 올봄 출간한 책 <프라이드, 현대카드가 일하는 방식 50>은 서점가에서 단기간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녹십자생명을 인수하고 지난 5월 현대라이프로 이름을 바꿨다. 정사장은 현대라이프 경영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고 있다. 현대라이프 임원들은 당초 현대차그룹 직원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보험 영업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가족회사’에 대한 영업이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사장이 제동을 걸었다고 한다. “모기업에 손 벌리는 것은 정도 경영이 아니다”라는 생각에서다.

정사장은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의 아들이다. 입시연구사 및 종로학평 지분을 증여받아 두 회사의 최대 주주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 주목받은 것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가 되면서부터다. 정몽구 회장의 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과 결혼했다.

하지만 ‘스타’ 경영자가 된 것은 순전히 스스로의 힘이다. 2003년 1월 국내 카드사 중 가장 작은 회사를 맡았고, 당시 시장 점유율 2%이던 것을 8배 늘어난 16%로 끌어올렸다. 현재 카드업계 2위 규모이다. 정사장은 고려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1987년에는 미국 MIT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땄다.

첫 직장은 현대종합상사였다. 기획실장(이사)으로 근무하다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으로 옮겼다. 현대정공에서는 수년간 일본·미국·멕시코 등의 해외법인에서 주로 근무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현대모비스 기획재정본부장, 기아자동차 구매본부장 등을 맡았지만 순탄치 않았다. 현대차그룹에 근무하면서 주요 경쟁사의 차인 일본 토요타자동차를 타고 다녔을 정도로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사장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 간부들은 나를 그림에만 관심이 있고 토요타를 모는 이단아 정도로 여겼다. 현대차그룹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 같다”라고 했다.

그가 진짜 실력을 발휘한 것은 현대카드 대표로 취임하면서부터다. 당시 회사를 직접 맡게 되어 상당히 흥분된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GE와의 전략적 제휴를 이끌어낸 것도 정사장이다. 연회비 100만원(현 2백만원)짜리 블랙카드를 출시하고 선포인트 제도를 업계에서 처음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정사장이 평소 강조하는 것이 통념을 깨는 상상력이다. 이를 위해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회의를 모두 없앴다. 임원들은 주간 보고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이메일로 사장에게 간단한 보고서를 낸다. 내용은 게시판을 통해 직원들과 공유한다. 정기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을 놓고 임원들끼리 ‘포커스 미팅’을 열어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격론을 벌인다.

현대카드 직원들은 사내에서 정사장을 만나도 목례만 한다. 그가 단상에 올라가도 박수를 하지 않는다. ‘최고경영자(CEO)도 직원 중 한 명’이라는 정사장의 평소 생각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모든 임원이 서서 경영전략회의를 하기도 했다. 현대카드의 한 임원은 “회의할 때도 계속 움직여야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며 정사장이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정사장은 현대카드를 단순한 금융회사가 아닌, 문화 마케팅의 첨병으로 바꾼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최근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빅뱅의 새 앨범 제작 과정에서 협업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현대카드는 빅뱅의 로고와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다. 빅뱅 팬들을 위해 ‘브랜드 가이드북’을 만들기도 했다. 정사장은 “YG와 업태는 다르지만 문화가 자유분방하면서도 치열한 고민을 성실하게 한다는 점에서 두 회사가 닮았다”라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비욘세, 레이디가가 등 세계적인 가수들의 내한 공연을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 이런 큰 행사를 열 때마다 10억원 안팎의 큰 돈이 들지만 현대카드 브랜드를 알리는 데 투자액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디 음악가들이 음원을 자유롭게 팔 수 있는 온라인 장터(현대카드뮤직 프리마켓)를 열기도 했다. 정사장은 개인적으로 인디 음악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기존 경영의 틀 깨는 혁신 작업 계속

현대카드는 요즘에는 부업에서도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회사 디자인팀이 생수병과 아이스커피 잔을 디자인했고 각각 대형 할인점과 편의점을 통해 유통시키고 있다.

정사장은 한 해의 3분의 1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 그만큼 비즈니스 출장이 잦다. 이런 연유에선지 토종 한국인이지만 국내 CEO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을 여지없이 깬다.

현대카드는 2007년 희한한 인사 실험을 했다. 팀장급 미만의 전 사원이 ‘커리어마켓’이라는 사내 인력 시장에서 유통되도록 만든 것이다. 커리어마켓은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은 직원들이 자신을 등록하고 마케팅하는 ‘오픈커리어 존’과 각 부서가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라고 공모하는 ‘잡포스팅 존’으로 구분되어 있다. 한 부서에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옮기겠다고 손든 직원을 부서장이 막을 수 없다.

정사장은 “자신을 개발할 최대한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진정한 복지이다. 시장 원리에 입각한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인사 시스템이다”라고 설명했다.

2009년부터는 매달 두 번째 목요일에 전 직원이 ‘마켓플레이스’에 모인다. 노트북과 간단한 서류만 챙겨 본사 컨벤션홀에 집합한 뒤 자유롭게 교류하고 있다. 부서 간 간극을 최대한 줄이자는 취지에서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처음에는 무슨 얘기를 할지 어색해했지만 신상품 출시를 놓고 즉석 회의를 여는 등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라고 말했다.

올 초에는 또 다른 혁신을 단행했다. 금융업계에서 처음으로 핵심 평가 지표인 KPI(Key Performance Index)를 없앴다. 각 본부장에게 성과 평가의 자율권을 주었다. 정사장은 “우리는 숫자를 넘어선 경영으로 갈 것이다. KPI 폐지에 대해 완벽하게 준비된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길을 가기보다 불안하지만 정답을 찾아가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정사장은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는 유럽 제휴선을 확대하려는 포석에서였을 뿐이라는 것이 현대카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양재동(현대차 본사) 눈치를 많이 본다”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많은 사람과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있다. 트위터에 거의 매일 글을 띄우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야간 스키와 와인을 즐기며 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사실도 트위터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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