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뒤 실종된 ‘지적장애자’, 범죄 사냥꾼 먹이 된 뒤 빚더미에…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6.25 00: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채 대출·자동차 구입·카드 발급 등에 이용당해…채무는 가족들에게 전가되고 숙부는 자살

정신지체 장애자인 조카의 일로 자살한 임씨가 남긴 유서. ⓒ 시사저널 정낙인

‘정○야 ○○, ○○이형, 잘 돌봐주기 바란다.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잘 살기 바란다. 엄마한테 미안했다고 전해주면 고맙겠다. 아빠가.’

지난 4월30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의 한 아파트에서 임 아무개씨(66)가 자살했다. 임씨는 제초제를 마시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가 끝내 생을 마감했다. 집 안에서는 임씨가 죽기 직전 둘째 아들에게 쓴 유서가 발견되었다. 임씨는 평소 둘째 아들을 가장 의지했다고 한다.

유서의 내용은 짧았지만 남은 가족들을 걱정하고 염려했다. 특히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잘 살기 바란다’는 말에서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임씨는 왜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일까. 여기에는 임씨의 슬픈 가족사가 있었다.

임씨는 형의 아들인 조카 성철씨(가명·44)와 31년째 함께 살고 있다. 성철씨의 아버지가 일찍 작고하고, 어머니가 가출하자 13세 때부터 데리고 살았다. 임씨에게는 친아들 둘이 있었으나 항상 조카를 먼저 생각했다. 숙모인 차 아무개씨(55)는 “우리 남편은 조카를 친자식처럼 키웠다. 결혼해서는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정관수술까지 할 정도였다. 수술한 것이 풀리면서 아이들을 갖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성철씨는 태어날 때부터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는 중학교까지만 마쳤다. 사회생활도 ‘단순 노동’ 정도만 할 정도이다. 2010년 6월1일 조카 임씨는 숙부와 크게 다툰 후 집을 나갔다. 가족들은 성철씨가 금방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가족들은 같은 해 7월8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에서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지난해 7월부터 집으로 이상한 고지서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성철씨 명의로 두 개의 회사에서 신용카드가 만들어졌고, 1천6백만원을 사용했다. 캐피털업체에서 대출받아 중형 승용차인 K7(3천4백만원 상당)도 출고했다. 이 차량은 구매한 다음 날 바로 중고차 매매 시장에 팔았다. 성철씨의 이름으로 휴대전화 일곱 대와 일반전화 한 대 등 총 여덟 대의 전화가 개설되어 있었다. 휴대전화 대출을 받았는지 휴대전화 요금이 6백90여 만원에 달했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8월31일에는 성철씨의 이름으로 사채업자에게 6천만원을 빌렸고, 사채업자 이 아무개씨는 숙부인 임씨에게 이자를 포함한 9천만원을 갚으라며 채무 변제를 독촉했다. 숙모 차씨는 “갑자기 고지서들이 집으로 배달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온 것을 모아놓으면 엄청나다. 사채업자로부터 빚 갚으라고 연락이 왔는데, 조카가 집에 없어서 그냥 방치해놓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성철씨의 명의로 된 채무만 해도 1억3천여 만원에 달한다. 현재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13평)는 성철씨 명의로 되어 있다. 차씨는 “실제로는 우리 가족 아파트이지만 편의상 조카 명의로 해놓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채업자는 이 아파트를 상대로 경매를 신청했다. 카드사나 캐피털업체 등도 채무만큼의 금액을 아파트에 가압류를 걸었다. 가족들은 단순 노동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지능을 가진 성철씨가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고, 카드를 만들고, 휴대전화와 일반전화 등을 여덟 대나 개설하자 그가 누군가에 의해 범죄에 이용되었다고 직감했다. 그리고 흥신소까지 동원해서 찾았지만 허사였다.

숙부 임씨는 지칠 대로 지쳐갔다. 조카를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범죄에 희생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 힘든 날을 보냈다. 여기에다 아파트까지 경매에 넘어가게 되자 점점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갔다. 임씨는 당뇨와 뇌졸중 등 지병으로 인해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임씨는 정신적인 압박을 받았고, 급기야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임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얼마 전 1억8천5백만원에 경매에 넘어갔고, 오는 8월까지는 집을 비워주어야 한다. 숙모 차씨는 “내가 식당 일을 하면서 우리 가족을 부양했다. 이 집도 죽어라고 고생해서 간신히 마련한 것이다. 우리 애들은 아직 결혼도 못했는데, 집이 경매에 넘어갔으니 살길이 막막하다. 당장 길바닥으로 나가야 할 처지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씨에게는 가출한 조카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조카가 범죄 세력에 이용당하다가 희생양이 될까 봐 애가 탔다. 또, 가족에게 닥친 상황들은 당사자인 조카가 있어야만 해결점을 찾을 수가 있었다. 차씨는 5월9일 안양동안경찰서를 찾아갔다. 실종 신고를 했을 때 경찰에서 조카만 찾았더라도 남편도 죽지 않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실종팀 여직원에게 ‘조카 실종 신고한 것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접수만 되어 있다’고 했다. 실종팀장을 만나서도 전후 사정을 모두 이야기했다. ‘범죄자가 조카를 잡고 있을지 모르니 빨리 찾아달라’라고 사정했다. 그날부터 매일같이 경찰서에 찾아가다시피 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차씨는 안양 동안서 실종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5월9일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분명히 ‘실종 신고’가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11일에는 ‘실종 신고가 해지되었으니, 다시 접수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접수시켰다. 그런데 실종 신고한 가족들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이 경찰이 알아서 실종 신고를 해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최근 지적장애자나 노숙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범죄 용의자들은 서울역 등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모처로 유인해 돈을 받고 상선 조직에 팔아넘긴다. 상선은 노숙인 명의로 은행이나 사채업자에게 대출을 받거나, 휴대전화를 개설하는 등 범죄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맨 처음 실종 신고를 한 2010년 7월8일의 신고 접수증(왼쪽). 오른쪽은 지난 5월11일의 실종 신고 접수증. ⓒ 시사저널 정낙인

실종 신고했지만 경찰이 해결해 주진 못해

가족들은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가는데, 정작 수사에는 진척이 없었다. 현행 ‘경찰청 실종 사건 처리 매뉴얼’을 보면 ‘모든 실종(가출) 사건 발생 시 실종(가출) 동기가 불명확하며 범죄 관련성이 의심되거나 인정되는 경우 경찰서장에게 즉보하고, 즉시 수사전담반을 편성해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성철씨의 경우 숙부와 말다툼을 한 상태에서 집을 나갔기 때문에 처음에는 실종보다 ‘가출’에 무게가 실릴 수 있다. 하지만 ‘범죄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도 금융 거래 내역, 통화 내역, 인터넷 접속 기록, CCTV 인출 모습, 병원 진료 기록, 취업 기록 등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본 후 판단해야 한다. 또, 가출 사건이 접수되면 그때부터 단계별 진행 상황을 가출(실종)자 가족에게 ‘문자 알림 서비스’로 알려주어야 한다. 임씨 가족은 경찰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5월9일 안양 동안경찰서에 찾아갔을 때는 ‘신용카드 개설, 사채 대출, 휴대전화 등 8대 개설 등’ 범죄 혐의점이 명백했는데도, 경찰의 대응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숙모 차씨는 6월6일에는 안양 동안경찰서 민원실을 찾아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는 진정서에서 “우리 조카는 정신 연령이 아주 떨어져서 단순 노동밖에 할 수 없다. 조카가 사채 돈을 쓴 것은 사채업자 또는 누군가가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카를 잡고 있는 사람의 전화번호도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 번호로 전화하면 결번으로 나온다”라며 수사를 촉구했다. 그는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가 아쉽다고 여러 번 말했다. 전화번호, 은행 CCTV 등을 통해 얼마든지 추적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경찰, 피해자 찾고 사기 용의자 추적 중

기자가 성철씨와 차량 계약을 맺은 자동차 영업사원에게 전화했더니 “당시 상황이 자세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계약할 때에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옆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키가 계약자보다는 작았던 것 같다”라고 기억했다.

이에 대해 안양 동안서의 실종수사팀 관계자는 다른 주장을 폈다. 그는 “우리가 실종자를 추적해보니 회사에 취업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지한 것이다. 이것도 실종 신고를 한 숙부 임씨에게 전화로 통보했다. 가족에게는 전화로도 할 수 있고, 문자로도 할 수 있다. 실종자 가족의 입장에서 (경찰 수사의) 아쉬움을 말할 수 있겠으나 우리의 실종 수사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매뉴얼에 있는 그대로 했다”라고 강조했다.

안양 동안서는 6월6일 진정서가 접수된 후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6월15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성철씨를 찾아냈다. 수사에 들어간 후 9일 만이다. 실종수사팀 관계자는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닌다는 것을 알고 찾았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성철씨는 어디에서 누구와 생활했을까. 경찰 등에 따르면 성철씨는 가출한 후 동대문 등 찜질방을 전전했다. 그곳에서 문 아무개씨(36)를 만났다. 노동 일도 같이하고 인력소개소에도 다녔다. 문씨는 성철씨에게 재산이 있는 줄 알고 사채 대출, 휴대전화 개설, 자동차 구매 등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문씨는 사기 등 전과가 있다고 한다.

경찰은 사기 용의자 문씨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고 그의 소재를 추적하고 있다. 안양 동안서 실종수사팀 관계자는 “성철씨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이 고소장을 제출했기 때문에 문씨를 검거해서 두 사람의 만남부터 헤어질 때까지의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 실종수사팀이 빠르게 대처했기 때문에 실종자를 조기에 찾고 용의자의 인적 사항도 알아낼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문씨의 몸에 문신이 있는 등으로 미뤄 조폭 연루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경찰은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한편, 최근 지적장애자나 노숙인들을 상대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범죄 용의자들은 서울역 등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모처로 유인해 돈을 받고 상선 조직에 팔아넘긴다. 상선은 노숙인 명의로 은행이나 사채업자에게 대출을 받거나, 휴대전화를 개설하는 등 범죄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