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세’, 안철수 ‘최대 변수’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6.2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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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 여론조사 지지율 추이 / 역대 대선에서 볼 수 없었던 불확실성에 휩싸여 여전히 혼전

ⓒ 시사저널 유장훈·박은숙

이제 대선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올해 대선은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야권 후보 가운데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여전히 출마에 대해 명확한 입장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자신을 뒷받침해줄 만한 정당이나 정파도 없다.

역대 대선 정국을 보면, 6월이면 대선 구도가 이미 짜였다(37쪽 상자 기사 참조). 특히 2002년 대선 때에는 당시 여야 모두 당내 경선을 4~5월에 끝내고 일찌감치 ‘이회창 대 노무현’의 양자 구도를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올해는 여야 모두 당내 경선을 최대한 늦출 심산인 것으로 보인다. 9월이나 되어서야 후보가 선출될 듯하다.

리얼미터·모노리서치 등 각 여론조사 전문 기관들의 최근 정례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지난 4월 총선 이후 큰 진폭 없이 일정한 흐름이 감지된다.  

민주 ‘3파전’이 변수이지만 여전히 ‘빅3’ 구도

새누리당에서는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독주가 점점 더 굳어지는 듯하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 등이 계속 추격전을 벌이고 있지만, 힘겨워 보인다. 다자 구도에서 지지율 격차가 30~40%포인트 차까지 벌어진다. 박 전 위원장의 지지율은, 완만한 오름세와 내림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6월 들어 40% 안팎을 꾸준히 유지하는 모습이다.

다만 한 차례의 파고가 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비박 연대’가 그것이다. 김지사와 정 전 대표 그리고 이재오 전 특임장관 등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 여권에서 양자 구도가 형성되면, 박 전 위원장의 지지율이 흔들릴 수도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이 대세를 잡았다”라는 것이 대다수 여론조사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이다. 

문제는 민주당 등 야권이다. 안철수 원장과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여전히 앞서 있기는 하다. 안원장은 20% 안팎, 문고문은 10~15%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손학규 전 대표나 김두관 경남도지사 등은 아직 5%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역대 대선의 상황을 보면, 6월의 시점에서 5% 벽을 넘지 못하는 후보는 거의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손 전 대표나 김지사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안원장에게 있다. 만약 안원장이 7~8월에 대선 출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을 경우, 그를 향했던 20% 정도의 중도 진보 성향의 지지층이 자신에게 올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20% 선을 넘었던 문고문의 지지율이 최근 10% 초반대로 주춤하는 사이 손 전 대표나 김지사의 지지율이 조금씩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도 희망적으로 보는 대목 가운데 하나이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지금 여론조사 순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전혀 새로운 인물이 남은 6개월 동안 혜성처럼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점이다. 지난 4차례의 역대 대선을 보면, 6월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빅3’를 형성했던 유력 후보들이 결국 대권을 다퉜고, 2002년 한 번을 제외하고는 지지율에서 1위를 달렸던 후보가 결국 대선에서 승리를 안았다. 따라서 지금 ‘빅3’를 형성하고 있는 박 전 위원장과 안원장, 문고문이 대권에 한 발짝 더 앞서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을 쫓고 있는 나머지 후보들은 올여름 ‘빅3’ 구도를 허물기 위한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라당이 모두 4~5월에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확정했다. 민주당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각각 선출되었다. 일찌감치 양자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여론조사는 ‘이회창 대 노무현’의 양자 구도 속에서, 제3 후보로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박근혜 미래연합 후보를 변수로 거론했다.

1997년 6월은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줄곧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유지한 가운데, 여당이었던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에서는 이회창, 이인제, 박찬종 등 이른바 ‘9룡’이 경선을 앞두고 치열한 당내 경쟁을 벌이던 때였다. 이들 가운데 야당의 김후보는 물론, 당시 여권의 9룡 가운데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던 이회창·이인제 후보가 모두 대선에 출마했다.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가 각각 여야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던  1992년 대선은 6월에 이미 여야 각 당 대선 주자들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였다. 그때는 당내 경선이 형식에 가까웠다. 그해 6월 당시 여론조사 역시 김영삼·김대중·정주영·박찬종 후보 등 대선에 실제 출마했던 후보들이 1~4위를 형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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