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위기, ‘달러 대폭락’으로 간다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06.25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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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총선과 유로존의 미래 / 그리스 선거 결과 최악 막았지만 불안은 계속…1~2년 후가 더 문제

정정 불안 상태가 계속되던 지난 5월12일 그리스 국회의사당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 ⓒ AP 연합

“선거가 유로 위기를 해결했다고 여기는 것은 순진한 짓이다”라는 독일 <슈피겔> 6월18일자 제목처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냐 잔류냐의 문제는 시간을 연장한 것뿐이지 해결된 것이 아니다. 불과 한 달 전, 유로존 잔류는 희망하면서 유럽연합(EU)의 긴축 정책 요구를 거부하는 좌파 정당을 선출했던 그리스 국민들이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은 바로 독일의 최후통첩 같은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지난 5월6일 총선 직후 독일 재무장관 쇼이블레는 그리스 유권자들이 총선에서 국회의원만 뽑지 말고, 유로존 탈퇴 여부도 그리스 국민 스스로 국민투표에서 결정하라고 강한 어조로 발언했다. 세계 증시는 그리스 선거 결과가 호재로 작용해, 선거 다음 날인 6월18일 독일 증시 1.4%, 다른 유럽 증시도, 1%에서 1.8%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유로 위기가 해결된 상황이 아니어서 오히려 달러에 대한 유로화 가치는 0.9% 하락했다. 

사마라스 총리, 유로존 지도자들 설득시켜야

ⓒ Xinhua
일부 관측통들은 그리스에서 안정된 연합 정부를 탄생시키는 것이 유로존 탈퇴를 막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 영구적인 장치는 못 된다고 보는 관측도 많다. 연정 구성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마라스 전 총리는 2010년 1차 구제 금융을 거부했던 인물로, 유로존 지도자들을 설득시키려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유럽연합 관계자들의 요구이다. 사마라스는 1천3백억 유로 규모의 2차 구제안이 요구하는 조세 정책과 구조 개혁을 진지하게 수행할 것임을 유로존 지도자들에게 설득시킬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에서 그리스 유권자들의 투표 불참률은 5월6일 선거의 3%보다 높은 40%로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것을 두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6월18일자는, 선거에 불참한 그리스 국민들은 새로운 정부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 데 희망을 걸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리스의 유로 탈퇴는 유로화에 유리한 것인가라는 물음은 이제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뉴욕 대학의 루비니 교수 같은 경제학자는 이미 그리스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과거의 화폐인 드라크마로 돌아가 평가 절하를 통해서 경쟁력을 되찾는 길이라고 말한다. 비록 구조적 개혁이나 환율 조정이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유로에 잔류하는 것보다는 그리스에게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역설했다.

유럽중앙은행의 고위 관계자들은 유로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단일 통화에 대한 신뢰 상실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둘러싼 논란들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스페인 시민들이 6월16일 방키아 은행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IMF를 위한 모금’이라는 글이 적힌 깃발이 보인다. ⓒ Xinhua 연합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론 지지자들의 견해는 유로존의 붕괴에 대한 공포와 일치한다. 왜냐하면 유로존 붕괴 위험은 독일이 어쩔 수 없이 유로를 사수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 6월18일자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경우, 유로 사수 방법은 대형 은행에 대한 감독과 재자본화를 초국가적인 유럽 시스템에서 관장하는  ‘은행 연합(banking union)’ 형태이거나, 국채를 공동으로 발행한 유로 본드를 통해서 상호 출자하는 형태의 ‘회계 연합(fiscal union)’을 만드는 것이다. 두 가지 방법은 공통적으로 좀비 은행과 좀비 국채들에 대해서 좀 더 확실하게 정리하게 된다.

그런데 메르켈 독일 총리의 측근에 따르면 메르켈은 임기 중에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방출시킴으로써 벌어질 소란에 대한 리스크를 떠맡기를 원하지 않고 있고, 가능하면 그것을 피해가려는 심사라고 한다.

그리스 선거에 대한 독일 언론의 분석과 평가는 독일 내부의 입장을 간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중도 우익 성향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자이퉁은 비관적으로 기우는 논평을 내놓았다. ‘그리스 드라마는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유로를 고수하기를 원하지만 대다수는 추가 지원 조건에 대해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독일을 포함한 EU뿐만 아니라 자국의 부패한 지도자들이 만든 계획의 희생자들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처럼 잘못된 생각과 함께 그리스 내부적으로 극명하게 갈라선 정치 양극화도 문제점이다. 과연 새로운 연정이 이렇게 양극화된 분열을 극복하고 근본적인 쇄신에 따라 정부 조직으로 개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경제 전문지 한델스 블라트는 문제의 심각성을 이보다 크게 보고 있다. ‘그리스 문제는 너무나 커서 정당들이 거국 연정을 구성하려면 제대로 된 자문을 조속히 받아야 한다. 연정 구성에 수주일을 소모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연정 구성에 실패할 경우 세 번째 국민투표를 할 여건도 못 된다.’

좌파 성향의 디 타게스 자우퉁은 그리스의 총선에서 보여준 그리스 정파 간 분열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유권자의 3분의 1은 보수 진영을, 그리고 3분의 1은 좌파 정당인 시리자를 선택했다. 두 정당이 유로를 지키기 위한 열망으로 단결했지만, 방법론에서는 서로 극과 극으로 나뉘어 있다’라고 평하면서 정치적으로 해결할 가능성에 비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보수 성향의 디 벨트는 그리스의 상황을 침울하게 보고 있다. ‘그리스 선거 전에 이미 그리스 상황은 어떤 정당이 승자가 되든 상관없이 심각했다. 단지 급진 좌파의 정권 획득을 피함으로써 그리스는 당분간 유럽연합으로부터 지원을 더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유럽은 더는 2차 대전 후의 유럽이 아니다. 독일은 안정적이고 강해졌으며, 이런 이유에서 그리스인, 프랑스인들 그리고 곧 스페인과 이탈리아인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있다’라고 평하며 독일의 독주를 시기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있다.

대중적인 일간지 ‘빌트’는 가장 신랄한 어조로, 좌파에 표를 던진 유권자가 많았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을 ‘멍청이(idiots)’ 취급하는 좌파 정당을 선택했다. 좌파 정당은 공짜로 유로를 유지할 수 있고, 그리스가 다른 유로존 국가들에 대해 대단한 협상 능력을 지닌 줄로 잘못 알고 있다. 그리스는 개발도상국으로 경제적 기반도, 제대로 된 정부 조직도, 재정 위기를 풀어야 될 전략도 없는 나라에 불과하다. 그리스 선거 결과는 유로에 대해서 거부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분명하게 찬성한 것도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통스러운 시련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는 그렇게 쉽게 유로존에서 탈퇴할 수 없다. 리스본 조약에 따르면 유로존 가입은 철회되지 못한다. 탈퇴를 규정하는 조항이 조약에 없다. 왜냐하면 유로존은 ‘운명적인 결합’으로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강제 탈퇴도 법적으로 단지 어렵게만 가능하다. 강제로 탈퇴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 조약에서 매우 엄격하게 우회적으로 기술되어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27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같은 새로운 규율에는 장시간이 소요되거나, 또는 도중에 좌절될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그리스 스스로가 자신의 탈퇴에 관한 조약 개정에 동의해야만 한다. 유로존 탈퇴를 위한 방법으로, 법적으로 가능한 단 하나의 뒷문이 있다. 즉, 일단 그리스가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것이다. 이는 유럽연합 조약 제50조에 따라서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는 유럽연합집행이사회와 협상한 뒤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탈퇴와 함께 그리스는 유럽연합에 관한 모든 권리가 박탈되고, 더는 통화 연합의 일부가 아니게 된다.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그리스의 부채 문제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유로화에 포함된 이전 부채들은 새로운 자국통화를 평가 절하하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상승할 것이다. 지금 그리스의 상황으로 보면 외부로부터의 엄청난 재정 지원이 없을 경우 국가 파산에 직면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재정 위기 먹구름의 다음 행선지는 스페인

2008년 리스본 조약 체결을 축하하는 베이징의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선 주중 스웨덴 대사(왼쪽)와 유럽연합 대사. ⓒ AP 연합
머니모닝 6월14일자는 스페인 구제와 이어지는 이탈리아로의 재정 위기의 전염 가능성을 예상하며 유로의 회생 불능을 전망하고 있다. 스페인 구제가 종국적으로 유로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라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머니모닝은 6월 초에 1천억 유로 규모나 되는 스페인 구제책이 유로에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고 보았다. 유로안정메카니즘(European Stability Mechanism: ESM)과 유럽금융안정기금(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und: EFSF)을 합친 대출 상한액은 7천억 유로이다. 만일 1천억 유로를 스페인에 대출해주게 되면, 잔고는 3천8백67억 유로가 된다. 왜냐하면 EFSF가 이미 2천1백33억 유로를 대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향후 2년간 필요로 하는 금액이 6천2백억 유로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동원할 수 있는 구제 금액 총액보다 2천3백30억 유로가 추가되는 액수이다.

지난 1년간 독일 은행의 잔고는 4.4% 늘어나 4월30일 현재 2조1천7백억 유로이지만, 같은 기간 그리스·아일랜드·스페인 은행은 6.5%가 감소했다. 그리스 은행들에서 하루에 인출된 금액이 8천만 유로에 달한다. 스페인 은행에서의 인출은 통제되어 있어 구체적인 자료는 없지만, 그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현지 관측통들은 전한다.

전설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스페인 구제는 크게 정신 나간 짓이라고 힐난하며, 스페인이 그리스와 다르지 않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리스와 스페인이 다른 점은 리더십이다. 그리스는 긴축 정책을 시행할 자세와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반면, 스페인의 정치 리더십은 긴축 재정을 채택해야 할 이유와 방법을 동시에 알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기정사실이나, 스페인이 같은 길을 걷게 된다고는 보지 않는다.

필자는 <유로피안 판도라>라는 책의 저자로서 지난 5월 한국 주요 연구소들에서 ‘유럽연합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유로존의 위기는 또 다른 큰 소용돌이를 몰고 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달러의 가치 폭락이다. 빠르면 1년 안에, 늦어도 2년 안에 닥칠 위기는 2008년 금융 위기보다 더 큰 것이 될 것이다. 유로의 가치가 한 자릿수로 폭락한다면, 달러의 폭락은 두 자릿수에 해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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