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격추에도 손 못 쓰는 나토
  • 조명진│유럽연합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12.07.0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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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서북 해안 상공에서 터키 전투기 피격…대선 앞둔 미국의 고민 반영한 듯 애매한 대응 보여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나토 본부. ⓒ AP연합

카다피의 학정에 대한 국제 여론을 의식해 리비아에 대한 군사 행동을 감행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더 극악한 유혈 탄압과 학정을 하는 시리아에 대해서는 왜 제대로 손을 쓰고 있지 못하는가? 시리아의 민주화 운동은 시작된 지 15개월이 지났고, 아사드 정권의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국민을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미 1만2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리아가 방어 능력 과시한 것이라는 관측도

이 와중에 6월22일 터키의 전투기가 시리아 서북 해안 상공을 비행하다가 격추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터키 정부 당국자는, 격추된 자국 전투기가 시리아 영공을 잠시 침범했지만 일반적인 훈련 비행 중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리아 영공에 있었더라도 사전 경고 신호나 요격기의 출격도 없이 그냥 격추시켰다는 것은 통상적인 관례가 아니다. 격추 배경과 관련해서는 민주화 세력에 대해 잔인하게 대응해 이미 국제적으로 고립된 아사드 대통령이 확인되지 않은 비행 물체가 진입하자 국제 사회의 개입으로 판단하고 내린 과도한 행동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 사회에 시리아의 방어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다. 터키 공군의 입장에서는 시리아 방공 체계를 시험해본 것이며, 저공비행하는 전투기에 대해서조차도 시리아 방공망이 작동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 시리아는 터키 전투기를 미사일을 사용하지 않고 대공포로 격추시켰다.

이번 터키 전투기 격추 사건을 계기로 시리아 사태를 국제 역학 관계를 통해 한번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터키와 시리아의 관계를 보자. 양국 관계는 무역 자유 지역과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하는 등 최근까지도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터키는 현재 3만3천명에 이르는 시리아 피난민들과 시리아의 반정부 인사들을 보호하고 있다. 시리아와 인접한 다른 국가들처럼, 터키도 시리아 사태가 자국으로 번질 가능성에 대해서 움츠려 있다. 그러나 외교 관계가 이미 단절되고 경제 제재 조치에 동참하고 있는 터키와 나토의 동맹 국가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불확실한 상태이다. 터키의 공군기가 격추된 상황에서조차 국가적 대응을 취하려는 의지는 약해 보인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 신화통신
나토의 주축인 미국과 영국은 같은 집단 안보 체제의 일원인 터키의 전투기 격추에 대해 분개하며 단호히 대처할 것을 다짐했지만 현재까지 외교적인 수사로 그치고 있다. 터키는 ‘안보를 위협받은 회원국은 전체 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는 나토 조약 4항에 따라 28개 나토 회원국 모임을 소집했다. 동시에 터키의 에르도안 총리는 즉각 이 사실을 국회에 통보했다.

그런데 나토가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나토의 선봉장인 미국을 보자. 오바마 행정부는 바닥을 드러내는 잔여 국방 예산뿐만 아니라, 대선이라는 변수로 인해 섣불리 군사적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미 해외 미군 주둔 비용에 예산이 초과된 상태이고, 새로운 전쟁에 미군을 희생한다는 것은 오바마로서는 재선에 치명타가 된다.

중국·러시아가 ‘시리아 후견인’인 것도 걸려

마찬가지로 나토의 회원국이면서 동시에 유럽연합 회원국인 나라들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재정 위기로 긴축 정책을 펴고 있거나 동참해야 되는 상황에서 시리아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은 국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리아는 리비아와 다르다. 상당한 군사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국제 관계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시리아의 후견인이 되어주는 것도 나토로서 군사 행동을 취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그리고 리비아와 다른 점은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반군이 시리아에는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중동의 전통적인 우방이라면 이란과 시리아를 들 수 있다. 6월27일자 러시아의 일간지 베도모스티는 시리아에 S-300 장거리 미사일 시스템을 제공하는 계약을 유보한다고 익명을 요구하는 러시아 무기 제조업체 알마즈 안테이(Almaz-Antey) 사 내부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런 계약 자체가 밝혀진 것은 일주일 전 이 방산업체의 연례보고서에서 이 사실이 언급된 이후였다. 베도모스티의 보도를 놓고, 미국을 의식한 러시아의 조심스런 외교적 제스처로 보는 관측이 있다. 2010년에도 러시아는 같은 미사일 시스템의 이란 수출을 취소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측통은 시리아가 자금 사정이 경색되어 S-300을 구매할 능력이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관측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양국 간 군사 협력은 시리아가 추가 무기 구매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러시아가 100억 달러에 상당하는 시리아의 부채를 탕감해 주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시리아에 수출된 무기의 총 액수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 의회에 따르면 러시아는 35억 달러의 판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고 있고,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그 수치를 50억~6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시리아에 인도된 러시아의 무기 체계로는 초음속의 야크혼트(Yakhont) 미사일을 장착한 K-300 해안 방어 시스템과 대공 시스템인 BUK-M2와 PANTSYR-S1이 있다. 5억5천만 달러 가치의 공군 훈련기인 Yak-130 항공기 36대에 대한 계약이 연초에 양국 간에 체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훈련기는 경전투기로 사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러시아는 업그레이드된 24대의 Mig-29기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계약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공식 발표가 아직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가 제공하는 무기는 내부 분쟁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천명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오래전에 계약된 러시아 무기는 일반 국민들에게 사용될 수 없는 방어용 무기 체계라고 강조했을 뿐이다.

시리아에 의해 자국의 공군기가 격추된 터키의 역사적 역학 관계는 시리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불과 한 세기 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서 식민지화되기 전에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는 모두 오토만 제국에 속한 영토였다. 그리고 이들 국가 중에 안정되고 평화로운 민주 국가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주저 없이 답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물론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이대로 존속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아사드 이후의 시리아가 제2의 레바논, 제2의 이라크 또는 제2의 팔레스타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중동 전문가들의 관점은 바로 서구 열강에 의해서 겪은 수모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터키 전투기의 격추에 따른 집단 안보 체제로서 나토의 대응은 한마디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약의 원칙이 실제 적용되는 데서 애매함을 드러낸다. 만일, 러시아에 의해 노르웨이 전투기가 격추되었다면, 나토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나토 또한 회원국의 비중에 따른 형평성 문제에서 과연 공정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이번 터키 전투기 격추 사건에 대한 나토의 대응은 유일 초강대국이자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을 자부해왔던 미국이 더는 그럴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28일 시리아와 인접한 터키 국경 도시를 터키 군용 트럭이 지나고 있다. ⓒ AP연합
시리아와 접경하고 있는 터키의 남부 국경 지대에는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에 반기를 들고 숨어든 다수의 시리아 반군이 포진하고 있다. 한때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반군은 최근 대오를 정비하고 거의 정규군 수준의 편제를 갖추었다. 이들은 터키 정부의 비호 아래 조직적인 훈련을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일사불란한 편제를 완비한 채 시리아 내 반군 세력에게 각종 무기, 통신 장비, 야전병원 시설을 제공하는가 하면 심지어 이곳으로 도주한 반군 병사들에게 급여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곳이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최근 시리아 방공포대가 터키 전투기를 격추한 사건 때문에 양국 간 긴장이 높아지면서부터였다. 

반군은 이곳 거점을 시리아 내 군·정부·인권단체들을 규합한 반정부 기지로 키우고 있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고 종국에는 대안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반군 지도자들은 이 기지를 ‘정부 내 정부’라고 선포할 만큼 자신만만하고 대담해졌다. 이들 지역에서는 아사드 정부의 통제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 지역에는 이미 3만여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전투기 피격 사건을 전후해 10여 명의 시리아 장성들까지 망명해오는 바람에 사기가 충천하고 있다. 장성들의 집단 망명 이후 다수의 시리아 병사도 정부군에서 이탈해 이곳으로 잠입하고 있다.

한편 터키 정부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지휘관들과 회동하고 이 북부 기지를 교두보로 활용해 아사드 정권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전략을 숙의했다. 반군은 또한 단순히 시리아 내 반군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리아 내 ‘자유시리아군’ 및 반정부 민병대와 제휴할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아사드 정권을 대체할 민간 정부가 출현할 경우 이 정부를 전략적으로 돕는 방안도 찾고 있다.

반군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시리아 내에는 10개의 반정부 군사 조직이 구성되어 아사드에 반기를 든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 시리아 내 최대 망명 단체인 시리아국민위원회는 반군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매월 반군에게 월급을 준다. 급여에는 병사 1인당 최소 월 2백 달러와 가족의 생계비가 포함되어 있다. 지급되는 돈은 주로 반군 조직의 운영비와 아사드 정부군에 대한 작전비로 사용된다. 한 반군 지도자는 “이제 모든 작전을 전략적으로 감행할 단계에 왔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거사 환경이 무르익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시리아 내 국제감시단의 노르웨이 대표인 로버트 무드 소장은 지난주 유엔 안보리 보고에서 “반군의 저항이 점점 효율화되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시리아에서 망명해 반군을 지휘하고 있는 하산 카셈은 자신의 군 조직에 대해 ‘북부자유여단’이라고 호칭했다. 이 여단은 거의 정규군 수준의 전력을 갖추었다.

아사드 정권은 지금까지 반정 봉기를 일으킨 양민 1만4천여 명을 학살했다. 국제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고 민심도 이탈하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로부터의 무기 공급도 미국의 견제로 끊겼다. 고립무원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부여단이 모종의 거사를 꾀할 경우 아사드 정권은 종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대량 학살을 자행하면서 집요하게 버티던 아사드 정권이 엉뚱하게도 터키 북부 국경에 집결한 반군 조직에 의해 붕괴될 위험에 처한 상황 앞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이와 때를 같이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주둔한 정부군 기지가 반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반군 소식통에 따르면 이 공격에 의해 정부군 33명이 사망했다. 피격 장소는 아사드 대통령의 관저에서 3마일 떨어진 곳이다. 이 공격은 자유시리아군이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격이 북부여단과의 사전 모의를 통해 이루어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때가 때인 만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한편 시리아 국영 TV는 시리아 공군 중장 1명이 반군에 납치되었다고 보도했다.  조홍래│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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