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 주고 사람 잡은 ‘실적지상주의’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7.0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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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자살 부른 SC은행의 성과 강조 시스템, 도마에 올라…“무한 경쟁 분위기” 내부 고발도

ⓒ 연합뉴스(왼쪽), ⓒ 시사저널 박은숙(오른쪽)

지난 6월16일 토요일. 조 아무개 한국SC은행 성수동지점 부장은 직장 동료들과의 산행에 참석하지 않았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활달한 성격이었으나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산행을 거절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월요일, 그는 자신이 살던 용인시 수지구 아파트 16층 계단 창문으로 투신했다. 조부장은 퇴근 후 축구 교실을 마친 아들을 데리러 갈 정도로 자상한 아빠였다. 그는 유서에 ‘실적 스트레스가 항상 머릿속에 빙빙 돌고 압박감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조직이 너무 힘들게 한다’라고 썼다.

조 아무개 부장의 자살 소식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인터넷상에는 애도와 함께 ‘도대체 은행원의 실적 압박이 어느 정도이기에 사람을 자살로까지 몰아세우나’라는 요지의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예견된 일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SC은행 특유의 무한 경쟁 분위기와 성과급제가 이번 사건을 불렀다는 내부 고발도 나왔다.

실적 저조한 직원들은 ‘후선’ 발령

조부장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지점의 SB (Small Business) 담당 부장을 맡고 있었다. SB 담당 부장은 매출액 규모가 비교적 작은 기업에 대한 대출 및 외환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이다. 공식 명칭은 부장이지만 통상적으로 ‘기업 금융 지점장’ 혹은 RM이라고 불린다. RM은 외부 영업을 담당한다. 은행에 찾아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수동적 영업이 아니다. 직접 돌아다니며 실적을 올려야 한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SC은행의 한 인사에 따르면, 조부장의 실적은 양호한 편이었으나 관리하는 몇 개 기업에 대한 실적이 빠져나갈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관리하는 기업 실적 중 일부가 대출 상환이 돌아오는 등의 이유로 빠지게 되면 담당자는 그에 해당하는 만큼을 다른 곳에서 채워야 한다. 예를 들어, 대출금 중 10억원이 상환되면 그는 추가로 10억원 규모의 대출을 성사시켜야 실적을 유지하게 된다. 결국 조부장이 유서에 언급했던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는 실적이 깎이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해 나타난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한 SC은행 직원은 “조부장이 자살한 당일도 한 지점의 회의에서 실적 얘기가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기겁했다. 다른 은행과 달리 몇십 년 근무를 해도 저렇게 일선 영업을 해야 하고 실적 때문에 자살까지 하게 된다는 현실이 답답하다”라고 전했다.

한국SC은행에서는 지점장 등 직급이 2급 이상인 직원 중 실적이 저조한 사람을 대상으로 ‘후선 발령’을 내리고 있다. 실적에 따라 등급을 1등급부터 5등급으로 나눈다. 연속으로 5등급을 받은 직원은 보직에서 뺀 후 후선 발령을 내린다. 대상자는 지역본부 소속으로 뺀 후 별도의 목표 실적을 부여받는다. 이후 1년 동안 자신에게 부여받은 실적을 채워야 한다. 실적을 채우면 일선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한번 후선 발령을 받으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SC은행의 한 영업 담당 인사는 “후선 발령을 받으면 ‘끝났구나’ 하는 분위기이다. 직원들 데리고도 못 하던 것을 혼자서 하라고 하는데 누가 할 수 있겠나. 후선 발령자들은 연체 대출 관리 등 업무 지원 보직에 배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사측은 목표 실적을 주고 영업을 시킨다”라고 전했다. 후선 발령을 받고도 실적을 내지 못하면 연봉을 삭감당한다.

SC은행측 “자기계발 돕자는 것이 기본 취지”

자살한 조 아무개 부장이 근무했던 SC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성수동 지점. ⓒ 시사저널 박은숙
후선 발령 제도는 다른 국내 은행에서도 관리자급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한국SC은행은 이를 지점장급 이하 전 직원에게 확대해 적용하려 했다. 지난해 은행권 역사상 최장 기간 파업으로 기록된 SC제일은행 파업 사태가 일어난 이유가 해당 제도를 전 직원에게 확대하려고 했던 사측의 시도 때문이었다. 당시 노조의 반발로 제도 도입은 무산되었다.

재택 근무 명령을 내린 사례도 있다. 한국SC은행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2010년 12월 말 명예퇴직을 신청한 사람 중 다섯 명의 신청을 반려하고 두 명에게 재택 근무 명령을 내렸다. 실적이 안 좋았던 것이 고의적인 근무 태만 탓이라고 사측은 판단했다. 은행은 2008년 전 직원에게 ‘명예퇴직 실시에 대한 공지’ 문서를 돌렸다. 여기에는 경우에 따라 명예퇴직 신청을 반려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때 노조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예퇴직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 사측 논리였다. 사측은 재택 근무 명령을 내리며 급여를 50% 가까이 삭감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이익 목표액을 부여했다.

일선에서 영업을 하는 일반 직원의 스트레스는 관리자급을 능가한다. 한국SC은행은 관리자급이 아닌 일반 직원들에게 ‘성과 향상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PIP(Performance Improvement Plan)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SC은행 전 직원은 1등급부터 5등급까지 등급 평가를 받는다. 해당 평가는 철저히 실적을 기반으로 한다. 우선 매 분기마다 직원에게 실적의 몇 %를 달성했는지 알려준다. 6월에는 중간 등급 평가를 하고 12월에는 자신이 몇 등급인지 알려준다. 이때 4등급 이하 등급을 받은 직원은 PIP 대상이 된다. 회사는 ‘PIP는 직원들의 역량을 개발해주는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내부 직원들의 말은 다르다. 관리자급에게 적용되는 후선 발령 제도와 유사하다. 일단 PIP에 들어가면 이루어야 할 실적이 생긴다. 이를 100% 채워야 PIP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빨리 달성하면 ‘조기 졸업’이 가능하다. 한국SC은행의 한 직원은 “PIP에 들어가면 지점장이 자주 호출해 실적에 대해 묻고 PIP 대상임을 각인시킨다. 주변 사람들을 보기에도 창피하고 그 모욕감도 이루 말할 수 없다”라고 전했다.

사측은 조 아무개씨의 죽음이 성과급제 및 평가제도 때문인 것처럼 비치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한국SC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성과 향상 프로그램은 팀장급 이하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부장급인 고인과 관계없는 제도인데 자꾸 그의 죽음과 연계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해당 프로그램 자체도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주된 취지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은행원 중 실적 부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1~5등급을 나눠서 하는 평가 방식은 대다수 일반 기업에서 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금융권 내 영업 스트레스와 실적주의는 한국SC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SC은행이 시중 은행과 차이를 보이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제일은행 시절부터 20년 이상 근무해오며 조직의 변화를 지켜보아온 한 인사는 한국SC은행의 ‘매트릭스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SC은행은 각 부문별·조직별·개인별로 수행해야 할 개별 목표가 뚜렷하게 나눠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협력하기 힘든 조직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매 금융 부문에서 자금이 부족하다고 해도 기업 금융 부문에서 지원을 받는 것은 사실상 힘들다. 각 부문 및 지점, 개인 간 실적 목표가 뚜렷해 협력적 분위기를 만들기도 힘들다. 리스크 관리 부문은 부실을 줄여야 좋은 평가를 받고, 대출 부문에서는 실적을 올리려면 최대한 대출을 많이 해야 한다. 본사에 각 부문마다 헤드가 따로 있고 이 헤드들은 각자 자신에게 적용되는 실적 평가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고위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지점장은 지점장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각자의 실적을 채우기 위해 경쟁을 벌여야 하는 구조이다. 국내 시중 은행의 한 부장급 인사는 “SC은행을 제외한 국내 은행 중에서 매트릭스 구조를 가진 곳은 하나은행의 일부 부서밖에 없다. 국내 은행에서는 행장 지시하에 부문 간 지원과 협조가 가능하지만, 매트릭스 조직에서는 구조상 불가능하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경쟁 및 성과 강조 시스템이 주주자본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는 한국SC은행의 태생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주주자본주의에 의한 경영에서 회사의 장기적 발전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자본을 투자한 후 단기간에 수익을 내 주주들에게 최대한 많이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주들은 자금으로 회사를 인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투자를 한다. 투자 후에는 조직의 수익을 올려 배당금을 챙겨간다. 재벌 총수 등 그룹 오너는 회사를 장기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주주자본주의에서의 주주는 그렇지 않다. 주주가 해외 자본일 경우 국부 유출의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천공항 매각 문제도 이같은 이유 때문에 반대 여론이 많다.

배당 성향도 78%에 달하는 등 문제 많아

한 회사가 주주자본주의 경영을 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벌어들인 돈 중 얼마나 높은 비율을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했느냐’를 확인하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한국SC은행의 감사보고서를 통해 ‘배당 성향’을 분석해보았다. 배당 성향은 당기순이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배당 성향이 클수록 수익을 주주에게 많이 지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한국SC은행은 당기순이익 2천5백59억원 중 2천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배당 성향이 78%에 달한다. 2009년 58%에 비해 무려 20%나 늘어난 수준이다. 은행으로부터 나온 이익금 중 80%에 이르는 부분을 재투자가 아닌 주주에게 지급한 것이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배당 성향은 8.24%에 불과하다. 우리은행이나 신한은행 같은 시중 은행의 배당 성향도 20~30%대 수준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홍성준 사무국장은 “직원들에게 실적을 압박해 수익을 올리고 그것도 부족하면 부동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단기 수익을 올려 고배당으로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투기 자본의 전형적 수법이다. SC은행은 명백한 투기 자본이지만, 2005년 상장 폐지되었기 때문에 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아 제동 장치가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SC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국SC은행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사모 펀드가 아니라 정통 은행 자본이다. 배당금은 모두 국내 지주회사에 지급된 것이고 해외로 나가는 자본은 거의 없는데 이같은 문제가 자꾸 거론되는 상황이 억울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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