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부동산’ 시대 다가오는가
  • 박원갑│국민은행 부동산수석팀장(부동산학 박사) ()
  • 승인 2012.07.03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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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득세 인상 쇼크’ 이후 거래 끊기며 가격 곤두박질 / 물가 감안한 실질 주택 가격이 반 토막 난 아파트도 속출

ⓒ 일러스트 권오환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로 닥쳤다. 수도권 아파트 시장에 블랙스완(Black Swan·예측할 수 없는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변동성)이 나타났다. “집값이 주식도 아니고 서너 달 사이에 1억~2억원이나 하락하다니….” 그동안 수도권 아파트값은 박스권에서 움직이면서 거품이 서서히 빠지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취득세 인상 쇼크’로 거래가 두절되는 사태가 계속되자 가격이 박스권에서 하향해 이탈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최근 철옹성 같은 강남 아파트값이 급락하는 사태가 나타나면서 중·대형 아파트의 집주인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아예 절망 단계를 지나 자포자기 상태로 접어든 것 같다.

과연 한국 부동산의 거품은 붕괴되는가. 무너진다면 어느 선까지 하락할 것인가. 20년 동안 바닥권에서 헤매는 일본 부동산의 전철을 답습할 것인가. 

사실 최근 서울 강남은 물론 수도권 전역 아파트 가격은 생각보다 많이 떨어졌다. 서울 강남구·서초구·송파구·목동·분당·용인·평촌 등 ‘버블 세븐 지역’ 아파트값은 상대적으로 하락 폭이 더 크다. 2006년 판교신도시 분양 광풍이 빚어낸 후폭풍으로 명명된 ‘버블 세븐 지역’ 아파트값은 그해 4분기(10~12월)에 역사적 고점을 찍었다. 그 당시 고점에 비해 지금 아파트값은 대형의 경우 30~40%(많게는 50%), 중형은 20~30% 정도 떨어졌다. 그런데 2006년 말부터 2011년 말까지 소비자 물가 지수가 18% 정도 올랐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 주택 가격이 거의 반 토막 난 아파트도 속출하고 있다. 이런 가격 급락 사태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그러면 왜 이런 급락 사태가 일어났는가. 올 들어 인상된 ‘취득세 쇼크’나 계속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유럽발 재정 위기에 따른 대외 악재만으로 급락 사태를 해석하기는 어렵다.

좀 더 구조적인 접근을 해보자. 바로 아파트를 인식하는 수요자의 프레임 변화, 파워엘리트(권력 집단)의 수도권 이탈이 급락에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식 변화·인구 구조 변화도 주요 요인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나온 부동산 대책은 총 일곱 차례이다. 이들 대책은 어찌 보면 주택 활성화 대책보다는 전체 주택의 59%인 아파트 활성화 대책에 가깝다. 사실상 아파트 경기를 되살리자는 것이다. 과거에는 거래 활성화 대책이 나오자마자 미분양 아파트가 매진되었다. 발 빠르게 투자했던 사람들은 돈을 벌었다. 당시 투자에 성공했던 데는 시장이 회복세로 접어든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아파트 잠재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많던 아파트 수요가 종적을 감췄다. 그러니까 아파트 활성화 대책을 수차례 내놓아도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지금의 부동산 문제는 모두 아파트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아파트의 갑작스런 몰락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요즘 주택 수요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요즘 시장을 둘러보면 아파트만 인기가 없지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 같은 임대 소득형 주택 상품은 각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최근 주택 문제는 ‘하우스푸어’보다는 ‘아파트푸어’에 더 가깝다.

아파트는 본질적으로 자본 이득형 투자 상품이다. 아파트 임대소득이 정기예금 금리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트는 투자자에게 가격 상승이 가장 큰 보상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택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아파트 시장이 저성장 체제로 접어들면서 가격이 잘 오르지 않는다. 아파트값이 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면 많은 사람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파트가 온가족이 편히 사는 삶의 공간이라면 가격이 어느 정도 하락하거나 대출 여건이 좋아지면 매입하려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시세 차익을 노리고 사고파는 대상인 자산(Asset)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만약 집값이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손실 회피(Loss Aversion) 심리로 굳이 나서서 집을 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인간은 이득을 보았을 때의 즐거움보다 손실에 따른 고통을 1.5~2.5배 더 크게 느낀다. 손실에 따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현상 유지 편향)이다.

한때 노른자위로 불렸던 서울 강남 지역의 아파트들. ⓒ 시사저널 유장훈
더욱이 급변하는 인구 구조도 아파트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50대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시작되면서 자본 이득형 아파트보다는 임대 소득형 주택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렇다 보니 아파트는 수요자의 기대에 미달하는 상품이 되어버렸고, 수요층도 매우 얇아졌다.

또 하나, 권력 집단(파워엘리트)의 남하도 중요한 문제이다. 최근 들어서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들이 수도권을 떠나 세종시나 혁신도시로 가면서 시장 침체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과거의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만성적인 수요 초과 지역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일시적인 수요 공백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체력이 고갈되다 보니 작은 충격에도 휘청거린다. 몸집만 큰 허약 체질이 되어버렸다.

수도권 중·대형 아파트값이 급락하는 현상을 두고 부동산 버블 대붕괴라고 단정 짓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주택 가격 급락 그 자체를 부동산 버블 붕괴의 한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버블이 형성되면 반드시 소멸한다. 사실상 버블은 허망한 것이다. 하지만 소멸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붕괴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해소되는 방법이다. 단순히 가격이 많이 떨어진다고 버블 붕괴는 아니다. 버블 붕괴는 부동산 시장이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 시스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금융 시스템의 마비와 경제 펀드멘털의 대혼란까지 유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버블 붕괴는 하수 종말 처리장이 고장 나서 오·폐수가 강으로 역류하는 것과 같다.

사실상 이상 급등 이후에는 반드시 급락이라는 조정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모든 자산 시장의 대명제이다. 일부 지역의 집값 급락은 부동산의 과도한 상승에 따른 고통스러운 후유증이자 해소 과정이다.

일본 같은 부동산 버블 붕괴는 오지 않을 듯

지난 6월21일 급매물 안내 광고가 나붙은 서울 잠실의 부동산중개업소 모습. ⓒ 시사저널 이종현
일본의 부동산 대붕괴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다. 1637년 2월 네덜란드에서 튤립 버블이 붕괴된 이후 영국의 남해 버블, 프랑스의 미시시피 버블, 철도 버블, 미국의 대공황, 인터넷 버블 등 수많은 버블의 형성과 소멸이 있었다. 일본 부동산 붕괴 역시 ‘버블의 형성과 소멸’ 리스트에 반드시 들어갈 정도로 역사적으로 아주 희귀한 사건이다. 부동산에서도 많은 나라에서 버블이 형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일본처럼 버블이 붕괴되어 20년 동안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나라는 아무 데도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과 산업 구조가 비슷하고 빠른 고령화를 감안할 때 경계해야 하는 것은 지극히 옳다.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버블이 붕괴될 가능성이 작은 또 다른 이유는 주택 시장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계 유일의 전세 제도가 버블 붕괴를 막는 버팀목이다. 전세는 집값의 50%가량으로 극단적인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집값이 전세 가격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은 작다. 더욱이 DTI 안전망, 상대적으로 낮은 주택 보급률(우리나라는 국민 1천명당 주택 수 3백60채, 일본은 4백60채)을 감안해볼 때 그렇다는 얘기이다.

시장은 아직 건강하다. 병든 병아리처럼 금세 쓰러질 정도로 허약한 존재는 아니다. 그렇다고 집값이 곧 상승세로 돌아선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수도권 주택 시장은 거품이 해소되면서 정상화되어가는 과정이다. 가격이 더 조정을 받으면서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최근 10년 이상의 대호황 국면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또다시 장기 상승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당분간 수도권 주택 시장은 침체장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좀 더 바닥을 다지는 형태가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급락했기 때문에 추가 급락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약세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반기 유럽발 금융 불안 후폭풍으로 실물 경기 흐름이 나아질 수 없다면 수도권 주택 시장도 안갯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지금 주택 시장은 투기적 수요가 없고 실수요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 이런 실수요는 주로 미래의 안정적 소득이나 일자리가 전제가 되어야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실물 경기 회복이 늦어진다면 구매력이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작다.

아파트 경기의 하반기 회복설이 그동안 주류를 이루어왔는데 이는 주로 실물 경기 회복설에 근거한다. 하지만 실물 경기 흐름이 여전히 바닥권에 머무른다면 수도권 주택 경기도 회복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올 한 해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상반기에 낮고(상저), 하반기에도 낮은(하저)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당분간 아파트는 내게 ‘힘’보다는 ‘짐’이 될 것 같다.


집값 폭락 여파에 따른 금융 위기 닥칠까  

정부가 지금까지 수차례 발표한 부동산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풀어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가는 물꼬를 터봤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집값 하락은 일시적 수요 부족이 아닌 인구 구조가 바뀐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이 올해 73.1%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내년부터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 성장이 힘들어진다. 성장 둔화에다 거품 붕괴까지 겹치면 장기 침체로 이어진다.

뇌관은 역시 부동산이다. 부동산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집값 거품이 터지고 금융 위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인 탓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생산 가능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부동산 수요가 커져 집값이 치솟았다. 하지만 1990년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이 69.7% 최고점에 이르러 집값 거품이 터지면서 장기 침체에 빠져들었다. 미국에서도 2005년 생산 가능 인구가 정점에 이르면서 집값이 오르다가 2008년 비우량주택담보채권(서브프라임) 사태를 맞았다. 스페인과 아일랜드도 2005년 생산 가능 인구가 최고점에 이른 뒤 거품이 터지면서 유럽중앙은행(ECB)에 잇달아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인구 구조는 악화하고 있으나 한국의 가계 부채 규모는 어느새 1천조원까지 불어났다. 가계 부채 대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집값이 폭락하면 빚 내서 집을 산 이들이 집을 헐값에라도 팔고자 내놓으면서 집값 하락이 가속화한다. 그렇게 되면 집에 대한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서 은행은 대규모 부실 채권을 안게 된다. 은행권 부실은 금융 위기로 이어지고 실물 경제까지 타격을 받는다.

이런 탓에 ‘한국은 조만간 집값 거품 붕괴로 인해 금융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보는 국내외 부동산 전문가가 부쩍 많아졌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 구조 악화로 인한 부동산 수요 감소가 부동산 거품 붕괴와 금융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금융 위기 토양을 제공할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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