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국공립 병원 매점까지 탐낸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7.0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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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부대 시설 공개 입찰에 CJ·롯데·신세계 등 앞다퉈 참여…생계형 납품업체는 길거리 나앉을 판

서울시가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은 최근 신관을 개원하면서 편의점·식당·커피 전문점 등을 CJ그룹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재벌 기업의 ‘식탐’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삼성과 현대차, 롯데그룹 등은 최근 잇달아 베이커리 사업에서 철수했다.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이 가중되면서 바짝 몸을 움츠린 것이다. 하지만 골목 상권을 차지하려는 ‘식탐’은 이후에도 여전했다. ‘돈이 되는’ 사업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면서 영세 상인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최근에는 국공립 병원의 편의점 사업까지 뛰어들었다. 병원 매점에 물품을 공급하는 영세 사업자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국내 종합병원의 한 관계자는 “병원의 매점이나 장례식장 사업은 ‘불황 무풍지대’라고 불릴 정도로 수익률이 좋다. 국공립 대학들이 이 시설을 외부에 위탁하는 과정에서 재벌 기업들이 조용히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서울대병원이 한 예이다. 이 병원은 최근 부대 시설(그린마트, 매점, 자판기 등)을 운영할 사업자를 공개 모집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30년간 직원들이 출자해 만든 직장 새마을금고(이하 조합)에 관련 시설의 운영을 맡겼다. 하지만 최근 공개 입찰 쪽으로 노선을 급선회했다. 병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10년 감사원 감사를 받는 과정에서 부대 시설 사업자를 수의 계약으로 선정한 문제가 지적되었다. 그래서 입찰 절차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 공개 입찰을 선택했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CJ, 롯데, 신세계 등이 앞다투어 입찰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조합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합의 한 관계자는 “수익을 늘리려는 병원과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려는 대기업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조합이 운영하는 사업이 대기업에게 넘어갈 경우 국립대 병원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진출하는 과정에서 조합 직원들이 대기업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병원의 부대 시설에는 현재 100여 곳의 영세 업체들이 물품을 납품하고 있다. 대부분 직원 한두 명을 둔 영세 업체였다. 시설 운영 주체가 대기업으로 바뀌게 되면 이들의 생계가 무너질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경영이 최근 재계의 이슈가 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거꾸로 대기업이 영세 상인의 밥그릇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걱정을 토로했다.

왼쪽부터 강북삼성병원, 서울아산병원. ⓒ 시사저널 임준선·박은숙

입찰 과정에서 대기업에 특혜 제공 논란도

논란이 확산되자 병원측은 조합과의 수의 계약을 1년간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언제든지 대기업이 다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일부 병원은 이미 대기업에 부대 시설 운영권을 넘기기도 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보라매병원은 저소득층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하지만 최근 지하 1층, 지상 11층 규모의 신관을 개원하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편의점이나 식당, 커피 전문점 등을 운영하는 회사로 CJ그룹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병원 관계자는 “대기업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편의점 제품 가격이 적게는 5백원, 많게는 8천원 정도 부풀려졌다. 병원 고객을 위해 서비스하려고 만들어진 매장이 대기업의 이익 창출 도구로 전락했다”라고 꼬집었다.

충북대병원은 매점의 신규 입찰을 진행하면서 대형 편의점업체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충북대는 최근 병원 내 편의점에 대한 입찰 공고를 냈다. 5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유통업체만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때문에 입찰 의향서를 낸 곳은 훼미리마트(보강그룹), GS마트(GS그룹), 세븐일레븐(롯데그룹) 등 대형 편의점업체가 전부였다. 충북대병원 소비조합의 한 관계자는 “기존 납품업체 중에는 지역의 하나로마트에 물품을 대는 업체도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병원이 대기업의 뒤를 봐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상생’을 강조하는 막후에서 대기업들은 여전히 영세 상인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재벌 기업이 병원의 편의 시설 운영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들어 재벌 기업의 병원 사업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삼성과 현대중공업이 설립한 삼성서울병원과 현대아산병원은 이미 국내 굴지의 대형 병원으로 성장했다. 두산그룹 역시 지난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병원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SK그룹은 중국의 첫 번째 외자 도입 병원인 SK애강병원을 운영 중이다. LG그룹과 한화그룹도 한때 서울의 대학병원과 손잡고 합작 병원 설립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운영 주체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협상이 결렬되었다. 그럼에도 대학병원의 사업자를 선정할 때마다 이름을 올리는 등 병원 사업에 관심을 보였다. 현대차그룹 역시 최근 종합병원 인수에 나섰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은 지난해 메디슨을 인수하는 등 헬스케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이다. 최근에는 삼성증권과 삼성물산이 인천송도국제병원의 재무적 투자자로도 참여했다. 이에 발맞추어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특별법(이하 경자법)의 개정안과 구체적인 시행 규칙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경제자유구역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영리병원 규정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 시장마저 재벌에 장악될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한국의 병원은 수익이 나도 병원에 재투자해야 한다. 영리병원은 회사와 마찬가지로 수익을 주주들에게 배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벌들의 병원 사업 진출이 본격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자법 재정 당시인 2002년만 해도 국내 기업은 경제자유구역에서 병원을 설립할 수 없었다. 외국인이 설립해 외국인 의사가 외국인을 진료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내국인 의사가 내국인을 진료하는 영리법인으로 둔갑했다. 재벌 기업이 영리병원 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은 재벌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리병원 문제는 그동안 여러 차례 공론화되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부결되자 지경부의 경자법에 끼워넣어 통과를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벌 기업의 영리병원 설립도 본격화될 듯

지난해 8월16일 의료 민영화 저지 범국민운동 인천본부 회원들이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앞에서 송도영리병원 추진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재벌 병원의 순기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윤수 서울시병원회 회장은 “재벌 병원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병원계가 양과 질적인 면에서 한 단계 발전을 이루었다. 병원 규모가 커졌고, 규모의 증대만큼 시설이나 장비가 현대화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병원들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역시 심각해지고 있다. 환자들이 수도권의 초대형 병원만을 선호하면서 지역 병원들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 실제로 제주의대 박형근 교수는 서울과 지방 병원의 환자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구 지역 전체 병원의 입원 환자 비율은 6.3%였지만, 2005년에는 5.33%로 떨어졌다.

이에 반해 서울 소재 대형 병원의 대구 환자 점유율은 2%에서 4%로 두 배 증가했다. KTX가 개통되면서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박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재벌 병원의 등장으로 영세한 병원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영리병원의 설립이 본격화되면서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 역시 더욱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이 지난해 천안·아산 건강검진센터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강한 반발에 부딪힌 것도 이 때문이다. 강북삼성병원은 지난해 7월 천안·아산 KTX역 인근에 건강검진센터 건설을 추진했다. 천안과 아산 지역의 직원이나 가족들의 건강검진을 위한 시설이었다. 그러자 지역의 병원과 의사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건강검진센터 설립이 결국은 지역의 의료 수요를 흡수하려는 노림수라는 이유에서였다. 보건의료노조의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재벌 병원이 가세하면서 수도권 중심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의 건강검진센터는 대형 마트나 SSM이 골목 상권을 위협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강북삼성병원 역시 건강검진센터 설립 계획을 백지화했다.

업계에서는 송도에 영리병원이 설립될 경우 재벌 기업의 병원 시장 공략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추진 중인 영리병원은 현재 인천 한 곳에만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경제자유구역이 대구와 부산을 포함해 전국의 여섯 개 지역에도 포함되어 있는 만큼 지역 병원은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정부에서는 국제 병원 설립을 통해 5만명의 고용 유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고용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오히려 재벌 병원이 이윤만을 추구하면서 의료비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경우 다른 지역의 병원장들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결국 이윤만 추구하는 영리병원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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