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차 도움받은 직장인에게 무슨 변고가...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7.10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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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에서 일어난 의문의 변사 사건 추적 / 경찰이 신경대학교에 데려다준 후 행방불명

ⓒ 시사저널 전영기
지난 6월27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신경대학교 앞 공사장 물웅덩이에서 20대 남자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그는 올해 28세의 장현웅씨였다. 지난 1월 회사에 입사한 직장 생활 5개월차인 신입사원이다. 경찰은 장씨가 공사장 낭떠러지에 떨어져 익사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신경대는 장씨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다. 택지 개발 공사로 인해 주변은 온통 공사장으로 변해 있다. 기자는 7월3일 오후에 장씨가 발견된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랬더니 대학을 중심으로 사방 1㎞ 안에는 건물 하나 없이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이곳저곳에 땅이 파헤쳐져 있고, 군데군데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학교는 방학 중이어서 학생들의 발걸음도 뜸했다. 장씨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씨를 이곳에 데려다준 것은 다름 아닌 경찰이었다. 유족과 장씨의 친구들은 “경찰로 인해 아들과 친구가 죽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장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사저널>은 장씨가 회식을 시작한 6월24일 오후 7시쯤부터 사체로 발견된 27일 오후 3시40분쯤까지 ‘1백17시간’의 행적을 추적했다.

장현웅씨는 경기도 화성시 북양동에 있는 ㅅ기업에 다녔다. 이 회사는 6월22일 금요일에 일과를 마치고 근처 ㅊ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이때 장씨 회사의 동료가 그의 모습을 촬영했는데, 붉은색 계통의 남방 셔츠에 검은색 청바지 그리고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장씨를 포함한 회사 동료 네 명은 남양동에 있는 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2차로 술을 마셨다. ㅊ식당에서 승용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한창 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동료들끼리 말다툼이 있었다. 장씨는 술에 취한 데다 말다툼까지 벌어지자 먼저 카페를 나왔다. 그런 뒤 실종되었다. 연락도 뚝 끊겼다.

장씨의 집은 경기도 성남이다. 그는 올해 초 취업하면서 남양동 우림아파트에 있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매일 저녁 기숙사에 들어오면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주말에는 성남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가서 지냈다. 그런데 회식한 날 이후부터는 전화가 없었다. 토요일에는 절친한 친구인 임동진씨와 만나기로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친구 임씨에게도 가타부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휴대전화의 전원은 꺼져 있었다.

친구 임씨는 “금요일 저녁 8시57분쯤에 현웅이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다. 그 후 연락이 없어서 ‘잠수를 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요일에 현웅이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안 된다’라며 전화가 왔다”라고 말했다. 장씨 부모와 친구들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수십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여전히 먹통이었다. 월요일(25일)에는 회사에도 출근하지 않았다. 장씨 아버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들의 카드 사용 내역을 알아보았다. 실종 당일 이후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가족들은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장씨 아버지는 실종 3일째인 6월25일 오전 11시쯤 현웅씨의 회사 부서 팀장(과장)과 함께 화성 서부경찰서를 찾아가 실종 신고를 했다. 휴대전화 연락이 안 되고, 카드를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다는 말까지 했다. 장씨는 신용카드는 개설하지 않고, 회사에서 월급이 들어오는 ㄱ은행 체크카드만 사용하고 있었다.

시신 발견한 것은 가족·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경찰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단순 가출’에 무게를 두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장씨 아버지는 119에 전화를 걸어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했다. 그랬더니 마지막으로 신호가 잡힌 곳이 ‘ㄴ성당’으로 나왔다. 그는 남양파출소를 찾아가 아들이 실종된 날을 전후로 ‘신원 불상자’나 ‘주취자’ 신고가 들어왔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파출소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다”라고 했다. 장씨 아버지는 “너무 허탈했다. 현웅이의 흔적이라도 알아야 찾을 수가 있는데 막막했다. 혹시 교통사고가 났나 싶어서 ㄴ성당에서 기숙사가 있는 아파트까지 길을 따라 걸었지만 별다른 것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장씨의 친구들도 찾아나섰다. 동진씨와 두 명의 친구들은 오후 11시쯤 ㄴ성당 주변에 모였다. 26일 오전 5시까지 성당 근처에서부터 인근의 하천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현웅씨의 흔적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이날부터 장씨 아버지와 친구들은 함께 움직였다. 화성 서부경찰서와 남양파출소를 오가며 수사를 촉구했다. 현웅씨가 머물렀던 동선의 CCTV와 119 확인을 했느냐는 말에 경찰은 “우리가 모두 확인했다”라는 말만 했다. 한 가닥 희망마저 무너지는 순간이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현웅씨와 회사 동료들이 2차로 술을 마셨던 ㅂ카페-휴대전화 신호음이 마지막으로 잡힌 ㄴ성당-회사 기숙사 방향의 동선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그러다 현웅씨가 카페를 나가는 것을 본 목격자를 찾았다. 그는 “오전 1시쯤 큰길로 나갔다”라고 알려주었다. ㅂ카페에서 장씨의 기숙사까지는 걸어서 15~20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25일 오후 장씨 아버지에게 담당 경찰관이 전화를 했다. 그는 “계좌 추적과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하기 위해서는 진정서를 접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씨 아버지와 친구들은 26일에도 성당 주변 하천 등을 뒤졌다.

27일 오전부터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었다. 당초 경찰에서는 ‘기동타격대’가 온다고 했으나 오전 9시30분쯤 형사 네 명이 왔다. 성당에서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친구 동진씨는 현장에 나온 서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계장에게 농협 CCTV를 한번 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곳에 현웅씨의 모습이 있었다. 실종 당시의 복장과 걸음걸이가 현웅씨와 똑같았다.

고 장현웅씨는 분당의 납골당에 안치되어 있다(ⓒ 고 장현웅씨 유족). 맨 아래는 장씨가 생전에 기거했던 기숙사 방과 장씨의 유품들(ⓒ 시사저널 전영기).
친구 동진씨는 “경찰에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CCTV를 모두 확인했다고 말했다. 기숙사를 가기 위해서는 농협을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CCTV를 확인하지 않았다. 현웅이의 모습을 확인했으니 곧바로 수사에 들어갈 줄 알았다. 그랬는데 경찰은 대뜸 ‘점심을 먹자’고 했고, 두 시간을 기다렸다. 그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현웅이의 동선을 따라 CCTV가 있는 식당, 자동차 정비소 등을 찾아갔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동진씨는 그곳에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는 “CCTV가 있는 곳의 영업점 직원들이 ‘경찰에서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경찰은 여러 곳의 CCTV 중 ㅂ카페와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방범 CCTV 그리고 기숙사 CCTV 정도만 확인한 것이다”라며 분개했다. 친구 임씨는 또 “내가 농협CCTV를 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지금도 현웅이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자가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ㅂ카페에서 기숙사까지는 방범 CCTV 두 곳, 새마을금고와 농협, 식당, 기숙사 아파트 등의 외부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경찰에 불신을 느낀 가족과 친구들은 ‘119’에 전화를 했다. 실종 당일을 전후로 “주취자 신고가 들어온 것이 없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거기에서 또다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23일 토요일 오전 1시37분쯤 ㄴ식당 앞에서 ‘주취자 신고’가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다. ㄴ식당 앞 도로변에 장씨가 쓰러져 있었고, 지나가던 한 시민이 119에 신고했던 것이다.

그런데 119가 장씨를 이송한 곳은 다름 아닌 남양파출소였다. 장씨 아버지가 25일 남양파출소를 찾았을 때는 “신고가 없었다”라고 말한 그곳이다. 장씨 아버지와 친구들은 남양파출소를 찾아갔다. 경찰관에게 ‘근무일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그곳에는 ‘신원 미확인자’라고 적혀 있는 기록이 있었다. 당시 근무자는 “(신원 미상의 주취자를) 신경대학 기숙사에 내려주었다”라고 했다.

27일 오후 동진씨와 친구 두 명 그리고 경찰관 한 명이 순찰차를 타고 신경대학으로 찾아갔다. 학교 관계자에게 현웅씨가 실종되었던 날을 전후해서 특이 사항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이상한 일이 없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이 관계자는 “이 근처가 위험하니 여기저기 한번 찾아봐라”라는 말을 해주었다.

동진씨와 친구들은 서로 분산해서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진씨는 학교와 공사장의 하천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학교와 공사장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수로 옹벽 아래에서 그토록 찾아헤맸던 친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바로 현웅씨였다. 장씨의 아버지도 뒤늦게 현장에 도착해 아들의 주검을 목도해야만 했다.

최초 발견 당시 현웅씨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버지에 따르면 “현웅이가 있었던 곳에만 물이 고여 있었다. 깊이는 약 30cm쯤 되었다. 엎드려 있는 상태였고, 머리는 물에 반쯤 들어가 있었다. 오른쪽 이마에 작은 타박상이 있었고, 왼쪽 팔목에도 살짝 멍이 들어 있었다. 머리 오른쪽에도 약간의 타박상이 보였다. 얼굴은 잔뜩 부어올라서 몰라볼 정도였다. 특이한 것은 운동화에 흙이 전혀 묻어 있지 않은 것이다. 오른쪽 뒷주머니에서 지갑과 신분증이, 왼쪽에서는 휴대전화가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신경대에 왜 갔을까

<시사저널> 취재진이 사고 현장을 찾아가서 보니 옹벽은 약 5m 정도의 높이였고, 낮에도 경계가 구분이 안 되는 곳이었다. 특히 밤에는 칠흑같이 어두워 멀쩡한 사람도 옹벽 아래에 추락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안전 펜스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경찰은 왜 장씨를 신경대 앞에 데려다주었을까. 화성 서부경찰서 임 아무개 형사과장은 7월2일 서부경찰서 홈페이지에 ‘사실이 이렇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임과장에 따르면, 장씨는 23일 오전 1시39분쯤 남양동 ㄴ식당 도로변에 쓰러져 있었다. 한 시민의 신고를 받고 남양파출소 순찰차에 태워 9백m를 이동하던 중에 구토를 해 하차 후 토하도록 했다. 이후 다시 승차할 것을 권했으나 장씨는 괜찮다며 걸어갔다고 한다. 순찰차는 장씨 뒤를 100m 쫓아가며 상태를 본 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순찰 근무를 계속했다는 것이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장씨는 ㅂ카페에서 나와 기숙사가 있는 우림아파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기자가 인터넷 지도 검색을 통해 장씨의 동선 거리를 재보았다. 그랬더니 임과장의 말에 모순점이 발견되었다. 장씨의 모습이 찍힌 농협 앞에서 우림아파트까지의 거리는 약 1.17㎞이다. 장씨가 발견된 ㄴ식당에서 우림아파트까지는 5백m에 불과하다. 장씨는 기숙사가 있는 아파트 바로 앞까지 걸어간 것이 된다.

그런데 임과장은 순찰차가 장씨를 ㄴ식당 앞에서 태웠고, 9백m를 진행했으며, 이후 100m를 더 따라갔다고 했다. 거리상으로 보면 총 1㎞를 경찰이 장씨를 지켜보았다는 것이 된다. 여기서 순찰차가 어떤 방향으로 장씨를 태우고 갔느냐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ㄴ식당에서 우림아파트 쪽으로 갔다면 기숙사를 훨씬 지난 거리이다. 또 거꾸로 도심 쪽으로 갔다면 농협을 지난 곳에서 내린 것이 된다. 그렇다면 시내 거리에 있는 CCTV에 찍혔을 가능성이 크다. 우림아파트 쪽으로 갔다고 한다면 도로 CCTV에 순찰차가 찍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임과장이 말한 거리상의 오류가 발생한다.

임과장은 이어 “새벽 2시35분쯤 순찰 근무자가 다른 사건 출동 중 ㅇ식당 앞 도로변에 장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다른 근무자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지원 근무를 나온 근무자도 파출소 순찰차 근무자에게 장씨가 ‘신경대학교 학생이며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고 말해 신경대 현관 앞에 내려주고, 근처 벤치에 앉는 것을 본 뒤 ‘괜찮다’고 해 혼자 갈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귀소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ㅇ식당은 장씨의 기숙사가 있는 우림아파트에서 정반대 쪽 방향이다. 거리도 4~5㎞ 정도 된다. 장씨가 이곳까지 어떻게 이동했느냐는 것이다. 걸어서 갔다면 주변의 CCTV 여러 곳에서 장씨의 모습이 포착되어야 한다. 택시를 탔다면 장씨를 태운 택시기사가 있거나 목격자가 있어야 된다. 아직까지 장씨를 태운 택시기사나 목격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또, 장씨는 술을 마셨지만 방향 감각은 정상이었다. ㅂ카페에서 나와 기숙사 쪽으로 제대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장씨는 신경대와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는 성남에 있는 신구대를 나왔고, 여자친구 또한 없다. 상식적으로 보면 신경대로 가자고 했을 리가 만무하다.

이에 대해 장씨의 유족들과 친구들은 “현웅이 회사와 신경대는 앞 글자가 동일하다. 회사 기숙사로 가자고 한 것을 경찰이 신경대 기숙사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냥 기숙사로 가게 놔두었다면 현웅이는 살았을 것이다. 바지 주머니에는 휴대전화와 명함도 있었는데 확인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임 아무개 형사과장의 글이 경찰서 홈페이지에 게시되자 장씨의 아버지와 친구들은 서부경찰서 서장에게 항의했다. 여기에는 임과장도 배석했고, 대화 내용은 모두 녹취되어 있다. 현재 임과장의 해명글은 경찰서 홈페이지에서 내려진 상태이다.

유족들과 친구들은 “경찰이 말을 바꾸며 숨기는 데 급급해하고 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친구 임씨는 “6월27일에 보여준 근무일지에는 ‘신원 미확인자’라고 되어 있었는데, 그 뒤 다시 보여준 것은 처음 본 것과 양식이 다르다. 또 글도 한 줄로 간단하게 적혀 있었는데, 이번 것은 공백이 없고 빼곡하다. 우리는 서류를 조작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순찰차의 블랙박스도 마찬가지다. 경찰 순찰차에는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다. 그런데 장씨를 태웠던 순찰차에는 블랙박스가 장착되어 있었으나 켜놓지 않았다는 것이 경찰측의 설명이다.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장현웅씨의 시신은 검시를 위해 남양동에 있는 병원에 하루를 안치했다가, 서울 강남 성모병원으로 옮겨 3일장을 치렀다. 그리고 성남 화장장에서 화장해 분당에 있는 납골당에 안치했다. 장씨의 유족들과 친구들은 어이없는 죽음에 비통해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아이들 가운데 현웅이가 유일한 남자였다. 그런데 이제 자손이 끊기게 되었다. 억울하게 죽은 현웅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취재진은 7월3일 오후 장씨가 지내던 우림아파트 기숙사에 찾아갔다. 장씨가 사용하던 물건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한쪽에 놓여 있었다. 접이식 책상 한 개, 여행용 가방 두 개, 청소기 하나, 야구 모자 등이 전부였다. 스물여덟 살의 꿈 많은 청년은 이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채 한 줌의 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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