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이슈’ 뺏기고 뿔난 민주당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7.10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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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 ‘경제 민주화’ 선점당한 뒤 위기감 팽배…“새누리당 것은 짝퉁” 연쇄 공격

머리 맞대고머리 맞대고 7월3일 민주통합당의 박지원 원내대표와 이용섭 정책위의장이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진정성도, 알맹이도, 효과도 없다.”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최근 논쟁이 불붙은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를 평가 절하하면서 한 말이다. 이의장은 “재벌 개혁 없는 경제 민주화는 허구이다. 새누리당은 경제 민주화를 외치고 있지만 재벌 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도), 순환 출자 금지, 지주회사 규제 강화 등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위기감이 묻어난다. “무늬만 경제 민주화이다” “짝퉁 경제 민주화이다”라는 등 비판을 가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경제 민주화에 동의한다면 먼저 민주당이 7월 국회에 제출할 경제 민주화 법안부터 압도적 다수로 처리하자”라고 제안하면서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표시되는 찬성표가 진정성을 표시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라고 쏘아붙였다.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직접 겨냥한 공세도 펼쳐지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대변인은 “김 전 위원은 이미 총선에서 경제 민주화 정책을 관철시키겠다며 (비대위원) 사퇴 카드를 내밀면서 물 타기를 했던 전력이 있다. 그리고 결국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친재벌적 성향을 희석시키는 데 일정 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경제 민주화 정책은 새누리당 내에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박근혜 캠프에 들어가 경제 민주화를 말씀하고 계신다”라고 비판했다.

“주도권 놓치면 야권 주자들 입지도 약화”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내부 논쟁에 이처럼 발끈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준비해온, 그리고 가장 강한 주무기로 삼고자 하는 경제 이슈를 오히려 상대방이 선점하고 나선 데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 “허를 찔렸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실 그동안 민주당은 경제 민주화 부문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파고드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부터 관련 정책에 대한 입법화를 준비했다. 특히 19대 국회에 처음 입성한 시민단체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각종 법안을 발의하며 경제 민주화를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경실련에서 재벌개혁위원장을 지낸 홍종학 민주당 의원은 “시민사회에서 이미 연구가 많이 되어 있다. 그 연구를 현실화시키는 문제가 남은 것이다. (시민사회 출신으로서) 책임감이 무겁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경제 민주화는 사실상 ‘야당 몫’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최근 여당 내에서 펼쳐지고 있는 경제 민주화 논쟁이 부각되면서 상황이 급변하는 분위기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자칫 경제 이슈에 대한 주도권을 새누리당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민주당이 치고 나갈 중요한 이슈를 새누리당이 선수를 쳐서 활용한 셈이다. 민주당으로서는 그동안 지켜온 전통적 영역을 침범당한 것이고, 새누리당으로서는 내부 논쟁을 통해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는 경제 민주화가 향후 대선 과정에서도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사안은 대선 주자들 간에 펼쳐질 대권 경쟁과도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와 함께 경제 민주화를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당내 유력 대선 주자들 사이에 경제 민주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다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정책에서는 주자별로 각각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문재인 고문은 ‘포용적 성장’, 손학규 전 대표는 ‘저녁이 있는 삶’, 정세균 전 대표는 ‘분수 경제’를 내놓았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경우, 브라질의 경제 개혁을 이끈 룰라 전 대통령을 모델로 삼아 ‘한국의 룰라’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아직까지 경제 민주화를 통해서 이슈 파이팅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황인상 대표는 “민주당 내 모든 정치인이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막상 따져보면 이를 자신의 상표처럼 특화한 정치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측에서 그 틈을 파고 들어오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다.

물론 새누리당의 경우 당과 캠프가 상대적으로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데 반해, 민주당은 아직 그렇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향후에도 이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야권 주자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승패는 수도권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원하는 계층이다. 박 전 위원장이 경제 부문까지 지지를 확대하게 된다면 민주당 주자들은 입지가 더욱 좁아들게 될 것이다. 이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마찬가지 처지이다”라고 전망했다. 


ⓒ 시사저널 우태윤
지금 정치권에서 경제 민주화가 중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당에서는 경제 민주화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스무 명 정도 되는 당내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내고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단 하나의 재벌 법안도 안 내놓고 경제 민주화를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말뿐이지 실제 의지는 없다.

그런데도 지금 새누리당의 경제 민주화 논쟁이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 아닌가?

경제 민주화에 대해 실제로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 정당에서 경제 민주화를 말하니까 뉴스가 되는 것이 아니겠나. 박근혜 전 위원장이 워낙 독주하는 상황이다 보니, 여기에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경선에 참여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쏠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새누리당에서는 경제 분야에 대한 대선 이슈를 선점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새누리당이 진짜 경제 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한구 대표가 원내대표가 안 되었을 것이다. 이대표 체제에서는 경제 민주화 법안이 나올 수 없다. 김종인 전 위원도 옛날 분이다. 경제 민주화가 무엇인지 내용을 잘 모른다. 1980년대에 경험했던 경제 민주화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은 재벌을 때려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 시대에 맞는 규제와 정책이 필요하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경제 민주화 개념이 학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용어라고 했는데.

국회의원으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의심된다. 경제 민주화는 헌법 119조 2항에 나와 있는데 이를 모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분이 여당 원내대표이니까 답답한 것이다. 학계에서도 그런 용어를 당연히 쓰고 있다. (경제 민주화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유럽이 이미 그렇게 가고 있고, 미국 오바마 정부도 그렇게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에서 재벌 개혁이 왜 필요한가?

(재벌 기업과 보수 진영에서) 자꾸 엉뚱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한국의 재벌은 (경제 민주화뿐 아니라) 헌법 119조 1항 ‘자유와 창의 존중’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현재 개인과 기업이 자유와 창의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인가. 재벌에게 다 눌려 있다 보니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나. 지금의 한국 재벌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를 무시하고 있다. 재벌 공산주의, 재벌 사회주의이다. 이를 옹호하면서 자신은 시장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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