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8기로 우뚝 선 오뚝이 ‘농민의 아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2.07.1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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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의 ‘인생 행로’ / 대학 때 민통련 가입해 민주화 운동 / 이장→군수→장관→도지사 이른 입지전적 ‘인간 승리’로 주목

1990년대 초반 남해신문사 발행인 시절(왼쪽). 1987년 남해농민회 사무국장 시절(가운데)과 동아대 졸업 사진. ⓒ김두관 제공

‘시골에서 태어난 내 또래가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내 유년 시절을 무겁게 짓누른 것도 가난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바닷가를 달리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풍요와는 거리가 먼 결핍의 시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뜩이나 어려웠던 집안 살림은 더욱 기울었다. 나는 도마초등학교 졸업생 1백20명이 부산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을 때 여비가 없어 끝내 부산 구경을 가지 못한 세 명의 가난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자서전에서 소개한 자신의 불우했던 유년 시절의 한 단면이다. 중학교 시절에는 보충수업비 5백원이 없어서 수시로 교단 앞에 불려나가야 했다. 남해종고를 졸업하고 국민대 어문계열에 합격했으나 가정 사정으로 포기했을 정도이다. 그 후 둘째 형과 고향에서 2년간 마늘 농사를 짓다가 1979년 경북 영주에 있는 경상전문대학(현 경북전문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김 전 지사가 지난 7월4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전문대 졸업생이 4백50만명이라는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모두 자신의 지지 세력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1981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에 편입했다.

동아대 4학년이던 1986년, 그는 당시 재야 운동권의 핵심이던 ‘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에 가입했다. 민통련 간사로 직선제 개헌추진본부 충북지부 결성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운동에 헌신하기로 하고, 남해농민회를 결성해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1988년 농민회의 결정에 따라 13대 총선에서 ‘민중의 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때가 그의 첫 선거 도전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리틀 노무현’ 별칭 얻어

그 후 그는 남해군 이어리 이장에 선출되었고, 1989년 지역 주민 주주 공모를 통해 남해신문을 창간했다. 선후배들의 지원을 받아 ‘군민주’ 형식으로 창간한 남해신문의 성공을 발판 삼아 1995년 남해군수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고, 1998년 재선에 성공했다. ‘남해 혁명’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남해군수로서 좋은 평가를 얻은 김 전 지사는 2002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텃밭’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떨어졌다.

그러다가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행정자치부장관에 전격 임명되면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일개 시골 군수 출신을 행자부장관에 임명한 것은 노대통령의 지방 분권·균형 발전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김 전 지사의 별명은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다.

그는 2006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재도전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2004년과 2008년에는 남해·하동에서 국회의원에도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지난 2010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다시 출마해 결국 삼수 끝에 당선되었다. 2002년 16.9%, 2006년 25.5%를 얻어 낙선했으나, 2010년에는 53.5%를 득표했다. 흔히 말하듯 불굴의 인간 승리이다.

김 전 지사는 29세였던 1988년 총선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여덟 번 선거에 나서 세 번 이겼다. 그는 지난 6월 창원에서 열린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지금껏 공직과 당직 모두 합쳐 11번의 선거에 나섰는데, 다섯 번은 되고, 여섯 번 떨어졌다. 승률 절반을 맞춰야 할 텐데 올 연말에 (대선에 나가) 승리할까요?”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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