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 녹음 파일 불법 거래되고 있다
  • 장혁진 인턴기자 ()
  • 승인 2012.07.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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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만든 대학가 신풍속도…인터넷 커뮤니티 통해 사고팔아

스마트폰 녹음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강의를 녹음하고 있다(아래 ⓒ 시사저널 전영기). 왼쪽은 서울의 한 대학 강의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 시사저널 임영무).

이화여대에 다니는 박 아무개씨(23)는 지난 4월 갑자기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강의를 듣지 못했다. 박씨는 고민에 빠졌다. 한번 수업에 빠지면 진도를 따라가기 어렵고 학생들 간 경쟁이 치열해 좋은 학점을 받기 어려운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는 재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결석한 수업의 녹음 파일을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현금 사례도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연락처를 남겼다. 박씨는 “글을 올리자 곧 두세 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락 온 사람들 모두 강의 녹음 파일을 팔고 싶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그중 한 명에게 현금 5천원 상당의 기프티콘(카카오톡 등에서 쓸 수 있는 모바일 상품권)을 보냈다. 그러자 곧 이메일로 mp3 형태의 녹음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대학 강의의 녹음 파일을 사고파는 학생이 많아지고 있다. 이화여대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이화이언’에서 ‘녹음’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강의 녹음 파일을 사고파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이 결석했던 수업, 혹은 수업 내용이 어려웠던 강의의 녹음 파일을 구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시험 기간이 되면 이런 글은 훨씬 많아진다. 스마트폰 등 휴대용 녹음 기기가 보편화되면서 등장한 대학가의 새로운 풍속이다.

“강의당 5천원”…전공 강의는 5만원 부르기도

박씨는 “내가 들었던 수업의 경우 전체 수강생 중 절반 정도가 휴대용 기기를 이용해 강의를 녹음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녹음 파일을 사려고 마음먹었던 것도 실제로 강의실에서 강의를 녹음하는 학생이 많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래자가 제시한 가격도 학생들에게 크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었다. 대개 평범한 강의인 경우 학생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가격은 한 강의 파일에 5천원 정도이다.

거래는 직접 만나 현금을 주기보다는 주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모바일 상품권을 판매자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강의의 성격에 따라 가격 수준과 거래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교양 수업보다는 수업 내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전공 수업일수록, 좋은 학점을 받기 더 어려운 수업일수록 녹음 파일을 구하기가 어렵다. 하나의 강의 파일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의 파일을 묶음으로 구매하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파일의 가격이 올라간다. 한 여대의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한 학생은 자신이 듣는 전공 수업의 녹음 파일에 대한 사례 금액으로 현금 5만원을 달라고 되어 있었다.

저작권법상, 사전에 교수로부터 허가를 받고 강의 내용을 녹음해 혼자 들을 경우에는 위법이 아니다. 저작권법 제30조는 ‘공표된 저작물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 이용자는 이를 복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녹음 파일을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매매하거나 널리 유포하는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저작자의 권리와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위해 제정된 저작권법 제4조는 ‘강연’을 무단으로 배포할 수 없는 저작물로 명시하고 있다.

실제 대학생들 사이에서 강의 녹음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대부분 개인 수준에서 학습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교수들도 강의를 녹음하지 말라고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대 중심으로 거래 사례 많은 이유

반면 강의 파일이 거래된다는 것은 교수들도 모르는 비밀이다. 여대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예를 들어, 연세대학교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세연넷’, 고려대학교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고파스’ 등에서는 재학생들이 강의 녹음 파일을 사고파는 게시물을 발견하기 어렵다. 다른 대학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강의 녹취록 거래와 관련한 글은 잘 나돌지 않는다. 그런데 이화여대에는 드물지 않게 강의 녹취 파일을 거래하는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강의 녹음에 쓸 녹음기를 구입하기 위해 발품을 파는 여대생들이 적지 않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소형가전 전문점을 운영하는 허 아무개씨는 “방학 기간 중인데도 녹음기를 구입하러 오는 여대생이 많다. 이들은 대개 강의를 녹음하는 데에 사용할 것이라며 꼼꼼하게 따져본다.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은 PCM 방식의 10만~15만원대 제품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는 여대만의 문화가 한몫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이 아무개씨(25)는 “여대에서 이런 거래가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씨는 “예를 들어 이대생들은 거의 대부분 혼자서 수업을 듣는다. 한번 수업에 빠지면 자신을 도와줄 친구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또 여대의 문화는 모르는 사람에게 강의 자료를 빌려주는 것에 거부감이 강한 편이다. 금전적인 보상을 해서라도 강의 녹음 파일 등 강의 자료를 구해 수업 진도를 뒤따라가려는 심리가 있다”라고 말했다.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 심리도 강의 녹취록 매매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서울에 있는 또 다른 여대 졸업생인 김 아무개씨(24)는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노트 필기는 절대 빌려주지 않는 분위기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밤을 새워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수업에 참석했다고 하더라도 수업에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시험에 대해 언급했었던 수업을 다시 듣고 싶어 하는 학생이 많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강의 녹음 파일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고,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이런 파일들을 원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서울 모 여대의 이 아무개 교수는 “요즘 학생들은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한다.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이 아주 치열하다. 강의 녹음 파일을 구하는 학생들이 여대에 유독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해당 교수들은 자신들의 강의가 ‘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거래되는 강의를 담당한 몇몇 교수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모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화여대에서 언론정보학을 가르치고 있는 유 아무개 교수는 “이런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20년 넘게 강의해왔지만 그런 학생들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서 거시경제이론을 가르치는 정 아무개 교수 역시 “수업에서 학생들이 강의를 녹음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몰래 강의를 녹음한다니 큰 충격이다. 어떤 경우에서든 영리 목적으로 녹음 파일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따로 조치를 취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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