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내부 ‘눈먼 돈’부터 회수하라
  •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 ()
  • 승인 2012.07.1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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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 비리와 함께 마구잡이 예산 사용한 정황 드러나…팀장의 과도한 권한·전관 예우 등도 도마에

고리원자력발전소 납품 비리 사건이 터진 지 수개월이 지났다. 현재 비리에 연루된 수십 명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데 연루자 대다수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직원이고 나머지는 납품업체 직원들이다. 수사 결과 한수원이 납품 과정에서 돈을 받는 관행이 아주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원전의 현장 근무자뿐 아니라 본사 간부들까지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졌는데, 이것은 상납의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전체적으로 썩어 있는 한수원의 정신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핵마피아’라 불릴 정도로 폐쇄적 조직 문화

납품 비리가 가능한 요건들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썩은 조직의 일반적 특성을 한수원은 그대로 간직했다. 납품 비리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발생하는 요건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들 수 있다. ‘회전문 인사’라고 이름 지어진 핵산업계의 인사 구조는 핵산업계 내부 인사와 외부 인사로 확실하게 갈라놓는 인적 경계선을 만들어놓았다. 이 인적 경계선은 ‘우리’와 ‘나머지’로 국민을 구분하고 국민보다는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적 이익 집단을 만들어내게 된다. 그래서 핵산업계에 속하는 사람들은 버젓이 스스로를 ‘핵마피아’라고 부르면서 자신들만의 집단의식을 키워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수원 내부의 조직 문화를 살펴보면 비밀주의가 만연해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계하는 기관이지만 정보 공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아예 법적으로 정보 공개의 의무를 배제해놓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는 사실도 여기에 기여한다. 올해 2월의 고리원전 정전 사고 은폐 사건 등 그동안 있었던 십수 건의 사고 은폐 기록을 보아도 핵산업계의 비밀주의를 짐작할 수 있다. 한수원 직원들도 자기 부서 이외의 일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비밀주의는 한수원 조직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둘째는 한수원 주변에 눈먼 돈이 많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경주에 살다 보니 한수원이 주민들을 상대로 얼마나 많은 돈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예 대외협력실이라는 기관을 통해, 제대로 예산을 짜고 결산을 하지 않아도 집행할 수 있는 돈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 유난히 많은 경주의 시민단체들이 행사 때마다 한수원을 찾아가서 손을 벌리면 후원금을 받아낼 수 있다. 100만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이런 돈들은 쉽게 받아낼 수가 있고, 이 돈을 가지고 행사를 치르는 단체들이 경주에는 너무나 많다. 아마도 이런 돈들은 이른바 지역협력기금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이는 본래 해당 지자체에 맡겨서 지자체가 공익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돈이다. 그러나 한수원은 현재 이 돈의 절반을 직접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주민들은 이 돈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서는 형국이 되었다. 이로 인해 원전 주변에는 이른바 ‘친원전 세력’까지 생겨나면서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도 한수원의 입장을 대변하는 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같은 한수원 주변의 ‘눈먼 돈’이 비리를 만들어내고 돈으로 사람을 지배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셋째는 제도적인 문제이다. 한수원은 부품의 납품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각 발전소의 팀장에게 전적으로 맡겨놓았다. 그러다 보니 이 권한을 가지고 있는 팀장들에게 유혹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문제는 이번 비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본사 직원까지 연루되었다는 점이다. 짐작컨대 권한은 현장의 팀장에게 집중되어 있지만 그 열매는 본사 직원들까지 포함해 ‘관리’되고 있지 않은지 의심된다. 

넷째, 한수원 직원이 퇴임하면 한수원에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를 차리고 이미 형성된 인맥을 통해 납품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전관예우’와 비슷한 구조인데, 바로 이런 구조가 납품 비리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원전 부품은 완벽하게 제작되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런 기술도 없는 사람들이 인맥만 믿고 회사를 차려서 부품을 생산하고 한수원에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 불량 제품을 생산할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인 것이다.

납품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여건은 이렇게 충분히 형성되었고,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는 그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동안 한수원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대로 수사된 적이 별로 없었다. 한수원뿐 아니라 핵산업계 전체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대전에 있는 원자력연구원에서 우라늄이 없어진 사건도 제대로 수사되지 않아서 유야무야되었을 정도이다. 이러한 한수원의 비밀주의는 내부 고발자가 나올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놓았다. 이렇게 납품 비리가 만연해 있는데도 그동안 한 번도 내부 고발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비밀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같은 비밀주의를 키운 배후에는 한수원이 정보 공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적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짝퉁·중고 부품은 원전 안전 문제와 직결

지난 7월10일 울산지검 특수부는원전 납품 비리와 관련해 한수원 직원 6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 뉴시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납품 비리의 결과는 어떨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납품할 때 따로 돈이 들 경우 납품업자들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술 개발에 힘을 쏟을 수가 없게 되고, 상품의 질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 보니 짝퉁 부품이 납품되기도 하고 중고 부품이 새것으로 둔갑해 납품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수원은 한사코 짝퉁 부품이 아니고 국산화된 부품이라고 주장하지만, 관리가 이렇듯 허술하고, 사회 통념상 받아들일 수 없는 비리들이 줄줄이 발생하는데 어떻게 그런 주장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오히려 국산 부품 개발비로 쓰였을 예산이 제대로 기술 개발에 쓰였는지조차도 의심된다. 이렇게 납품 비리의 결과는 불량한, 혹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부품의 생산으로 직결되며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한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직원들이 만질 수 있는 눈먼 돈들을 모두 회수해야 한다. 특히 원전 주변 지자체에서 행사해야 할 지역 지원금은 모두 지자체에 돌려주어야 한다. 또한 납품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발전소 팀장에게 맡기지 말고 더 투명한 과정을 통해서 납품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검찰은 이번의 비리 사건을 완벽하게 수사해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납품 비리의 구조를 모두 드러내야 한다. 이 사건과 관련된 먹이 사슬을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검찰은 단 한 번의 핵발전소 사고가 민족의 멸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가진 권한을 모두 동원해 한수원의 비리를 척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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