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퍼스트레이디’ 공개했다
  • 정성장│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 승인 2012.07.16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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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 공연 관람한 여성, 부인일 가능성 커…주민들이 받을 충격 고려해 신원 안 밝힌 듯

김정은 북한 로동당 제1비서가 지난 7월6일 새로 창단한 모란봉악단의 시범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이라며 조선중앙통신이 7월9일에 보도한 이후 김정은과 함께 서 있는 여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7월7일 조선중앙TV와 로동신문 사이트를 통해 김정은 로동당 제1비서의 모란봉악단 시범 공연 관람 동영상과 사진을 공개하면서 그의 옆에 나란히 앉은 미모의 여성이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문제의 동영상과 사진이 공개된 직후에만 해도 다수의 전문가와 언론은 이 여성이 김비서의 여동생 김여정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일각에서는 김비서와의 염문설이 나돈 보천보전자악단 출신 가수 현송월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에 김비서와 함께 공연을 관람한 여성은 김여정이나 현송월일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지난해 12월 김정일의 장례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김여정이나 그동안 알려진 현송월과 외모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긴 머리에 아직은 앳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이번에 공개된 여성은 단발머리 스타일에 만 25세의 김여정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든 원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여성은 역시 긴 머리 스타일의 가수 현송월과도 외모가 분명히 다르고 훨씬 지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동생 김여정·가수 현송월과는 다른 외모

김정은 비서는 지난 7월8일 김일성 사망 18주기를 맞이해 공연을 같이 관람한 여성과 함께 김일성 시신에 참배했다. 그런데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비서가 이미 다른 남성과 결혼해 딸까지 둔 가수 현송월을 대동하고 군 간부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김일성 시신에 참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김비서 옆에서 6일 공연을 관람하고 8일 김일성 시신에 참배한 여성이 현송월일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비서가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들어갈 때 이 여성이 같이 따라 들어가는 모습이나, 공연장에서 김비서 옆에 서서 함께 박수를 치는 모습 그리고 퇴장할 때 따라 나가는 모습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모두 ‘여동생’의 모습이 아니라 ‘퍼스트레이디’로서의 모습이었다. 김비서가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할 때 이 여성은 김비서의 바로 뒤에, 그리고 다른 간부들 바로 앞에 서서 그녀가 과거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처럼 영부인으로서 특별한 지위를 지니고 있음을 과시했다. 이 여성은 특히 금수산태양궁전에서 매우 당당한 모습으로 걸음으로써 조심스럽게 김비서의 뒤를 따르는 군 고위 간부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정은 제1비서의 고모로서 현재 북한의 사실상 ‘제2인자’라고 할 수 있는 김경희 비서도 이 여성처럼 다른 간부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예우를 받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여성이 김정은의 여동생일 가능성도 매우 희박해 보인다. 그리고 특별히 지금 이 시점에서 김정은 비서가 아직 만 25세에 불과하고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는 자신의 여동생 김여정을 간부들과 전체 주민들 앞에 갑자기 내세울 이유도 발견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 여성은 김비서의 부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렇다면 왜 김비서는 이 시점에 자신의 부인을 공개하고 나섰을까.

일 부 전문가는 “공산권 국가에서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사회적 지위 없이 공식 석상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 여성이) 김정은의 부인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1971년에만 해도 김일성은 루마니아의 니꼴라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이 김일성과 그의 부인 김성애를 위해 차린 연회에서 연설했고, 김일성과 김성애가 공동으로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하누크친 왕과 그의 부인을 위해 연회를 개최했으며, 노로돔 시하누크친 왕이 김일성과 김성애를 위해 연회를 개최한 사실이 북한이 발간하는 <조선중앙년감> 1972년판에 소개되어 있다. 이처럼 1973년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내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일성은 부인 김성애를 공식 석상에 자주 대동하고 나타났으나, 김정일이 1974년에 후계자로 공식 결정된 후 자신의 생모 김정숙을 국모로 내세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같은 관행이 중단되었을 뿐이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김정은 제1비서가 미혼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김비서는 2009년에 결혼해 2010년에 자식까지 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비서의 부인 나이는 현재 27세, 키는 1백64cm 정도이며 김일성종합대학 대학원까지 졸업한 엘리트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본가는 청진시 수남구역으로, 아버지는 청진시 대학 교원이며 어머니는 수남구역 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북한은 7월7일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 제1비서의 부인 얼굴을 공개한 데 이어 9일자 로동신문 2면을 통해서도 김비서 옆에 앉은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 없이 두 사람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북한이 이처럼 김비서 옆의 여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은 그의 부친 김정일이 복잡한 여성 관계로 인해 생전에 언론 매체를 통해 자신의 부인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김정은 비서가 자신의 부인을 갑자기 공개했을 때 주민들이 받게 될 충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시대에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퍼스트레이디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김비서는 아버지 김정일과 같은 복잡한 여성 편력이 없기 때문에 이번에 이같은 비정상적인 관행과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비서의 이같은 결정에는 그가 4년 반 동안 스위스에서 유학하면서 부부 동반 모임이 일상화되어 있는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도 일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비서의 공식적 권력 승계가 올해 4월에 완료되었고, 5월께에는 그의 생모 고영희에 대한 개인 숭배 기록영화도 고위 간부들에게 관람되었으므로, 그가 이제는 자신의 부인을 공개해도 될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김비서가 7월8일 할아버지 김일성의 사망 18주기를 전후해 자신의 부인을 공개한 것은 고영희가 1994년 김일성 사망과 함께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것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고영희가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퍼스트레이디로서 활동했다는 것은 최근에 입수되어 공개된 고영희 관련 기록영화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미혼의 지도자가 아니라 이미 결혼해 부인까지 둔 지도자라는 것을 북한이 서서히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인 ‘나이’ 문제를 정면 돌파하고 안정감 있는 지도자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비서가 앞으로도 부인과 함께 주요 공식 행사에 자주 참석해 따뜻한 가장의 이미지를 보인다면, 매우 남성 중심적인 북한의 문화 속에서 일방적으로 희생만을 강요당하고 있는 북한 여성들에게 큰 호감을 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가족 문화에도 일정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을 보는 시각으로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을 바라본다면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김정일 시대에 북한을 보던 시각으로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바라본다면 현재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선진 자본주의를 단 한 번도 직접 접해본 적이 없는 김정일과는 다르게 세계관이 형성될 나이에 서구 사회에서 4년 반 동안 유학하면서 자본주의를 직접 체험한 김비서가 앞으로 북한의 정치·경제와 문화를 과연 어떻게 바꾸어갈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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