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시리아 철권통치 심장이 마침내 ‘펑’ 뚫렸다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7.2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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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사령부에서 반군의 기습 폭탄 공격 벌어져…국방장관 등 아사드 최측근 요인 세 명 즉사

지난 7월18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반군의 폭탄 공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AP 연합

‘아랍의 봄’ 민중 봉기가 일어나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한 것이 지난해 3월이었다. 그로부터 17개월, 아사드는 시위대를 비웃었다. 그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을 외세를 등에 업은 국제 ‘테러리스트’로 매도하고 무자비한 진압을 계속했다. 유엔은 민간인 1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하고, 반군은 1만6천명이 죽었다고 주장한다. 서방 기자들의 입국이 차단됨에 따라 정확한 사망자는 확인할 길이 없다. 유엔과 서방의 개입이 미지근한 상황에서 시리아에서는 연일 민간인들이 죽어갔다. 전 세계에서 “아사드에게 살인 면허를 주었다”라는 개탄이 빗발쳤다. 

그러나 ‘권불십년(權不十年)’을 비웃으며 42년을 버텨온 아사드 정권이 마침내 종말에 접어들었다. 운명의 사신은 7월18일 아침 시리아 수도 한복판 다마스쿠스에 나타났다. 최대 반군 조직인 ‘자유시리아군’의 특공대가 아사드의 최측근 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안보회의가 열리고 있던 국가보안사령부를 기습했다. 폭탄을 안은 자살 특공대가 앞장섰다. 이 폭발로 국방장관, 국방차관, 아사드의 안보보좌관 등 세 명이 즉사했다. 안보보좌관은 아사드의 처남이었고, 폭파된 건물은 아사드의 관저 인근에 있었다.

이 사건은 시리아 사태의 국면을 일거에 바꿔놓았다. 아사드 관저에 인접한 건물이 폭파되고 그 자리에서 핵심 요인 세 명이 피살되었다는 사실은 시리아 국민과 세계에 중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아사드 정권이 마침내 통제력을 잃고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사드 정권의 저력(?)을 믿고 반군의 공세를 반신반의하던 민심도 일순간 반(反)아사드로 돌아섰다. 그동안 전국에서 일어난 반군의 공세 속에서도 평온했던 다마스쿠스에서는 5일 전부터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그때까지도 설마하니 아사드의 심장부가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분석가들은 시리아 내전의 모멘텀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말했다. 폭파 사건은 아사드의 아킬레스건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오합지졸로 보였던 반군이 조직화·정예화되어 아사드의 안방을 기습할 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군의 정예화에 반비례해 정부군은 와해되었다. 시리아 정부군은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으로 간주되어 어떤 경우에도 아사드를 지켜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표변했다. 아사드 정권이 예상보다 쉽게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수도 다마스쿠스에 감도는 ‘종말’의 조짐

벌써 아사드가 수도를 빠져나갔다는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곧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다마스쿠스 시가전이 시작된 이후 아사드는 공석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의 행방과 소재를 두고 온갖 루머가 떠돈다. 불과 5일 만에 77명이 죽는 난리가 났는데도 대통령이 TV에 나오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고 시민들은 쑥덕거렸다. TV에 나와 반군 소탕을 다짐하는 아사드의 모습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국영 TV는 아사드가 즉각 후임 국방장관을 임명했다고 발표했으나 그의 취임 영상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이미 모스크바에 가 있다는 풍문도 있으나 어느 소문도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은 이것뿐만 아니다. 수도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졌다. 처음으로 생필품 사재기가 시작되었다. 일부 시민은 이웃 쿠웨이트로 피난 갈 준비를 서둘렀다. 앞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반군측의 우려가 반영된 듯하다.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한 시민은 “거의 종착역에 왔지만 아직 우리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아사드의 핵심 요인들이 사라졌으나 그에게 충성하는 정예부대는 아직 건재하다. 그 가운데 주목되는 인물이 아사드의 동생 마헤르이다. 그는 여단장이다. 그가 최후의 발악을 할 경우 피바다가 연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도심 거리는 거의 비었다. 택시도 보이지 않았다. 대다수 시민은 집에 틀어박힌 채 외출을 하지 않았다. 군중들은 겉으로 나타내지는 못해도 올 것이 왔다는 환희로 충만했다. 끝까지 아사드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던 군 장성들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주간 터키로 탈주한 장성이 22명에 이른다. 패색이 짙은 정부군과는 대조적으로 반군의 사기는 충천하고 있다. 자유시리아군 대변인은 이번 공격의 주인공이 자신들임을 밝히면서 추가 공격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반군 소식통들은 이집트 TV와의 회견에서 아사드 정권이 두 달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들은 폭파를 감행한 조직이 ‘이슬람여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건을 보고받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  령은 즉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시리아에 대한 압력 행사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내각에는 정권 붕괴에 따른 비상 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은 시리아 사태가 숨 가쁘게 악화되고 있으며 국면은 ‘통제 불능’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걱정하는 것은 다량의 화학무기의 행방이다. 이것들이 여전히 아사드에 충성하는 알라위족이나 알카에다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한다. 그렇지 않아도 아사드가 그토록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알카에다의 협조 덕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이라크에서 잠입한 알카에다는 시리아에 훈련 기지를 개설하고 테러리스트들을 양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학무기가 골수분자나 알카에다의 손에 들어가면 미국에는 악몽이 된다.

시리아의 살육 사태를 지연시킨 데는 러시아의 역할이 크다. 중국도 아사드에 우호적이지만 러시아만큼 아사드 정권을 비호한 나라는 없다. 유엔 안보리의 대(對)시리아 추가 제재 결의안은 번번이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코피 아난 유엔 특사의 평화안도 모스크바에서 좌절되었다. 러시아가 아사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집착하는 속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대량의 무기를 판매한다. 거래액이 얼마인지도 극비로 되어 있다. 무기 판매도 무시하지 못할 변수이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시리아가 중동에서 러시아의 교두보라는 점이다.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미국에 밀착한 상태에서 러시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리아에 친(親)러시아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 국제 사회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아사드 정권을 그토록 비호하는 러시아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푸틴은 아사드의 붕괴 조짐을 보고도 오바마의 요청을 거부했다. 푸틴은 오바마의 협조 요청을 들어주기는커녕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개입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21세기 최악의 비극 앞에서도 강대국의 이해는 동상이몽이다.

코피 아난의 노력도 애처롭다. 그는 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해 모스크바까지 가서 사정하고 안보리의 제재안 표결을 연기하면서까지 러시아의 참여를 갈망했으나, 그의 희망은 무산되었다. 러시아와 중국은 하루를 연기한 끝에 7월19일 진행된 표결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러시아 설득에 여념이 없던 미국과 서방은 뒤통수를 맞았다. 안보리 표결에서 처음 발언한 마크 그랜트 영국대사는 러시아와 중국이 ‘야수 같은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리아 국민을 제물로 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군사 개입을 촉구해왔던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는 오바마의 우유부단이 비극을 키웠다고 맹공했다. 시리아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오바마의 시도와 러시아의 비협조는 어느새 미국의 대선 이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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