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와 루스벨트, 그리고 안철수의 길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2.07.23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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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사회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구상을 담은 책을 출간하면서 주춤했던 정치 행보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이런 안원장의 정치 행보와 정책 구상은 미국의 두 전직 대통령의 행적을 떠올리게 한다. 안원장과 그 역사 속 인물들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 시사저널 유장훈
“더 많은 사람들과 힘을 모아 나가고 싶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잠시 주춤하던 정치 행보에 다시 강력한 시동을 걸었다. 안원장은 7월19일 사회 현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구상을 담은 책 <안철수의 생각,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이하 <안철수의 생각>)를 펴냈다. 안원장은 이 책에서 “제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안철수의 생각>은 발매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그의 대중적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원장은 또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힐링캠프>에도 출연한다. 이 방송에는 이미 여야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문재인 민주당 상임고문이 출연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특히 문고문은 <힐링캠프>에 출연해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으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안원장에게도 이 방송이 정치 행보를 가속화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수 있다. 안원장이 책과 방송 등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면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안풍’이 다시 한번 휘몰아칠지가 주목된다.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 폭풍 전야를 맞고 있다.

‘시민 후보’로 성공한 아이젠하워 전철 밟나

안철수 원장의 정치 행보와 정책 구상을 두고 미국의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거론된다.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와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성공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으로 유명하다. 1952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56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대공황 시기에 ‘뉴딜’ 정책을 실행해 미국을 침체의 늪에서 구해낸 경제 대통령이다. 1932년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내리 4선을 한 입지전적인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른 안원장과 미국의 두 전직 대통령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선 안원장이 보이고 있는 정치 행보를 두고 ‘아이젠하워 모델’을 염두에 두고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의 인기는 대단했다. 1952년 대선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그를 영입하기 위해 구애를 펼쳤다. 하지만 아이젠하워는 중립 지대에 머무르면서 대중적 인기를 드높였다. 그러다가 공화당 후보 경선 후반에 합류해 막판 공화당 후보가 되었고, 11월 본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안원장과 아이젠하워는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한 ‘시민 대통령’ 이미지를 지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어느 한 정당에 소속되기보다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현재까지 안원장은 ‘아이젠하워 모델’에 따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향후에도 그렇다고 한다면 안원장은 8월 중순에 시작해 9월23일까지 진행되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중간이나 직후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당시의 미국과 지금 한국의 정치 환경에는 차이가 있다. 1952년 미국 대선 때 공화당 내에는 좌우 두 개의 계파가 있었는데, 그중 한 축을 담당하던 좌파에서는 후보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다. 이에 따라 대안을 찾다 보니, 아이젠하워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존 정당의 지원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 안원장에게 힘을 실어줄 세력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또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안원장을 지지하는 자발적인 시민들이 조직화할 수 있느냐 하는 점도 중요하다. 아이젠하워의 경우 ‘아이젠하워를 위한 시민 조직’이 전국적 차원에서 결성되어 ‘나와라 아이젠하워’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안원장도 이런 식으로 시민운동의 지원을 받으면 대권 행보에 날개를 달 수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아이젠하워가 국민적 영웅이었던 반면, 안원장은 아직까지 그 정도의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안원장 영입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조직화한 지지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원장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나가겠다는 좀 더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척점에 서 있는 세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라고 밝혔다.

서민 구제한 루스벨트를 ‘롤 모델’로 삼아

안철수 원장이 지난 4월3일 전남대에서 열린 용봉포럼 ‘광주의 미래, 청년의 미래’ 강연을 하기 위해 대강당에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루스벨트 대통령은 안원장이 <안철수의 생각>에서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밝힌 인물이다. 안원장은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이나 시대적 과제를 생각할 때 미국 대공황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네 번 대통령을 연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루스벨트는 대공황의 위기와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엄청난 위기 상황 속에서 ‘뉴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경제를 재건했고,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미국이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토대를 닦은 대통령이다”라고 평가했다.

안원장이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은 것은 그가 단순히 경제를 살린 세계적 지도자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7년 두 번째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가 표방하는 진보는 많이 가진 자들이 풍요를 더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적게 가진 자들이 충분히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 서민들을 위한 복지 제도 확충, 금융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마련 등 과감하게 개혁을 밀어붙였다. 기득권층의 반발에도 슬기롭게 대처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부 집중도’를 살펴보면 잘 나타난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소득 재분배 정책에 따라 상위 1%에 돌아가던 국민소득의 몫은 꾸준히 내려가 1930년대에는 16~17%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기인 대공황 때 대통령에 취임해 고통받는 이들을 구제하는 데 앞장섰다. 대공황을 불러온 경제·사회적 시스템을 개혁했다.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하고, 최저 임금을 보장해 보통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이러한 업적은 현재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안원장이 제시한 바람직한 미래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서야 할 장애물과도 맞닿아 있다.

지난 2월6일 안철수재단 설립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안철수 원장. 그 옆은 박영숙 재단 이사장. ⓒ 시사저널 임준선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원장이 자신의 ‘롤 모델’로 루스벨트를 꼽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해 보인다. 루스벨트는 정치인이다. 안원장이 책에서 정치인은 윤리관을 확실히 가져야 한다고 썼는데,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정치에서 윤리를 강조하면 항상 최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 정치는 때로는 차선과 때로는 차악을 선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윤리를 지나치게 앞세우면 정치를 해나가기가 쉽지 않다”라고 밝혔다. 그는 “안원장은 정당보다는 사람을 보고 뽑고, 그래야 정당이 정신을 차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역시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루스벨트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서구는 정당을 보고 사람을 뽑는다. 그리고 정치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느낌을 받았다. 실수를 하면 그 내용을 기록해두어서 똑같은 실수를 두 번 안 한다고 했는데, 정치는 그런다고 해서 실수를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옳은 말인데도, 너무 공허하게 들린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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