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대국 건설’ 큰 뜻을 읊다
  • 심경호│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
  • 승인 2012.07.2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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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의 시문 ? 세조가 신하들에게 들려준 <백운봉에 올라> / “중국 땅까지 포용” 포부 담아

세조의 무덤인 광릉. ⓒ 시사저널 임준선

<세조실록>에 보면 세조는 재위 9년(1463년) 9월8일(갑자)에 경복궁 사정전에서 양로연을 베풀면서 태조의 시를 여러 고관에게 보여주었다. 당시 왕세자와 효령대군, 임영대군, 영응대군, 영순군, 귀성군, 은산 부정 이철, 하성위 정현조, 청성위 심안의를 비롯해, 하동부원군 정인지, 영의정 신숙주, 우의정 구치관, 좌찬성 황수신, 예조판서 박원형 이하 고위직이 모두 입시했다. 이때 기녀와 악공이 음악을 연주하자, 세조는 태조의 다음 시를 여러 재추(宰樞; 문무의 높은 관리들)에게 보여준다.

손 이끌어 등 넝쿨 더위 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암자 하나가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높이 걸렸네
시야에 들어오는 전부를
우리 땅으로 삼는다면
중국 강남의 초나라 월나라인들
어찌 수용하지 못하랴

引手攀藤上碧峯(인수반등상벽봉)
一庵高掛斗牛中(일암고괘두우중)
若將眼界爲吾土(약장안계위오토)
楚越江南豈不容(초월강남기불용)

이 시는 태조 이성계가 국왕이 되기 이전에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제목을 <백운봉에 올라(登白雲峰)>라고도 하고 <삼각산에 올라(登三角山)>라고도 한다.

첫 구에 나오는 반등(攀藤)은 유희령의 <대동시림>에 반라(攀蘿)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넌출 더위 잡고’라는 뜻이 된다. 또 둘째 구는 일암고와백운중(一菴高臥白雲中)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암자 하나가 백운 사이에 높이 누워 있네’라는 뜻이 된다. 庵과 菴은 통해 쓰는 글자이다. 마지막 구에서 태조는 자신이 정권을 잡으면 우리 땅을 중국 강남의 초나라·월나라처럼 강성한 나라로 만들 수 있다는 자부심을 토로했다.

집권 정당성 선전 위한 세조의 정치극?

서거정은 <동인시화>에서 이 시를 소개하면서, “넓은 마음과 큰 도량은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면이 있다”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태조가 만일 잠저에 있을 때 실제로 이런 시를 지었다면 천하를 손에 넣으리라는 야심을 토로한 것이 된다. 하긴 태조는 고려 말에 三尺劒頭安社稷(삼척검두안사직)이라는 시구를 읊은 적이 있다. ‘석 자 칼로 사직을 편안히 하련다’라는 말이니, 어마어마한 말이다. 당시 문사들이 다 댓구를 짓지 못했는데, 최영이 갑자기 一條鞭末定乾坤(일조편말정건곤)이라 했다. 사람들이 모두 탄복했다고 한다. 최영의 시구는 ‘한 가닥 채찍으로 천지를 평정하련다’라는 말이니, 그 또한 영걸의 말이었다.

세조는 태조의 시를 제시한 후 그 시의 운자인 봉(峰)·중(中)·용(容)을 사용해 다음 시를 스스로 지어서 입시한 신하들에게 보여주었다.

하필 등덩쿨 더위 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랴
암자가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있지도 않는 것을
할아버지께 묻노니
무슨 수로 우리 땅으로 삼을까요
유업이 너무 커서 용납 못 할지
어찌 알리오

何必攀藤上碧峰(하필반등상벽봉)
一庵非是斗牛中(일암비시두우중)
問祖何術作吾土(문조하술작오토)
安知遺業大無容(안지유업대무용)

세조는 유업을 잇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내게 부과된 엄중한 과업을 내려놓고도 싶다는 심경을 말했으니, 군주로서의 고뇌를 시에 담은 것이다. 이날 세조의 시에 정인지 등 문신 당상관 10여 인이 즉시 화답하는 시를 바쳤다. 다음 날인 9월9일(을축)에 세조는 경복궁 후원의 서현정(序賢亭)에 거둥해 사열식을 관람하고, 다른 문신들에게도 태조의 시에 화답하게 했다. 그러면서 또 스스로 두 수의 시를 지어 보였다.

서울 북한산 백운대에 많은 시민이 올라가 주변을 바라보며 휴일을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푸른 봉우리가 절로
오 땅 산봉우리와 다르니
부절을 움켜쥐고
활달대도하게 유유자적하노라
세상에 드문 신무(神武)의 노래가
온 천하에 들리니
우주를 죄다 차지하더라도
수용하지 못할 리 없네

碧峯自殊吳山峯(벽봉자수오산봉)
握符優游大度中(악부우유대도중)
神武曠世聞率土(신무광세문솔토)
囊括宇宙莫不容(낭괄우주막불용)

세계가 안개에 싸여
일천 봉우리가 컴컴하더니
맑은 바람이 불어와
대허(大虛)를 깨뜨리네
메마르고 축축한 풍진의
흙을 몇 번이나 겪었는가만
온갖 품물들이 빛을 받으면
그 누가 본 모습을 숨기리

世界霧擁晦千峯(세계무옹회천봉)
淸風吹破大虛中(청풍취파대허중)
幾經燥濕風塵土(기경조습풍진토)
萬類乘光誰匿容(만류승광수닉용)

9월9일 서현정에서 세조가 신하들에게 보여준 두 시에는 국왕으로서의 당당한 포부가 담겨 있다. 첫 수에서는, 조선 땅을 굳이 중국의 강남에 견주지 않아도, 신무의 음악이 들리는 번성한 나라로 만들 수 있으며 우주를 주머니 속에 죄다 넣듯이 전 세계를 거느릴 수 있다고 했다. 둘째 수에서는, 한 번 풍진의 흙이 메말랐다가 한 번 축축하게 되는 연속된 고난을 겪은 신민들에게 성스런 군주의 빛을 아낌없이 비추어주겠다고 다짐했다. 광피사표(光被四表) 즉 ‘태양의 빛이 사방을 모두 덮게 하리라’라고 신민들에게 약속한 것이다.

지난번에 썼듯이 태조는 고려 말 함흥의 옥에 갇혔을 때 용(龍)자 셋을 운으로 삼아 ‘패택용’ 시를 지어 웅대한 포부를 드러낸 일이 있다. 그때의 시는 운자의 위치에 동일한 글자를 놓았을 뿐 아니라 각 구의 평측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삼각산 백운봉에 올라 지은 시는 너무 다르다. 칠언절구의 형식을 잘 지켰다.

여러 기록으로 볼 때 즉위 전의 태조는 한시를 그리 짓지 않았던 것 같다. 비록 홍만종의 <소화시평>에 태조가 한미할 때 백악(북악산)에 올라 지었다는 칠언절구가 전하기는 하지만, <열성어제>는 그 시를 싣지 않았다. 아무래도 뒷사람이 지어낸 시 같다.

그런데 세조는 태조가 삼각산 백운봉에서 지었다는 한시를 신하들에게 일부러 제시하고 그 시에 화운(和韻; 앞사람의 시에서 사용한 운자를 그대로 써서 시를 짓는 일)하면서 제왕으로서의 포부를 선포했다. 비정상적으로 정권을 잡은 그이기에, 태조 이래의 유업을 계승했다고 선전하려면 모종의 연출이 필요했을 것이다.  

참고: 심경호, <국왕의 선물>, 책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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