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쪽, 하는 쪽 모두 좋은 사과 또는 용서의 방식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2012.07.2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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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쪽이 불리해지는 경우 있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아

ⓒ honeypapa@naver.com

살다 보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상대방에게 사과해야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직장 상사이건, 동료이건, 배우자이건, 낯선 사람이건 간에 일단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용서까지 빌어야 한다면 누구든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잘못했다고 말하는 내 말을 들어주는 상대방 앞에서 마치 어딘가 좀 모자란 것처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상대와 동등하다거나 서열이 높을 때 사과하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권위도 없어져서 앞으로 무시당할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다수 부모나 상사들이 자녀나 부하 직원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뭔가 큰 잘못을 했다 해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이다. ‘겸연쩍어서’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 그런 것이니까’ 등 다른 핑계를 댈 때도 많다. 월급이나 생활비를 주는 등 자신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대방에게 용서를 비는 것도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사실은 별로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쫓겨나면 갈 데가 없어 거짓으로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피눈물을 삼킨 경험이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상대에게 지나치게 사과 요구하다가 큰 싸움 부르기도

그렇게 억울할 것까지는 없지만, 상대에게 사과를 요구하다가 큰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술을 마시고 새벽에 귀가한 남편과 아내의 경우를 보자. 화가 잔뜩 난 아내에게 남편들은 대개 이런저런 변명을 한다. ‘차에서 잤어’ ‘술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다 가버렸더라고’ ‘바이어들 챙기느라, 어쩔 수 없었어’라면서 얼렁뚱땅 사과하는 말을 대신할 수도 있다. 대다수 아내는 물론 화는 나지만, 반쯤은 속아 넘어가준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정상적인 남편들이라면, 일단 이런 경우에는 무조건 싹싹 비는 시늉을 하면서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늦은 당사자가 화를 내거나 뭐가 문제냐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요즘에는 아내들도 많이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당연히 싸움이 커지게 될 것이다. 당신 꼴이 보기 싫어서 늦게 들어온다는 식으로 배우자 탓을 하다가 결국 ‘헤어지자’라는 식으로 반응해 파국으로 치닫는 부부들도 있다.

가정뿐 아니라 사회도 그렇다. 제 시간에 맞추어 주어진 일을 하지 못했을 때, “하려고 했는데, 어제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서…”라는 식의 변명을 사과랍시고 하면 상사는 더 화를 낼 것이다. 내가 시킨 일은 중요하지 않고 다른 일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겨우 한 장짜리 서류를 들고 “어제 검토하느라 늦었습니다”라는 식으로 변명하는 것도 역시 무능하다는 인상밖에 주지 않는다. 이럴 경우 간단하게 “제가 생각이 짧아서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다음번에는 특별히 조심하고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사과하는 것이 정답이다. 엉뚱하게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저도 억장이 무너진다고요”라고 감정적으로 나온다면 그 직원은 인간성도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사실 조직은 그 사람의 억울한 감정 상태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조직 구성원의 가치는 얼마나 도덕적이고 효율적으로 일을 잘 해냈느냐에 달려 있다. 윗자리에 있을 때도 사과의 원칙은 비슷하다. 아랫사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적시하고,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그만인 것을 위계질서 걱정을 하며 잘못을 덮으려 하다 오히려 리더십이 크게 손상되는 경우도 많다. 뻔히 자기 잘못인데도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직원들 탓을 한다면, 직원들은 그의 자질을 의심하고, 일할 의욕도 떨어지고 결국 조직은 와해될 것이다. 즉, 자신의 말에 구체적으로 책임을 지고 가시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는 리더나, 말로는 다시는 늦게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습관적으로 외박하는 남편이나, 중요한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용서를 비는 직원들은 결국 아무리 언변이 좋더라도 곧 신뢰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호주의 역사학자이며 사회평론가인 존 허스트(John Hirst)는 <호주 역사의 상식과 비상식(Sense and Nonsense in Australian History)>이라는 책에서 백인들이 호주의 원주민들에게 진정한 반환과 변상을 하지 않는다면 화려한 수사로 가득찬 사과의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지적한 바 있다.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남아프리카나 미국에서는 넬슨 만델라나 오바마 같은 흑인 대통령이 탄생한 반면, 호주에서는 백호주의(白濠主義; White Australian policy)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아직 많다. 일본도 그렇다. 위안부와 관련되어 이미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그에 맞게 책임질 행동을 하지 않고 있으니 지구인들의 공분을 사는 것이다. 

용서할 위치에서 사과하는 쪽을 들볶는 경우도 잘못

물론 용서할 위치에 있는 입장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데리고 있는 직원이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열심히 할 마음을 보여주었는데도 단순히 내가 더 힘이 있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잘못한 사람을 들볶으며 못살게 구는 사람도 정상은 아니다. 잘못했을 때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체득한 이들은, 일을 하다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범했을 때 어떻게 빠져나가거나 속이려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에게 불이익이 돌아온다. 부부 사이에도 이미 사과를 충분히 했음에도 평생을 똑같은 레퍼토리로 상대방을 볶는 이들이 있다. 또 바람 피려고 그 여자를 쳐다보는 것 아니냐, 어디다 돈 갔다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식으로 충분히 사과하고 여러 번 용서를 빌었음에도, 잊을 만하면 옛날 일을 다시 꺼내서 닦달하는 이들도 있다. 공격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때로는 참다 참다, “네가 그렇게 나를 못 믿고 몰아가니, 네 말대로 해주마”라는 식으로 홧김에 옛날 잘못을 일부러 되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있거나 불이익을 받았던 사람들이 자신을 억압했거나 손해를 끼친 힘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사과할 때 과연 그 사람의 말이 진심인가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 사실은 당연하다. 그만큼 불평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불이익을 받았던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등 이민자들의 경우 미국에서 평등한 지위에 있다고 헌법은 보장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불평등과 싸워야 하는 일이 많았다. 최근 일어난 캘리포니아 에너하임의 폭동도 백인 위주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말만 앞세웠지, 소외당한 민족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실천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소수 민족의 권익을 정당하게 되찾기 위해 백인들에게 사과의 말을 당당하게 요구했던 지도자들은 꽤 있었다. 그중에서 최초의 흑인 메이저 프로야구 선수인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과 사회운동가 말콤 엑스(Malcolm X)는  대표적으로 아주 다른 방식으로 백인들에게 사과를 요구한 사람들이다. 로빈슨은 보수주의 정당과 방송국 등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점진적으로 흑백 화해를 위해 일했고, 말콤 엑스는 아주 과격한 방식으로 백인들을 적으로 돌렸다. 후세가 평가하는 공과 과는 사람마다 조금 다르겠지만, 두 사람이 용서하는 방식과 그들의 삶을 반추해보면 지금 우리에게 맞는 사과와 용서의 방식은 과연 무엇인지 답이 나올 것도 같다. 어쨌거나 잘못을 범한 개인들은 물론, 모순에 찬 사회를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누가 어떤 사과를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감정에 호소하는 미사여구보다 사과의 말 이후에 달라진 모습이 중요하다. 진정한 사과는 세 치 혀가 아니라 땀 흘리는 손과 발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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