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선수비·후역습 카드까지 써?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7.2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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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 한국, ‘우승 후보’ 상대로 선전 전문가와 베팅 회사들의 예상 깨고 ‘무승부’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 B조 예선 1차전에서 멕시코 선수와 볼 다툼을 벌이는 남태희 선수(오른쪽). ⓒ 연합뉴스
2002년 한·일월드컵 전에 PC통신이나 인터넷의 축구 커뮤니티에서 축구팬들이 이런 한탄을 자주 했었다. “우리 대표팀이 멕시코만큼만 잘할 수 없나?” 독일·스페인·브라질·아르헨티나 같은 축구 강국은 언감생심이었다. 오히려 멕시코처럼 세계 축구에서 확고한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 경쟁력 있는 팀을 본받자는 차원에서였다.

멕시코는 스포츠 최강국 미국을 밀어내고 북중미 축구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월드컵 본선의 단골손님인 데다가 최근 다섯 대회 연속 16강 이상의 성적을 냈다. 축구 왕국 브라질을 자주 꺾는 ‘삼바 킬러’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0위권 내에 늘 이름을 올린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의 에이스였던 우고 산체스를 시작으로 현재의 치차리토(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오바니 도스 산토스(토트넘) 등 유명 클럽에서 뛰는 스타도 꾸준히 배출된다.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멕시코를 만나면 그 격차를 실감해야 했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였다.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펼치며 16강 진출의 꿈을 꿨지만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3으로 패하며 그야말로 꿈으로 끝났다. 당시 프리킥 선제골을 기록한 하석주가 불필요한 태클로 퇴장당해 수적 열세였던 이유도 있다. 그러나 우리 수비수를 앞에 두고 일명 개구리 점프 드리블을 구사하는 과테목 블랑코나 두 골을 기록한 루이스 에르난데스는 그야말로 우리 축구의 수준을 농락했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김정우의 결승골 덕에 1-0으로 승리했지만, 경기 내용은 완전히 밀렸었다.

그로부터 8년 뒤 런던올림픽에서 한국과 멕시코는 재회했다. 멕시코는 이번 올림픽의 유력한 우승 후보 가운데 하나이다. 북중미 예선에서 5전 전승을 달렸고, 대회를 앞두고 치른 프랑스 툴롱 국제 대회에서 올림픽 본선 참가팀들을 압도하며 우승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반대로 치차리토가 합류하지 못했지만 대회 전 전문가와 유럽 베팅회사들은 멕시코가 한국을 상대로 손쉽게 이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 멕시코는 예상외의 모습을 보였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대표팀을 상대로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펼친 것이다. 이른바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꺼내드는 카운터어택 전략이었다. 후반 중반까지 우리 대표팀은 경기 주도권을 놓지 않았고, 멕시코는 수비를 단단히 하다가 빠른 공격으로 맞섰다. 크로스바를 맞고 나간 구자철의 슈팅, 기성용의 대포알 중거리슛, 조금만 방향을 덜 틀었다면 들어갔을 구자철의 헤딩 등 기회도 우리 쪽에 더 많았다.

한국이 평가전에서 세네갈을 완파했다는 소식에 놀란 멕시코

올림픽을 앞두고 치른 세네갈과의 마지막 평가전이 멕시코로 하여금 한국을 경계하게 만들었다. 한국은 스페인, 스위스를 꺾은 세네갈을 3-0으로 완파했다. 이 소식에 화들짝 놀란 멕시코는 전력분석 요원들을 기자로 변장시켜 대표팀 훈련장에 들여보냈다가 들통 나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멕시코는 한국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둔 것에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상전벽해였다. 유럽 무대에서 성장한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지난 3년간 꾸준히 발을 맞춘 덕에 멀게만 느껴졌던 멕시코와의 격차가 이만큼 줄어든 것이었다.

1998년 월드컵에서 1-3 참패를 직접 그라운드에서 경험했던 골키퍼 김병지가 후배들의 경기를 보며 트위터에 남긴 소감은 한국 축구의 빠른 발전과 세계를 상대로 한 경쟁력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올림픽팀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멕시코가 선수비, 후역습의 카드를 갖고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과의 경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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