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고로 변한 중동의 완충 지대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7.2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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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정정 불안 틈타 시나이 반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대거 유입…주민들까지 테러 일삼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경 근처에서 군사 훈련 중인 한 이스라엘 병사가 탱크를 향해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 AP연합

중동은 화약고처럼 민감한 지역이다. 이집트 혁명은 반전을 거듭하고 시리아에서는 1만6천여 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는데도 아사드 정권은 퇴진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중동의 평화를 유지하는 기본 틀은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1979년에 맺은 평화협정이다. 이 조약 덕분에 중동의 기본 질서가 유지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이 기본을 흔드는 불청객이 등장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완충 지대인 시나이 반도의 상황이 요즘 들어 심상찮다. 시나이 반도는 최근 몇 달 사이에 무법천지로 변했다. 연면적 6만㎡의 시나이 반도에는 사막의 유랑 민족 베두인족이 거주하고 있다. 50만명에 이르는 이들은 그동안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삶을 누려왔다. 그러나 시나이의 치안이 붕괴되면서 이들의 삶의 방식이 달라졌다. 무기와 마약을 거래하고 관광객을 납치해 몸값을 받는 테러 활동을 통해 돈을 버는 재미에 폭 빠졌다. 마치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배운 듯 이들의 수법은 대담하고 잔혹해졌다. 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의 테러 활동에는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군(지하드)들이 가담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접경 부근에 작전 기지를 개설하고 닥치는 대로 테러를 한다.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도주한 사람들이다. 지난해 무바라크 정권 붕괴 후 이집트 감옥에서 석방된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일설에는 이라크에서 암약 중인 알카에다 세력도 일부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집트 혁명기의 혼란을 틈타 세를 불린 이들은 최근 기습, 납치, 마약 거래, 인신매매 같은 테러를 일삼고 있다. 권력 투쟁으로 정부 기능이 마비된 이집트가 이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에 실패함에 따라 이스라엘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행위가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사태가 올 경우 이스라엘은 시나이를 침공할 태세이다. 과거에도 이미 이 반도를 점령한 바 있으니 다시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미 여러 차례 전란에 휘말린 시나이 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 자칫하면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고, 수에즈 운하 통과도 막힌다. 

이집트·이스라엘 양국의 안보 동시 위협

지난 4월9일 이집트 북부 시나이 반도에서 테러범들의 공격으로 파괴된 가스관이 불타고 있다. ⓒ AP연합
미국이 다급해졌다. 아시아, 유럽, 중동을 순방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7월16일 CNN과의 회견에서 이 반도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작전 기지’가 되어 중동의 화약고로 변할 위험성을 경고했다. 테러 분자들의 활동이 통제되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이집트 양국의 안보를 동시에 위협할 수 있다고 클린턴은 경고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집트 관리들과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이집트 관리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 마크 유달 의원은 시나이 사태가 종국에는 34년 전에 체결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평화협정을 와해시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반인륜적 테러 행위를 방치할 경우 조만간 중동 전체를 전화(戰禍) 속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로서는 이집트의 실권자가 누가 되든 관심이 없다. 시나이의 혼란이 이스라엘 안보에 미칠 파장이 제일 큰 고민거리이다. 이스라엘에는 시나이 사태가 이란의 핵 위협 못지않게 걱정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시나이 전쟁으로 인해 1979년 체결된 이집트와의 평화조약이 무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특히 테러 분자들이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일단의 무장 괴한들이 이스라엘의 에리트리아 시에서 버스, 민간인 차량, 군인들을 공격해 여덟 명을 죽였다. 이들을 추격하던 이스라엘 병사들은 작전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이집트 경비병 다수를 사살했다. 이에 격분한 이집트인들은 카이로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을 습격했다. 당시 이집트측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파기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의 중재로 사태는 간신히 진정되었으나 자칫 중동전으로 비화될 뻔했다. 이 지역에서는 최근 관광에 나선 두 명의 미국인이 납치되었다가 가까스로 석방되었다. 시나이의 폭발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스라엘은 사건 후 이집트 접경 지역의 병력을 증강했다. 최근에는 평화 임무를 수행하는 다국적 감시단이 자주 공격을 받아 더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테러 행위는 특히 인신매매와 납치로 이루어진다. 주로 수단·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이스라엘이나 유럽의 일자리를 찾아 시나이를 통과하던 사람들이 납치 대상이 된다. 베두인족은 이들을 무작위로 납치한 후 몸값으로 3천 달러를 요구한다. 최근에는 몸값이 10배 올랐다. 몸값을 내지 못하면 무기한 억류한 채 강제 노동을 시키고, 여차하면 죽인다. 이런 형태의 인신 납치는 베두인족의 생계 수단이 되어 일상으로 자행된다. 

무법 상태 된 지 1년 넘어…전쟁 발발 우려

시나이 반도는 그 전략적 위치 때문에 긴 세월 동안 이해가 충돌해온 곳이다. 이 반도는 북으로는 지중해와 닿아 있고 남으로는 홍해에 접하고 있어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 반도와 이집트 본토 사이로는 수에즈 운하가 흐른다. 이스라엘군은 1965년과 1967년 이 지역을 점령했으나 1979년 평화협정 체결로 이집트에 관할권을 넘겨주고 철수했다. 그 이후 양국 간에는 비교적 안정된 평화가 지속되고 있으나 최근 이집트의 정정 불안과 이슬람 테러 분자들의 발호로 평화 기조는 풍전등화이다. 현재 이 반도에는 1개 대대 규모의 미군이 평화유지군의 일환으로 주둔하고 있으나 역할을 거의 못하는 형편이다. 주민들은 이스라엘이 다시 침공해올 경우 반도 전체가 피바다가 될까 걱정한다. 전쟁이 나면 이슬람 전사들은 물론이고 학살극이 연출될 것이라는 공포가 팽배하다.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마침내 클린턴의 입을 통해 본격적으로 표출되었다.

무장 괴한들은 최근 경무장한 경찰 초소를 공격하고 이스라엘로 가는 송유관을 폭파했다. 베두인족은 이 틈을 이용해 관광객과 평화유지군을 납치했다. 마약 거래와 인신매매는 때를 만난 듯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1월 이집트인들이 무바라크 정권 타도에 나서자 북부 시나이 주민들은 약탈을 시작했다. 경찰서도 습격하고 기타 이 지역 안전을 제공하는 상징적 시설들을 불태웠다. 무바라크의 실각으로 혼란은 훨씬 가중되었다. 남아 있던 일부 경찰 초소들은 불타고 경비병들은 치안을 유지하기는커녕 모래주머니 뒤로 숨기에 바쁘다. 경찰력이 붕괴된 후 수많은 죄수가 감옥에서 뛰쳐나왔다. 주로 이슬람 극단주의 분자들이었다. 탈옥자들은 온 세상이 이슬람과 전쟁 중이라며 길길이 날뛰고 있으나 통제할 사람이 없다.

그동안 압박과 통제에 시달린 이슬람인들은 시나이 반도 전 지역에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고 있다. 마치 한풀이를 하듯 다짜고짜 납치하고 죽인다. 이런 무법 상태는 벌써 1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대피소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중앙 정부가 혼돈에 빠진 마당에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죽으면 ‘개죽음’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푸념했다. 나이가 든 한 노인은 이곳에 이슬람 낙원을 건설하자는 주장에 자신은 동조하지 않는다면서 제발 안전이 확보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대다수 주민은 이집트 정부가 신속하게 질서를 회복하지 않으면 시나이 반도는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되고, 급기야는 국제전으로 확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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