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몰아붙이는 금감원의 ‘젊은 반란’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7.2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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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직원들, 재경부 출신 금융 관료들 비판한 신문 광고 게재

추효현 금융감독원 노조위원장(금감원 공채 2기)(왼쪽),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오른쪽) ⓒ 시사저널 박은숙·이종현

지난 7월19일 경향신문 5면에는 주목되는 광고가 실렸다.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모피아(재경부 출신 금융 관료)들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저축은행 사태가 모피아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해 일어났고, 이들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담겼다. 그런데 광고 게재 주체가 시민단체나 저축은행 피해자 모임이 아니다. ‘금감원 젊은 직원 일동’이다. 금감원 내부 직원들이 직접 자신들의 수장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금감원 젊은 직원 일동’은 금감원 내 공채 직원들을 의미한다. 금감원에는 지금 공채 직원 6백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전체 인원 1천6백여 명 중 약 40%에 달한다. 금감원이 출범한 후 2000년 1기를 시작으로 모두 13기수로 이루어져 있다.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 사이이다. 이번 광고 게재를 주도한 추효현 금감원 노조위원장은 공채 2기 출신이다. 추위원장은 “이번 광고 게재는 각 공채 기수 장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한 것이다. 노조가 아닌 공채 차원의 행동이다”라고 전했다.

해당 광고는 7월19일 일간지 세 곳에 실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광고가 나간 곳은 경향신문뿐이다. 나머지 두 곳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광고가 실리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인 20일에는 광고를 싣기로 했던 여섯 개 매체 모두에 광고가 정상적으로 게재되었다.

‘모피아’ 그늘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보여

금융감독원의 규제 완화 금융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신문 광고. ⓒ 시사저널 최준필
금감원 공채 직원들의 이같은 반란은 청와대의 귀에도 들어갔다. 추위원장은 “광고가 나가기 하루 전인 18일 금감원의 한 고위 간부가 ‘청와대에서도 광고 게재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며 광고 게재를 만류했다”라고 전했다. 이는 금감원 내 공채 직원들의 움직임을 청와대에서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금감원에서는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번 광고 게재 사건은 그동안 금감원 공채 직원들과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잠재되어왔던 ‘모피아에 대한 비판 의식’이 발현된 사건으로 해석된다. 모피아란 재무부를 뜻하는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재경부 출신 관료를 뜻한다. 이들이 경제계 주요 자리를 독식한 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모습이 폭력 조직 마피아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금감원에는 10여 명의 모피아 출신 인사가 있다. 권혁세 금감원장(전 금융위 부위원장)과 최수현 수석부원장(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도 국장 및 실장급을 비롯한 다양한 직급에 포진해 있다. 이 중 세 명은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다.

금감원 직원들은 태생적으로 이들 모피아의 존재가 반갑지 않다. 금감원 자체가 금융 관료에 집중된 금융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1997년 12월28일 국회에서 통과된 ‘금융감독기구설치법’에 의해 설립되었다. 해당 법의 주요 내용은 모피아에 집중되어 있던 금융 감독 권한을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맡기는 것이었다. 당시 국회에서는 금융감독위원회를 의결 기구로 하고 금융감독원을 집행 기구로 하는 금융 감독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 국회에서 협상을 주도한 강만수 산업은행장(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은 금융감독위원회에 비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별도의 사무 조직을 두게 하는 절충안을 제안해 이를 관철시켰다. 당시 만들어진 금융감독기구설치법 제15조 2항에는 ‘금융감독위원회의 예산·회계 및 의사 관리 기능(비감독 업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무원을 둘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사무 기구를 두되 인원수를 제한하고 비감독 업무만 수행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자정 목소리 내 의미 있어”

그러나 불과 2년 후 상황이 바뀌게 된다. 1999년 4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금융감독기구설치법 제15조 2항을 삭제하고 제15조 1항을 ‘금감위의 조직 및 정원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로 바꿨다. 당시 재경위 소속이었던 정세균 의원은 이를 두고 1999년 4월19일 재경위 회의에서 “15조 2항을 삭제해버리면 사무국이 100~2백명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금감원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라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위 사무처 직원은 설립 당시에는 19명에 불과한 작은 조직이었다. 그러나 제15조 2항이 삭제된 1999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오다 2011년에는 2백38명에 달하는 조직이 되었다. 은행감독과, 증권감독과, 보험감독과 등을 신설하며 업무의 폭도 넓혀나갔다. 이때부터 금감위와 금감원은 업무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특히 금융 및 회계 전문가 출신이 다수인 금감원 내 공채들을 중심으로 불만감이 커져갔다.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금융위로부터의 지시를 수동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금융위는 금감원 공채 및 노조 측에게 모피아 세력으로 여겨진다.

금감원 공채 직원측은 이번 내부 고발성 광고가 내외부의 모피아 세력 때문에 금감원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고 설명한다. 추효현 위원장은 “금융위가 예산권과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금융 감독 기능이 왜곡되고 있다. 게다가 모피아 세력이 원장과 수석부원장 등의 고위 자리까지 장악하고 있어 내부 고발 목소리도 묻힌다. 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금감원의 인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공론화가 필요하다 싶어서 이번 광고를 기획하게 되었다”라고 전했다. 금감원 공채측은 일단 광고 게재를 멈추고 향후 저축은행과 관련한 수사를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백성진 금융소비자협회 사무국장은 “이번 금감원 공채들의 행동은 직원들이 용기를 내 직접 자정의 목소리를 낸 의미 있는 사건이다. 금융 당국이 제대로 된 역할을 찾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감원측에서는 이번 광고 게재를 금감원 노조가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자가 이번 광고 게재 건에 대해 묻자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광고 게재 건은 노조 차원에서 주관한 일이다. 노조와 이야기하라”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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