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교보생명, 경영권 안정은?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2.07.29 23: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회장 권한 위협하는 수준의 지분 확보…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 등 해법 모색 중

 ⓒ 교보생명 제공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59)에게는 여러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우선 생명보험업계의 유일한 오너 최고경영자(CEO)이다. 자신이 대주주이면서 직접 생보업계 ‘빅3’의 한 축을 이끌고 있다.

그는 산부인과 교수 출신이다. 서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병원에서 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했다. 사석에서는 “의학박사이지만 금융 쪽은 아직 박사가 아니다”라며 겸손해한다. 아버지인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뒤를 이어 신회장이 취임한 때가 2000년이니 올해로 13년째이다. 금융계에서 “취임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보험업계 대표 CEO로 자리 잡았다”라는 평가와, “개인 지분이 적어 경영권이 불안하다”라는 해석이 엇갈린다. 신창재호 교보생명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파격…파격… 신창재 회장의 ‘이단아 경영론’

신회장은 지난 5월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고객보장대상’ 시상식에서 흰색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등장했다. 보험설계사 1천여 명 앞에서 개그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 팀과 함께 ‘감사합니다’ 코너에 직접 도전했다. 어색한 율동을 섞어가며 “고객 보장을 가장 잘하고 평생든든 서비스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재무설계사 여러분!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관객들은 열띤 호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교보생명의 고객보장대상 시상식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신회장이 해마다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난타 공연을 직접 선보인 적도 있다. 회사 CI를 바꿀 때는 이경규 가면을 쓰고 연설을 했다. CI만 바꾼다고 회사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직원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3월 말 임원 인사를 발표할 때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직접 호루라기를 분다.

신회장은 최근에는 직원들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오는 9월부터 직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포함해 총 2천명에게 해외여행을 보내주기로 했다. 금융업계에서 우수 직원을 대상으로 포상 여행을 보내주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처럼 전 직원과 가족까지 배려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해외여행에 참여하는 직원에게는 특별 휴가를 이틀씩 준다.

신회장은 자산운용사 CEO들을 호텔로 초대해 접대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지난 5월 템플턴 등 자산운용사 CEO 22명을 만나 “우리 자산을 잘 부탁한다”라며 머리를 숙였다. 큰돈을 맡기는 고객사가 오히려 자산운용사들에게 부탁하는 모양새였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갑을 관계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어서 처음에는 자산운용사 CEO들이 어리둥절해했다. 교보생명 변액연금이 수익률 면에서 최고를 달리는 것도 이런 신회장의 ‘고단수’ 행보와 무관치 않다”라고 귀띔했다.

신회장은 보험업계의 기존 영업 방식을 거부하고 있다. 판매 중심 영업 문화를 유지 서비스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그가 강조하는 평생든든 서비스도 그 일환이다. 설계사들이 보험 가입 고객을 일일이 찾아 보장 내용을 다시 설명하고, 받지 못했던 보험금을 찾아주는 서비스이다.

신회장이 교보생명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이다. 신용호 선대 회장이 장남에게 경영권을 넘긴 것이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것이 이유였다. 2000년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신회장은 밑바닥부터 조직을 흔들기로 결심했다.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을 받지는 않았지만 해마다 실적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판단에서다.

우선 6만여 명에 달했던 설계사를 4만5천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부실한 보험 계약이 지나치게 많다고 보았던 것이다. 25명의 등기이사에게서 일괄 사표를 받은 후 다섯 명만 남겼다. 나머지는 계약직 형태로 고용 조건을 바꿨다. 선대 회장이 내세웠던 대표이사 두 명을 내보낼 때는 “아버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라고 했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변화를 거부하거나 기회를 선점하지 못하면 망하거나 3류로 전락하고 만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내부 개혁에 메스를 댔지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부 일각에서 “신회장이 취임한 뒤 경영진을 너무 자주 교체했고 대규모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 내부 갈등이 심화했다. 영업력도 급속히 와해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잦은 임원 교체 후 항명 파동 겪기도

교보생명은 신회장 취임 이후에도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1980년대 국내 1위였던 회사가 2위 자리마저 대한생명에 내주자 ‘빅3’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터져 나왔다. “산부인과 의사가 회사를 망가뜨리고 있다”라는 소리도 들렸다.

가장 큰 내부 위기는 2006년에 찾아왔다. 임원 20여 명이 집단으로 항명했다.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단체로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금융계에서는 신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금융계 관계자는 “당시 신회장이 사석에서 경영을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신회장의 개혁은 서서히 빛을 냈다.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 회계연도에 3천억원에 가까운 당기순익을 올렸다. 생보업계 1위 기록이다. 총 자산은 2000년 25조원에서 지난해 말 60조원을 돌파했다. 신회장 자신은 2010년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에서 보험업계 CEO로는 유일하게 금융 분야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2008년 창립 50주년을 맞았을 때 100년 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는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2015년까지 총 자산 100조원, 이익 1조원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신회장은 요즘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했다”라고 말했다.

신회장의 최대 고민은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이다. 지인이나 금융 당국과도 이 문제를 여러 번 상의했다고 한다. 신회장의 지분은 현재 33.78%다. 사촌인 신인재씨 등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쳐도 37.3% 선이다. 반면 사모펀드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이를 초과하고 있다. 펀드들이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합 전선을 형성해 제3자에게 지분을 넘길 경우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에는 어피니티, IMM PE, 베어링PE 등 사모펀드 3곳과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 구성된 어피니티컨소시엄이 교보생명 주식 4백92만주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지분 매각 주체인 대우인터내셔널이 9월 이사회를 열어 이번 매각을 확정하면 어피니티측 지분율은 24%가 된다. 교보생명의 2대 주주이자 미국계 펀드인 코세어계로 분류되는 캐나다 연기금(25%)과 비슷한 지분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캐나다 연기금이 1대 주주가 되지는 않았지만 최대 주주인 신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당장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추진되지는 않겠지만 2, 3대 주주들이 모두 사모펀드이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경영권이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검토하는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라는 분석이다. 조정호 메리츠화재 회장은 지난해 지주회사 출범 이전 지분율이 21%에 불과했지만, 현재 지주사를 통한 지분율은 50%를 상회한다. 기업 상장은 또 다른 방법이다. 교보생명을 상장시킨 후 신회장이 매년 받는 배당 등으로 지분을 추가로 취득할 수 있어서다.

신회장이 해외 기업 및 일부 펀드와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점 역시 플러스 요인이다. 2대 주주인 코세어계 펀드와는 수년간에 걸쳐 돈독한 신뢰 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교보생명 지분 2~3%를 확보하고 있는 프랑스 악사와도 선대 회장 때부터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여차하면 ‘SOS’를 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내부 인사의 전언이다.

 

[시사저널 인기기사]

▶ 논란 휩싸인 ‘5억짜리 김연아 동상’

▶ ‘모피아’ 몰아붙이는 금감원의 ‘젊은 반란’

▶ ‘맞팔’ 좀 했다고 검찰 조사 받는 세상

▶ ‘지상에서 부활’ 꿈꾸는 중국 기독교

▶ ‘부실 투자’에 뚫린 향군 빚만 5천억원+α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