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한국화’로 반석 다지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7.2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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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 CEO들의 성공 비결 본사 정책과 현지화 전략 융합이 핵심 전략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과 강성욱 GE코리아 사장(왼쪽부터).
대다수 외국계 기업 CEO들은 운신의 폭이 좁다. 외국의 본사 방침도 따라야 하고, 국내 시장 사정에도 맞춰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단명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10년 이상 CEO 자리를 유지한 경영인들에게는 국내 CEO와 다른 특징이 있다. 본사의 정책과 국내 현지화 전략을 적절하게 융합하는 능력이다.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이사 사장(56)이 대표적이다. 2000년부터 12년째 회사를 맡고 있는 그는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격차를 넓히며 수입 자동차 시장 점유율 24%로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실적을 높이면서 CEO로서 장수한 비결은 국내 투자 전략으로 현지화에 성공한 점이다. 수입 자동차는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가 있어서 홍보만 잘해도 팔린다. 어떻게 보면 자동차 판매 대수만 늘리면 CEO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김사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한두 해 장사할 것이 아닌 이상 투자를 해야 장기전에서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장으로 부임했을 때 토요일마다 매장을 방문하면서 6개월간 만난 고객이 3백50여 명이다. 소비자의 불평을 빼놓지 않고 메모했다. 대부분 불편한 사후 관리(AS)에 대한 지적이었다. 한 소비자로부터는 ‘차 팔 때는 간도 빼줄 것처럼 하지만, 고장 나면 얼굴이 확 바뀐다. 도둑놈들’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투자 확대·독자 경영 등으로 승승장구

현재까지 41개에 달하는 서비스센터를 만들었고, 2012년 말까지 56개로 늘릴 계획이다. 또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국가 공인 자동차 정비 기능장을 35명 보유하고 있는데, 기술 인력도 대폭 늘려 잡았다. 김사장은 최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BMW가 많이 팔리고 우리가 아무리 잘한다고 외쳐도 고객이 알아주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라며 AS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 기술 인력을 전년 대비 20% 증원한 1천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또, AS에 대한 만족도를 검증하기 위해 고객 체험단을 선정해 운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내 완성차업체도 하지 못했던 드라이빙센터 건립을 발표했다. 독일과 미국에만 있는 이 드라이빙센터는 각종 테스트와 함께 스포츠 주행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다. 김사장은 “예산만 5백억원이 드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초기 투자비는 크지만 브랜드 이미지 상승과 고객 증가 효과까지 다 계산한다면 투자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방일석 전 올림푸스한국 사장과 정재희 포드코리아 대표(왼쪽부터). ⓒ 연합뉴스, ⓒ 시사저널 최준필
방일석 전 올림푸스한국 사장(50)은 한 발짝 더 나아가 국내 사업을 독자적으로 진행하기로 유명한 CEO이다. 2000년 한국법인이 설립될 당시, 방사장은 경영 자율성 보장을 조건으로 한국지사 사장을 맡았다. 그는 출범 초기에 “올림푸스한국은 단순히 외국계 기업의 현지법인이 아니다. 한국에서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독립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일명 ‘하이브리드 디지털카메라’를 선보인 일이 대표적인 독자 경영 사례이다. 소형 카메라(콤팩트 카메라)와 대형 카메라(DSRL)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는 소비자가 많은 점을 파악한 방사장은 이 두 카메라의 장점을 딴 하이브리드 디지털카메라를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소형 카메라처럼 가벼워 휴대가 간편하면서도 대형 카메라와 같은 고화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시장에 선보인 것이다.

매출은 꾸준히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전년에 비해 40%나 늘어난 2천억원을 돌파했다. 현지화한 독립 경영이 성과를 낳았다는 것이 방사장의 분석이다. 그는 순익의 4%만 일본 본사로 배당 송금하고, 나머지 96%는 한국에 재투자했다. 번 돈을 고스란히 본사로 보내서는 회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10년에는 창립 10주년을 맞아 서울 강남에 콘서트홀이 완비된 올림푸스타워를 본사 지원 없이 100% 자체 자금으로 지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방사장은 외국인으로 유일하게 일본 본사의 집행임원이 되었다. 한국법인 대표를 넘어 일본 본사의 최고 경영진 20명에 포함된 것이다. 집행임원은 그룹 전체의 정책과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 기구이다. 그러나 지난 6월 방사장은 본사로부터 해임당했고, 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3월 GE코리아는 36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외부에서 CEO를 영입했다. 그가 강성욱 사장(52)이다. 그는 시쳇말로 직업이 CEO이다. 지난 17년 동안 탠덤, 한국컴팩, 한국HP, 시스코코리아에 이어 GE코리아까지 외국계 IT 기업에서만 잔뼈가 굵었다. 내로라하는 외국계 기업에서 그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한국식 영업’의 힘이었다.

그가 한국컴팩 사장으로 있을 때에는 영업사원들에게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투견(핏불테리어)의 기질을 강조했다. 자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저녁 거래처와의 약속을 2~3개씩 소화했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 노트북 대량 납품을 성사시키기 위해 영업사원과 함께, 한 대기업의 구매 담당 임원 집 앞에서 새벽 1시까지 기다린 적도 있다. 강사장을 발견한 그 임원은 깜짝 놀라 집 안으로 데려가 새벽녘까지 같이 술을 마셨고, 강사장은 결국 계약을 성사시켰다. 강사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위기이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이때가 바로 기회라고 느낄 때가 많다.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감을 가지면 큰 힘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영업의 힘에는 ‘곱셈의 법칙’이 녹아 있다. 예를 들어 인력 수준의 평균치를 1로 놓았을 때, 그보다 뛰어난 1.5 수준의 사람이 많을 때는 승수 효과를 내지만, 반대로 평균보다 못한 0.8 수준인 사람은 오히려 많을수록 조직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강사장의 주장이다.

정재희 포드코리아 대표(53)는 2001년 첫 한국인 대표로 선임된 이후 11년째 사령탑을 맡고 있다. 시장 흐름을 잘 읽고 판단하는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부터 포드코리아와 인연을 맺어오면서 오랜 기간 마케팅을 담당해온 덕이다. 그 습관으로 지금도 전략을 짤 때 시장에서 아이디어를 찾는다. 수입 자동차 업계 최초로 홈쇼핑에 자동차를 판매한 것이나 트위터 등을 통한 대규모 소비자 체험 프로그램 진행도 시장의 변화 속에서 찾아낸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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