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효과’ 끝,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
  • 이철희│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
  • 승인 2012.07.3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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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탄력받은 안철수 원장, 남은 카드 별로 없어…박근혜 전 위원장과 양강 구도 이어가는 것이 관건

SBS 에 출연한 안철수 원장(맨 왼쪽). ⓒ SBS 제공

성공이다. 기획이라면 멋지고, 우연이라면 타이밍이 절묘하다. 7월19일 책을 출간하면서 시작된 안철수 원장의 2차 공습은 일단 대성공을 거두었다. 요즘 정치권 용어로 하면 흥행 대박이다. 책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스티브 잡스의 회고록 판매 추세를 넘어서고 있다. <힐링캠프>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대단한 기세이다. 그뿐인가. 안철수 바람은 지지율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리얼미터의 7월24일 조사에 따르면, 대선 다자 구도 지지도 조사 결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하 박근혜 의원)은 32.0%로 전일(34.3%) 대비 2.3%포인트 감소했고, 안철수 원장은 28.2%로 전일(22.7%) 대비 5.5%포인트가 올랐다. 안원장과 박근혜 의원의 격차는 불과 3.8%포인트로 좁혀진 것이다. 문재인 의원은 10.0%로 전일(14.5%) 대비 4.5%포인트나 감소했다.

안원장은 전주 주간 평균 지지율 18.8%에서 9.6%포인트나 상승했고, 박의원은 전주 주간 지지율 37.8%에서 5.8%포인트나 떨어졌다. 문의원은 전주 주간 지지율 17.2%에서 무려 7.2%포인트나 추락했다. 안원장이 박근혜 지지층의 일부, 문재인 지지층의 상당수를 흡수한 것이다. 양자 대결에서도 안원장의 상승세는 뚜렷해 23일 조사에 이어 24일 조사에서도 박근혜 의원을 앞서 나가며 격차를 벌렸다. 안철수 원장은 48.3%로 전일(47.6%) 대비 0.7%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조사되었고, 박의원은 전일(45.6%) 대비 0.4%포인트 감소한 45.2%로 나타나 격차는 3.1%포인트 차로 커졌다. 이 정도이면 전문가의 예상치를 웃도는 것이고,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후보들로서는 가히 공포를 느낄 만하다.

‘안철수 때리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중요

문제는 이런 지지율이 계속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번의 지지율 상승은 안철수의 생각을 담은 책 출간과 지명도 있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힘입은 바 크다. 그동안 노출이 없어 갈증을 느끼던 대중적 욕구에 부응했다는 점에서 효과가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새누리당의 박근혜 의원이 ‘5·16 발언’ 등으로 수세에 몰려 있고, 야당은 야당대로 ‘박지원 파동’ 때문에 미래 지향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참이었던 상황적 조건도 안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런 점에서 기획이든 우연이든 적절한 모습으로 적시에 등장해 적당한 효과를 거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책 출간과 방송 출연 외에 안원장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 북콘서트를 열더라도 그것은 새로울 것이 없는 형식이다. 강연도 마찬가지다.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으나 부담을 크게 느껴 선뜻 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등장처럼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앞으로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지율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저런 이벤트와 메시지를 던지겠지만 이제는 노출 그 자체만으로 득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구체성을 띨수록 지지층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정파적 정렬(artisan sorting)’이다. 이것이 안원장이 넘어야 할 첫 번째 고비가 될 것이다.

이미 안원장에 대한 공세, 이른바 ‘안철수 때리기(bashing)’는 시작되었다. 박근혜 의원 쪽은 처음에는 홍사덕 전 의원을 내세우더니 김종인 전 의원으로 공격수를 바꾸었다. 아무래도 낡은 이미지를 지닌 홍 전 의원보다는 안원장에 대해 잘 알고, 이미지가 좋은 김 전 의원이 나서는 것이 좋겠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허나 으레 때리기가 그렇든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거나, 몽니 부리는 모양새가 되거나, 그런 뉘앙스를 풍길 경우 역효과가 난다. 또 기왕에 형성된 안원장 지지층은 결속시키고, 박의원 지지층은 이완되는 손해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안원장이 ‘안철수 때리기’가 객관적 검증이 아니라 흠집 내기로 읽히도록 하는 ‘콩쥐-팥쥐’ 프레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안원장이 넘어야 할 또 다른 고개가 될 것이다.

차제에 만약 안원장이 박의원이나 그 캠프의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는 선택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조·중·동을 비롯해 보수 언론이 박의원을 적극 엄호하는 가운데 치러지는 전쟁이기 때문에 안원장에게도 상당한 상처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안철수-박근혜 맞대결의 구도가 정착되고, 이 전선에 따라 대선 판도가 형성된다면 안원장에게도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민주당이나 그 당의 후보를 부차적인 차원으로 격하시키면서 어차피 이번 대선은 안철수 대 박근혜의 대결로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박 싸움이 치열해지면 민주당이 독자적 공간을 만들어내기 어려울 것이고, 졸지에 제3자로 전락하게 된다.

민주당 등 야당 지지층 마음 얻는 것도 과제

안원장의 신간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사진은 서울 용산 대교문고 판매대에 진열된 . ⓒ 시사저널 박은숙
과연 이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안원장의 몫이다. 안원장이 하기에 따라 이 전선이 정착·확대될 수도 있고, 단막극으로 끝날 수도 있다. 안원장이 이런 구도를 만들고자 하더라도 난관은 또 있다. 민주당이 박지원 대표에 대한 수사나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국정조사, 내곡동 사저 특검 등의 사안으로 여야 간의 극한 대치 전선을 만드는 쪽으로 국면을 운영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구태의 부담을 무릅쓰고 이 전선에 ‘올인’하면 안원장으로서 운신의 폭이 그리 많지 않다. 낡은 정치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그에 따라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안원장을 통해 풀려고 하는 흐름도 생겨나겠지만 단기간에 안철수 대 박근혜의 구도를 전면화할 수는 없다. 이 또한 안원장이 넘어야 할 언덕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당분간은 안원장이 단기필마인 것이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대선 주자로서의 위력을 보여주면 줄수록 그가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일련의 사람이 곁에 서 주어야 한다. 무릇 ‘사람이 곧 정책’(people are policy)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직 안철수 그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이나 강인철 변호사, 또는 다음의 이재웅 창업자, 금태섭 변호사 등으로는 집권 세력의 면모를 보여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안원장이 지식인이나 시민운동권이 안원장을 공개 지지할 명분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지율이 명분은 아니다. 즉, 안원장이 비록 인기 때문에 기대를 모으고 있기는 하나 진보 진영의 리더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래서는 ‘안철수 대세론’을 만들 수 없다.

안원장에게 가장 큰 과제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지지층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민주당이 안원장 지지층을 끌어안지 않고 이길 수 없듯이 안원장도 마찬가지다. 야당, 특히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흔쾌히 안원장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안원장 지지층과 민주당 지지층 간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당을 지나치게 강박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안원장이 야권의 리더에 걸맞은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생각도 비슷해야 하지만 행동으로, 장수로서의 위용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샤이 남’(shy guy) 안철수가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을 해낸다면 안원장이 제18대 대통령이 될 것이다.

7월19일을 기점으로 18대 대선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이제 등장할 사람은 다 나왔다.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진검 승부이다. 피 튀기는 싸움이 될 것이다. 안원장도 출마 선언을 안 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이 싸움을 피해갈 수는 없다. 지금 만약 뒤로 뺀다면 그것으로 ‘안철수 바람’은 소멸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기호지세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안원장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는 ‘싸워 이기겠다’는 쟁투심일 것이다. 그가 어떤 결정을 하든 그것은 그의 몫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대선이 안철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과연 희극일까, 비극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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