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운명 가르는 ‘알레포 혈투’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8.0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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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드 정권 ‘최후 보루’에서 정부군-반군 간 치열한 전투 계속…정부군의 무차별 학살도 도 넘어

지난 7월29일 시리아의 알레포 인근에서 반군들을 태운 트럭이 이동하고 있다. ⓒ AP 연합

“알레포에 대한 공격은 자신의 관에 못을 박는 짓이다.”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시리아 사태를 풍자한 말이다. 시리아의 양민 학살이 극에 이르렀다고는 하지만, 외국 국가 지도자의 운명을 이런 식으로 비꼰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외교가에서는 시리아 사태가 드디어 전환점에 왔다는 암시로 풀이된다. 아울러 미국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리아의 최대 도시 알레포는 파네타의 파격적 논평을 불러올 정도로 그 전략적 중요성이 큰 곳이다. 터키에 인접한 북방의 고도 알레포(Aleppo)에서는 근 10일째 정부군과 반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반군이 알레포를 장악할 경우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끝장낼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3백20Km 떨어진 알레포는 무역과 상업 중심지로 아사드 정권에 돈과 물자를 제공하는 전략 거점이다.

정확한 전황은 파악하기 힘들어

따라서 이 도시의 함락은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시사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 때문인지 정부군은 탱크, 공격용 헬리콥터, 심지어 전투기까지 동원해 이 도시를 사수하고 있다. 그러나 반군은 이 도시의 도심부에 인접한 지점까지 진격했다고 주장했다. 아사드는 정권에 충성하는 수니족들이 주류를 이루는 인구 2백만의 이 도시를 최후의 보루로 여겨왔다. 이 도시에서는 지금까지의 전투로 수백 명이 넘는 사상자가 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사망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도시를 탈출한 일부 시민들은 정부군의 무차별 학살로 이 도시가 21세기의 인간 도살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17개월째 접어든 시리아의 민주화 봉기로 2만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는 지난 2주 만에 5천명이 늘어났다. 그동안 시리아에서는 시위대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이 계속되어왔으나 알레포에서의 살육은 도를 넘고 있다.    

7월18일 다마스쿠스 도심에 있는 정부 건물을 폭파해 아사드의 측근 요인 세 명을 죽인 반군은 정부군의 강력한 진압 작전에 밀려 일주일 간의 격전 끝에 퇴각한 후 알레포 공격에 나섰다. 다마스쿠스와 알레포는 정부군의 철옹성 같은 방어 속에 온존했으나  반군은 이 두 도시를 아사드 정권의 최후의 요새로 간주하고 필사의 공격을 퍼붓고 있다. 반군은 최근 전투에서 터키 접경의 지방 성도들을 연이어 장악했다. 특히 터키 남부의 요충지 하타이는 반군의 ‘해방구’가 되어 각종 병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도시는 리비아 반군이 제2의 도시 벵가지를 점령함으로써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킨 것처럼 반군에게 전략적 우위를 가져다주는 곳이다. 클린턴 장관은 반군이 주요 도시를 차례차례 점령함으로써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는 ‘안전한 천국’을 만들고 있다며, 시리아 사태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시사했다. 그는 또 정권 붕괴에 대비해 반군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보도들은 반군 소탕에 전투기가 동원되었다고 전했으나 객관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공중에서의 폭격과 기총 소사가 가능하다는 의미인데 이런 반인륜 행위가 자행되었다면 정권이 최후 발악을 하고 있는 증거이다. 반군은 알레포의 인근에 접근했다고 말했다. 정부군은 대규모 병력을 집결한 가운데 거의 모든 화력을 동원해 저항하고 있다. 알레포의 병원들은 환자들로 초만원이다. 정부군은 알레포의 감옥에서 봉기한 죄수들을 진압했다고 반군 소식통들은 전했다. 현재 알레포에 관한 상황은 각종 엇갈린 외신 보도로 진상을 파악하기 힘들다. 시리아 관영 통신은 정부군이 알레포에서 반군에 치명상을 입혔다고 주장했다. 반군은 알레포 인근 터키 접경의 광대한 지역을 장악했다. 이 가운데는 터키로 들어가는 국경 통로가 포함되어 유사시 터키로의 탈출을 보장해준다. 알레포에서는 생필품이 동나고 수도와 전기는 끊겼다. 공항으로 가는 도로에는 인적이 없다. 도로변에는 민간인과 군인의 시체가 방치되어 있다. 반군들은 다마스쿠스에 비해 보급 확보가 쉬운 알레포 점령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군은 이미 14개 지방 성도 중 절반 이상을 장악했고 정부군은 5개 대도시를 간신히 지키고 있다.

아사드의 말로가 임박했다는 징후들 잇따라

시리아 문제로 기자 회견을 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오른쪽). ⓒ AP 연합
알레포에서는 인구의 10%인 20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페네타 장관은 아사드의 최후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그 이후의 사태 수습 계획을 세우고 있다. 2주간의 중동 순방길에 오른 그는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튀니지·이집트·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시리아 과도정부 수립 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과거 이라크 정권 붕괴 당시 군대를 해체함으로서 치안 공백을 초래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사드가 떠나더라도 군과 경찰 병력을 보존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자신의 관에 못질을 하고 있다’는 파네타의 파격적 비유가 암시하듯 아사드의 말로가 임박한 조짐들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아사드의 심복 노릇을 하던 해외 주재 시리아 고위 외교관들의 망명이 이어졌다. 특히 런던 주재 대리 대사의 망명은 그가 아사드와 생사를 같이할 측근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무엇보다 결정적인 사태 발전은 국제 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끝까지 아사드를 두둔하던 러시아의 태도가 변한 점이다. 익명의 러시아 관리들은 아사드 정권을 더 이상 지탱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아사드가 요청할 경우 그에게 망명처를 제공하는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는 망명처 제공설을 부인했으나 이 문제는 국제 여론의 반발을 고려해 은밀히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그동안 시리아에 집착한 이유 가운데는 시리아에 있는 러시아 해군기지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기지는 단순한 군사 거점이 아니라 중동 패권을 겨냥한 교두보이다. 이 기지에는 수천 명의 러시아 군인과 기술자들이  배치되어 시리아 관계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한 지난해 리비아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군사 개입을 비토하지 않은 결정을 매우 후회했다. 이 표결 때문에 카다피 실각 후 리비아로 진출하려던 러시아 회사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러시아는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방국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기본 방침에 따라 시리아의 현상 유지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러시아와 시리아 간 각종 유대가 축소되는 바람에 더는 아사드에 연연할 이유가 없어졌다. 러시아 하원 듀마의 외교위원장 레오니드 칼라슈니코프는 시리아가 중동에서 더 이상 러시아의 거점 역할을 하지 못하는 마당에 기존 정책을 고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 관리들은 시리아 거주 러시아 시민들을 소개시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아사드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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