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도 ‘재범’ 못 막는 성범죄 예방 제도
  • 김지은 인턴기자 ()
  • 승인 2012.08.0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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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면에서 문제 많아…검거된 자 중 절반 가까이 ‘전과자’제도적 해법도 중요하지만 ‘교화’도 뒷받침되어야

지난 7월26일 경남 통영시 인평동의 한 야산에서 여자 초등학생 살해범 김 아무개씨가 구덩이 속으로 시신을 유기하던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성범죄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현재 법무부는 성범죄자가 출소하면 재범을 막기 위해 신상 공개, 전자 발찌 착용, 화학적 거세 등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통영 여자 초등학생 살해 사건의 가해자인 김점덕씨(44)는 어떤 재범 방지 제도에도 해당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다. 김씨는 지난 2005년 60대 노인을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돌멩이로 내리친 뒤 강간상해죄로 4년 실형을 살았다. 화학적 거세는 최근에 시행되었기 때문에 김씨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없었고, 그의 전과 기록 역시 신상 공개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 저지른 범죄라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았다. 전자 발찌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게만 적용되는 탓에 노인을 대상으로 했던 김씨에게는 역시 해당되지 않았다. <시사저널>이 만난 성범죄 예방 전문가들은 성범죄자 재범 방지를 위한 제도가 실효성 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사례에서도 이런 우려들을 엿볼 수 있다. 40대 주부 윤 아무개씨는 어느 날 우편물 하나를 받았다. 이웃집에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윤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두려움에 떠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갑작스레 이사를 갈 수도 없었고,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려고도 했지만 괜히 겁만 먹을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씨는 “걱정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통영 사건으로 인해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의 방문자 수가 반짝 치솟기는 했지만, 이런 신상 공개가 재범 방지를 막는 제도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인 박지선 경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신상 공개는 ‘범죄자 입장에서 받는 압박감’ 효과를 위해 만든 제도이다. 하지만 ‘성범죄를 저지르면 큰일 난다’고 생각될 만큼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하는데 그러한 위력이 없다. 범죄자들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우편 고지를 받은 주변 이웃들만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신상이 공개된 범죄자의 재범률도 매우 높은 편이라 제도의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도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높은 재범률은 경찰청 통계에도 드러난다. 2011년 성범죄로 검거된 2만1백89명 중에서 성범죄 관련 전과가 있는 재범자는 9천1백15명으로 재범률이 45.1%로 절반에 가까웠다(아래 그래프 참조). 해마다 절반에 가까운 성범죄 전과자들이 비슷한 범죄를 또다시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전자 발찌’에도 허점…구조적 예방 모색해야

그나마 가장 효과를 보고 있는 제도는 몸에 직접 부착되어 재범 가능성이 있는 범죄자들을 감시하는 전자 발찌 제도이다. 판사와 변호사로 지내던 동안 수많은 성범죄자를 접했던 오지원 변호사는 “전자 발찌 형만은 제발 내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피고인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성범죄자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감이 크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 또한 기준이 16세 미만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로 제한되어 있다.

이처럼 16세를 기준으로 한 성폭력 처벌의 이중적 적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폭력상담소의 김두나 상담원은 “이러한 차별적 적용이 단순히 사각지대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성인 여성이 당하는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한 일반인들의 비난 여론에 비해 성인 여성이 피해를 당했을 경우에는 다른 편견이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영 사건에서 피의자 김씨는 사실 여부를 떠나 “아이가 먼저 차에 태워달라 했다”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경우가 2009년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에서도 있었다. 피해자였던 군포의 여대생이 강씨의 에쿠스 차량에 동승한 점을 두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교수는 “수원 지역의 경우 교통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시내로 나가는 주민이 태워주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였다. 그런 부분을 의도적으로 노리고 강씨가 범죄를 저지른 것인데, 사람들의 반응이며 댓글들이 여대생을 비난하는 쪽으로 쏠렸다. 성인 여성의 경우 이렇게 비난하는 경향이 매우 심해진다”라고 설명했다.

박지선 교수는 “성범죄자로 구속 수감된 피의자 중에는 본인이 저지른 범죄가 강간이 아니라, 상대방도 좋아했던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물론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교도소에서도 여전히 이런 생각을 하는 범죄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라며, “성범죄의 근본적인 이유가 단순히 우발적인 성 욕구의 발현이라고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박교수는 “화학적 거세는 처벌이라기보다는 치료법에 가깝다. 대상도 16세 미만에게 성범죄를 행한 성도착증 환자로 아주 제한적이고, 정상적인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데는 전혀 방어가 되지 않는 제도이다. 정신 감정 결과 성도착증 판정을 받는 범죄자는 전체 아동 성범죄자 중에서도 불과 5%도 되지 않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성범죄자가 화학적 거세 적용 대상에 해당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김두나 상담원 역시 “성범죄는 단순한 성욕 그 이상의, 권력과 위계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의 일종이다. 우리나라는 특히 위계가 심한 사회 아닌가. 성범죄 현황을 보아도 어른이 아이를, 교수가 제자를, 선배가 후배를 하는 식으로 위에서 아래로의 범죄가 대부분이고 그 반대는 거의 없다. 호르몬 제거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 차원에서 예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도적 해법과 더불어 ‘교화’도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지원 변호사는 “반성의 기미가 있는 전과자들도 제도적으로 격리를 당하면서 한결같이 ‘절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사회에 발을 내딛어야 하는데 낙인이 찍혀버리기 때문이다. 박지선 교수도 “성범죄자도 언젠가는 사회로 돌아올 것이고, 돌아온 그들을 마냥 낙인찍고 벼랑으로 떠밀어버리면 결국 그들에게 남은 옵션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밖에 없다. 감정적 증오심을 달래기 위한 처벌 위주로만 시행되는 제도는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김두나 상담원 역시 “요즘 엄마들만 봐도 내 자식이 피해자가 될까 하는 걱정은 하지만, 가해자가 되지 않게 하는 교육은 전혀 하지 않는다. 성교육 비디오를 보아도 성폭력 피해 대처법만 나오고, 인터넷에는 성범죄자들을 피하고 도망치는 방법에 대한 정보만 범람한다. ‘가해자가 되지 않는 교육’이 항상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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