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빛 보지 못한 적도의 조선인 이야기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08.1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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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 끌려갔다가 전범이 된 젊음들을 위한 진혼곡

적도에 묻히다 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400쪽│1만6천원
지난 8월9일 청와대 대변인은 “올해에는 광복절 사면 계획이 없다”라고 발표했다. 그 배경으로 “광복절 사면은 지난해에도 없었고, 그 전에도 사면권을 과하게 쓰는 것을 지양하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 몇몇에게는 빛을 보게 해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 계산이 얽힌 사면을 하지 않겠다 하더라도, 청와대의 현실이, 제대로 정치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어려웠나 보다.

하기는 광복절이 된 지난 1945년 8월15일, 모두가 해방의 산뜻한 기분을 맞이했을 때 빛을 보기는커녕 머나먼 이국땅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조선인도 많았다. 그들을 찾아내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부부 교수가 있다. 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교수는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 섬으로 파견되었던 조선인 군무원들의 이야기를 추적해 역사 르포르타주 <적도에 묻히다>로 엮었다. 저자들이 발굴해낸 우리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들어보자.

“반만년 역사에 빛이 나련다. 충위의 군병아 돌격을 해라. 피 흘린 선배들의, 분사한 동지들의, 원한을 풀어주자, 창을 겨눠라.”

1944년 12월29일 깊은 밤, 웅아란 산기슭 스모오노 연병장의 취사장에서 신음소리같이 낮은 노래 가락이 은은하게 새어나왔다.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에서 열 명의 조선인 군무원이 기립해 긴장된 표정으로 고려독립청년당 당가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가 3절까지 이어지자 감정이 복받쳐 흐느껴우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막 칼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베어 뚝뚝 떨어지는 생생한 피로 흰 천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난 참이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일본군 소속 조선인 군무원들 중 항일 투쟁을 모색했던 일부였다.  

군무원이란, ‘군인은 아니지만 군에 속해 있는 공무원’으로서 군의 가장 말단에서 군의 임무를 보조하는 존재였다. 일본이 패전한 시점에 조선인 군무원의 수는 육군 7만4백24명, 해군 8만4천4백83명으로 15만여 명에 달했다. 조선말 사용을 금지당하고 이름마저 일본식으로 바꾸어야 했던 식민지 청춘들에게 ‘군무원’ 지원은 ‘병사’로 끌려가느니 차라리 선택해볼 만한 탈출구였다.

그들 중 인도네시아에 파견된 조선인 군무원들은 귀국의 희망을 발견한 순간 전범으로 내몰려야 했다.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과 함께 인도네시아에도 연합군이 상륙했다. 네덜란드와 영국군은 ‘전쟁 범죄에 관한 한 조선인은 일본인으로 취급’한다는 방침을 확정했으며, 조선인 군무원들이 근무했던 포로수용소는 ‘조직적 테러 단체’로 규정되었다. 일본 제국의 전쟁에서 최말단의 첨병 노릇을 했던 조선인들은 곧바로 전범으로 규정되어 재판정에 서야 했다. 네덜란드령 인도로 끌려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선인은 모두 68명(사형 4명), 영국군이 주도한 싱가포르 법정에서의 유죄 판결은 6명(사형 1명)이었다.

전범 용의자로 수감되기 전 극적으로 일본군을 탈주해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투신한 조선인도 있었다. 저자들은 일본에서 이 책이 출간된 1980년 이후 30여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이름을 찾아주려 노력했다. 그 결과 원서에는 없는 부록의 ‘추기’를 한국어판에 추가했다. 저자들은 최소한 7명의 조선인이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려는 또 다른 제국주의 네덜란드와 대항해 싸우다 죽어갔음을 밝혀냈던 것이다. 저자들은 “인종과 민족을 초월해 반제국주의 투쟁을 함께했던 조선인, 일본인, 인도네시아인들의 뜨거운 열정과 해방의 공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라고 반문하면서, “고통이나 슬픔, 억울함이 사라진 한·일 관계가 구축되고 일본이 진실로 20세기의 역사를 반성할 수 있을 때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의 역사는 크나큰 역사적 교훈과 감동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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