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기획하고 현지에서 전시품 골라”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8.12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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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 “전시는 일종의 포장, 관람객이 좀 더 재미 느낄 수 있도록 현대화할 것”

ⓒ 시사저널 전영기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 시설이다. 당연히 소장품의 질과 규모는 물론이고 각종 기획전의 수준, 그곳을 찾아가는 사람의 수도 최고이다. 2005년 10월 용산 시대를 열면서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8월 초 누적 관람객 2천만명 시대를 열었다. 2009년 1천만명 시대를 맞은 이후 3년 만이다. 연간 관람객 숫자가 2010년 3백4만명, 2011년 3백24만명으로 아시아 최고이자 세계 박물관 중 9위에 해당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이끄는 이가 지난 2011년 2월 취임한 김영나 관장이다. 김관장은 취임 초기 두 가지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하나는 초대 국립중앙박물관장(1945~70년)을 지낸 김재원 박사의 딸이라는 점이었고, 둘째는 미국에서 유학한 서양미술사 전공 학자(서울대 교수)라는 점이었다.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새로운 기운을 넣어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도 많았다.

취임 1년 반을 넘긴 김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어떤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을까. 지난 8월8일 오후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프로모터가 낀 상업적인 기획전은 하지 않을 것”

그는 ‘김영나표 국립박물관’의 색깔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여기 와서 느낀 것이 무언가를 확 바꾼다는 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국립박물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기능도 있고, 국립박물관이라는 위상 때문에 더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해외에서는 전통 작품을 모티브로 한 현대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는 기획전이 흔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국립’ 기관이 이런 전시를 하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한다.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미술 시장에서 그림값과 평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구설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생존 작가의 작품을 포함시키는 전시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누구의 작품을 전시한다고 하면 미술 시장에 영향을 미치니까 그런 기획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부나마 시도한 것이 도자기 전시실에 도자기 사진을 많이 찍은 구본창 작가의 도자 사진을 같이 걸어놓은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현대 도자도 같이 전시하고 싶은데 미술 시장에 영향을 주게 되니까…. 이런 일을 결정할 때 나는 학예사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들의 생각을 나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신 그는 기획전의 질을 높이고 전시 방법을 개선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김관장은 보험료와 운송비만 17억원이 들어간 ‘터키 문명전’을 예로 들며 “예전에는 기획사에서 가져오는 전시회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직접 기획하고 현지 박물관을 찾아서 전시품 섭외를 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 터키전도 다섯 번 정도를 학예사들이 직접 찾아가서 전시품을 섭외했다. 앞으로도 그런 전시(프로모터가 낀 상업적인 기획전)는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시아 쪽 소장품도 확대하고 해외 박물관·미술관과의 교류도 늘려”

전시 방법의 개선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1층의 선사 시대 유물실은 전시 방법을 이미 좀 더 현대화했다. 오는 10월 말쯤이면 3층 동쪽 끝에 있는 불교조각실의 전시 방법이 완전히 바뀐다. 네덜란드의 박물관 전시 전문 회사에 의뢰해 불교조각실에 3면으로 나있는 통창에서 쏟아지는 자연광 처리 문제를 포함해 완전히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관장은 “전시는 일종의 포장이다. 관람객이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현대화하려고 한다. 외국에서는 가장 극적이고, 현실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전시 기법을 많이 쓴다. 관람객이 1층만 보고 가는 경향이 많은데 아쉽다. 2, 3층에도 재미있는 전시가 많다”라면서 두루두루 살펴보기를 권했다. 그는 관람객들이 다리가 아플까 봐 전시실 구석구석에 의자도 더 들여놓았다.  

김관장이 긴 안목에서 고민하고 있는 점은 관람객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것인가이다. 관련 전문가를 외국에 많이 보내 경험도 쌓게 하고 이를 통해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 역량을 강화해 국립중앙박물관을 관람객 숫자뿐만 아니라 전시의 질에서도 세계에서 인정받는 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어린이 박물관에 별도의 건물을 마련해 교육 기능을 강화시키는 것도 그가 생각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장기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이다.

소장품을 확대하는 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기획전 중에는 일본이나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의 문화유산을 다룬 기획전도 상당수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인도의 시성이라고 불리는 타고르의 회화전이 3층 동아시아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는 “타고르 집안이 원래 유명한 화가가 많았던 집안이고, 타고르도 아마추어를 넘어서는 그림 솜씨를 가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런 해외 기획전에는 국립박물관 자체 소장품이 출품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아시아 쪽의 문화유산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일본 쪽 작품도 많이 샀고 동남아 국가의 작품, 인도의 불교 조각이나 힌두 조각도 확보했다. 중국 회화 작품도 부족한데 지금은 국제 경매 시장에서 중국 전통 회화 작품의 가격이 너무 올라서 사기 힘들다.” 

내년 이후 김영나 관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전시가 두 개 있다. 하나는 2015년에 열릴 ‘피렌체 르네상스전’과 내년 2월에 열릴 ‘미국 미술 3백년’ 전이다. 특히 미국 미술전은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휴스턴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미국의 대표적인 미술관과 빌려올 작품 수까지 거의 합의가 되었다. “그 세 미술관에 우리의 소장품이 가니까 일종의 교환전이다. 우리 작품은 그곳에서 ‘조선 미술 대전’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에 순회 전시를 갖는다. 미국측에서 성심 성의껏 해줘서 좋은 작품이 온다.” 미국 미술전은 에드워드 호퍼를 빼고 토마스 이킨스나 잭슨 폴락 등 거의 모든 미국 미술계 슈퍼스타의 작품 1백50점 정도가 들어온다. 호퍼의 작품은 그림값이 너무 비싸서 보험료 부담 때문에 빠졌다고 한다.

그는 해외 유수 박물관이나 미술관과의 교류를 늘리는 데에도 열심이다. “해외의 박물관 쪽 전문가들이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렇게 대단한 곳이라는 것을 아직 잘 모른다. 와서 보면 놀란다. 더 알려야 한다.” 해외 교류의 활성화로 지난 8월5일까지 ‘미국, 한국 미술을 만나다’라는 전시회도 열릴 수 있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미국 아홉 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표작 86점이 오랜만에 고국을 찾았다. 이 중에는 고국에 있었다면 문화재로 지정받았을 만한 작품도 몇 점 있었다고 한다. 해외 교류가 활성화되면 우리 문화재가 가장 많이 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내 우리 문화재의 고국 전시도 가능해질까. 그는 “일본에 있는 우리 고미술품은 판도라의 상자이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대부분 일본으로 넘어간 경로가 불법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언급하는 것은 외교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되고 나서 좋았던 일과 어려웠던 일을 물어보았다. “좋았던 것은 서울대 박물관장을 할 때는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해 해보고 싶은 전시를 마음대로 못 해보았는데, 여기 오니까 학예직도 1백60명이나 되고 하고 싶은 만큼 해볼 수 있는 것이 좋다. 어려웠던 점은…. 음…, 나중에 그만두고 나서 이야기하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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