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업계 ‘용쟁호투’ 승부처는 인천공항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8.1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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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신라, 계약 만료 예정인 관광공사 매장 놓고 신경전 전체 매출에 영향 주는 요지라 상대방에게 뺏길 수 없는 상황

 

휴가철을 맞아 인천공항 출국장 내 면세점이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왼쪽은 롯데면세점, 오른쪽은 신라면세점. ⓒ 뉴스뱅크

“신라면세점(호텔신라) 사람들이 최근 인천국제공항에 있는 한국관광공사 면세점을 자주 찾아 상황을 살핀다.” 기자를 만난 한 면세점업계 전문가는 신라면세점 직원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며 이렇게 전했다. 한국관광공사(이하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와 맺은 계약 기간이 2013년 2월 만료된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할 계획(공기업 선진화 정책)이다. 인천공항은 이 매장을 공개 입찰에 붙여 새로운 주인을 찾을 생각이다. 올 8월 말이나 9월 초 공개 입찰 공고가 나오면 10월께 새 사업자가 정해진다. 관광공사는 사실상 면세점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공식화했다. 관광공사 홍보팀 관계자는 “관광공사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면세점을 철수할 수밖에 없고, 재입찰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 매장 규모는 약 2천5백㎡(7백67평)이고, 위치도 공항의 구석진 곳이어서 매출이 썩 좋지는 않다. 그렇지만 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롯데호텔)은 이 매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매장을 손에 넣으면 취급 품목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면세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4대 품목은 화장품·향수·담배·술이다. 신라와 롯데는 공항에서 면세점 사업 계약을 맺을 당시, 신라는 담배와 술을, 롯데는 화장품과 향수를 팔지 않기로 했다. 롯데는 이후 몇몇 면세점(AK면세점과 DFS면세점) 매장을 인수하면서 화장품과 향수를 팔 수 있게 되었다. 신라는 이번 기회에 관광공사 면세점을 낙찰받아 담배와 주류를 판매할 심산이다. 이런 이유로 신라면세점 직원이 관광공사 면세점을 빈번하게 기웃거리는 것이다.

롯데도 이 매장을 신라에게 호락호락 내줄 리 없다. 현재 인천공항 면세점 시장에서 롯데와 신라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50%와 40%이다. 만일 신라가 관광공사 면세점을 품에 안으면 시장 점유율이 엇비슷해진다. 게다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해 루이뷔통 매장 운영권을 따내면서 롯데를 긴장시켰다.

또, 국내에 6개의 매장을 둔 신라나 10개 점포를 운영하는 롯데에게 인천공항 면세점은 각 회사의 매출 1~2위 매장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전체 매출에 영향을 미치므로 신라나 롯데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입지이다. 인천공항은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공항면세점 시장 1위인 요지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관광공사 면세점은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과 롯데의 신동빈 회장이 노리는 물건이다. 신라와 롯데는 제3의 사업자에게 매장을 빼앗기더라도 상대방에게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롯데와 신라가 벌이는 면세점 전쟁이 과열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국산품보다 외국 제품 판매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외국 제품 우대한다는 비난 똑같이 받아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면세점 사업 포럼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국내 면세점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신라와 롯데가 파는 제품의 91%는 외국 제품이고, 국산품은 9%이다. 오현재 관광공사 노조위원장은 “인천공항의 롯데와 신라가 파는 제품에서 국산품 비율은 각각 24%와 16%이다. 외국인이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무르는 공항에 국산품이 거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관광공사는 44%의 국산품 판매율을 유지하고 있다. 재벌의 면세 시장 독식을 막고, 국산품 판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관광공사 면세점을 국산품 전문 매장으로 유지해야 한다. 관광공사 면세점이 기업의 손에 들어가면 재벌가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신라와 롯데는 올 상반기 매출이 역대 최고치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국산품을 외면하고 외국 제품을 우대하는 행태가 깔려 있었다. 지난 4월 면세점들이 국내 납품업체에 과도한 판매 수수료를 부과해온 사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결과로 드러났다. 판매 수수료는 55%로, 32%인 백화점보다 높았다. 반대로 외국 업체에는 수수료를 우대해주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 또 2010년 4조2천억원 규모였던 면세 시장에서 3조8천억원 정도가 외국 제품을 팔아 번 돈인데, 이 가운데 절반인 1조9천억원이 외국 제품 수입 대금으로 빠져나갔다.

각각 세계 3위와 5위권 진입 노려

이에 따라 관세청은 국산 제품 판매장의 면적을 매장 면적의 40% 또는 8백25㎡(2백50평) 이상 설치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공항 면세점은 제외되었다. 박상덕 관세청 수출입물류과 사무관은 “공항 면세점의 국산품 판매율은 도심 면세점보다 높다. 도심 면세점은 자기 건물이지만, 공항 면세점은 인천공항에 임대료를 내고 있기 때문에 제외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회 문방위 소속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관광공사는 40% 이상 국산품을 파는데, 신라와 롯데는 평균 20%에도 못 미친다. 관광공사 면세점이 철수한 자리에서 대기업들은 수익성 좋은 외국 제품에 비중을 두고 장사할 텐데, 국내 중소 납품업체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라고 지적했다.

신라와 롯데가 외국 제품에 의존하는 이유는 이율이 높기 때문인데, 인천공항의 높은 임대료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지난 7월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인천공항의 상업 시설 임대료는 ㎡당 3천8백만원으로 서울 명동의 네 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공항의 지난해 총 수익 1조4천억원 가운데 60%에 해당하는 9천6백억원이 상업 시설 임대료 수익이다. 부동산 임대사업자라는 조롱이 나오는 배경이다. 인천공항 홍보팀 관계자는 “공사가 사기업에 어떤 물건을 팔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 공사는 기업에 매장을 임대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신라와 롯데는 올해 각각 2조원과 3조원의 면세점 매출을 달성할 전망이다. 세계 면세점업계 5위권 진입을 노리는 신라와 3위권 목표를 둔 롯데의 면세점 전쟁은 한여름 밤의 열기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 열기에 국산품은 허덕일 것으로 보이지만, 관세청과 인천공항 등은 뒷짐만 지고 있다.


롯데·신라 면세점의 해외 시장 경쟁 상황은? 

지난 2009년 롯데는 AK면세점을 인수했고, 신라는 2010년 명품 루이뷔통을 유치했다. 그때마다 양 사는 법적 소송까지 벌였고 각각 1승 1패를 기록했다. 롯데와 신라는 올해 외국으로 전장을 옮겼다.

롯데는 지난 1월 연간 1천만명이 이용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자카르타 공항)에 9백㎡(약 2백70평) 규모의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했다. 화장품·주류·담배·향수 등 네 가지를 포함한 모든 품목을 취급할 수 있다. 6월에는 연간 4천7백만명이 이용하는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패션 매장 운영자로 선정되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2018년까지 롯데면세점 매출의 30~40%를 외국 매장에서 창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신라도 지난 8월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의 면세점 운영권을 따냈다. 올해 12월부터 3년 동안 패션 매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신라면세점의 첫 해외 진출이다. 동남아 면세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만큼 앞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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