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신당권파 창당 로드맵 꺼냈다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2.08.1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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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 몰린 유시민·심상정, “돌파구 찾자” 의기투합 부담 느끼던 강기갑 대표, 두 사람 뜻 받아들여 지체없이 공식화

통합 진보당 심상정 전 원내대표(가운데)가 유시민 전 공동대표(오른쪽 아래) 등과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시민 전 대표와 심상정 의원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거죠. 신당을 만들어 이를 성공시킨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거물’로서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난다고 봐야죠. 물론 능력 있는 국회의원은 될 수 있을 테고 또 나름으로 영향력 있는 뉴스메이커는 되겠지만요.”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통합진보당 신당권파가 ‘대중적 진보 정당’을 명분으로 신당 창당에 부쩍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것을 두고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인 두 사람이 신당을 통해 정치적 활로를 찾자는 데 의기투합했고, 이에 따라 당초 예상보다 신당 창당 일정이 빨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신당권파는 신당 창당 일정을 대폭 앞당겼다. 강기갑 대표는 8월6일 기자회견에서 창당 일정을 묻는 질문에 “12월 대선 전에 창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라는 다소 어정쩡한 입장이었지만, 이튿날인 7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는 “9월 안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새로운 대중적 진보 정당 건설을 마무리하겠다”라고 못 박았다. 6일 강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신당권파 내에서 창당 방침과 일정이 좀 더 분명하게 확정되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한 신당권파 당직자는 “기자회견을 할 때까지도 강대표는 통합진보당을 깨고 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굉장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지만, 6일 밤 유시민 전 대표와 심상정 의원을 만난 뒤 입장을 분명하게 정리했다”라고 전했다. 유시민·심상정 두 사람이 강대표를 적극 설득해 신당 창당에 대한 로드맵을 6일 밤에 최종적으로 확정했고, 7일 인터뷰를 통해 강대표가 이를 공식화했다는 얘기이다.

9월 말 창당 완료해 대선 후보 선출 ‘밑그림’

지난 7월9일 19대 국회 개원 후 첫 본회의에 참석한 통합진보당의 이석기·김미희·김재연 의원(오른쪽부터). ⓒ 시사저널 이종현
실제로 신당권파는 의원총회에서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된 뒤 현재의 통합진보당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데에 공감대를 이루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는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막연히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유시민 전 대표나 심상정·노회찬 의원 등은 탈당 전력 때문에, 강기갑 대표는 구당권파와 기층 조직이 일부 겹치는 문제 때문에 쉽사리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신당 창당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국민참여당계를 중심으로 당원들의 탈당 러시가 계속되면서 신당권파의 내부 동력은 갈수록 소진되었고, 민주당이 ‘야권 연대 불가’를 선언함으로써 12월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미아’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게다가 구당권파는 연일 통합과 화합을 외치고 나섰다. 참여당계의 강동원 의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단결하고 화합하자는 구당권파의 몰염치한 주장이 오히려 주저하던 사람들의 등을 떠민 꼴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참여당계, 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 구(舊)민노당 내 인천연합 등 신당권파 3개 정파는 지난 8월5일 실무회의, 6일 강대표의 기자회견, 7일 전·현직 지도부 및 현역 의원 연석회의 등을 잇달아 열고 창당 방침과 함께 개괄적인 일정까지 확정했다.

신당권파의 창당 로드맵은 ‘당내 진보 혁신 블럭 형성?당 안팎의 인사들이 참여하는 신당 추진체 구성?9월 말 창당 완료’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통합진보당 해산 후 재창당을 최선으로 여기고 있지만, ‘합의 이혼’ 가능성이 크지 않은 만큼 신당 추진체가 어느 정도 몸집을 불리는 시점에 집단으로 탈당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 경우 비례대표 의원들은 통합진보당에 남아 ‘당내 당’ 역할을 하게 될 공산이 크다. 신당의 목표는 통합진보당 대신 진보 진영의 새 대표 선수가 되는 것, 즉 통합진보당의 경쟁자가 아니라 대체제이다. 그리고 진보 진영의 대선 후보를 내세워 대선 정국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이같은 밑그림은 유시민 전 대표가 그리고 있다. 여기에 심상정 의원이 함께 다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당권파의 한 관계자는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이 부결된 이후 유 전 대표와 심의원은 거의 매일 직접 만나거나 장시간 통화하며 의견을 교환했다”라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유 전 대표는 9월 말 창당 이후 자체 대선 후보 선출까지를 포함한 큰 그림을 제시했고, 심의원은 민주노총의 지지를 비롯해 신당을 본 궤도에 올려놓을 몇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이 관계자는 “두 사람의 계획이 조정되고 조율되면서 창당 로드맵이 확정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대선 국면에서 적극적 역할 맡겠다는 복안

신당권파의 창당 로드맵은 단순히 신당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대선 국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유 전 대표의 한 측근은 “9월 말까지 창당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10월 중에라도 대선 후보 경선을 진행하겠다는 의미이다”라고 말했다. 심의원측도 “현재의 통합진보당과 다른 대중적 진보 정당을 만들게 되면 당연히 자체 대선 후보를 내고 야권 연대에도 적극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어차피 구당권파와는 갈라서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를 계속하려면 신당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기왕이면 최대한 앞당겨서 대선에서의 일정한 역할과 정권 교체 이후에 대한 준비까지도 시작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구당권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만 한편에서는 진보 정치에 대한 갈증이 여전하고, 민주당에서도 신당과는 야권 연대가 가능하다는 신호가 나온 것도 한몫했다.

신당이 예정대로 만들어질 경우 당권은 강기갑 대표와 함께 외부 인사 한 명이 공동대표를 맡는 방안이 유력하다. 유시민 전 대표와 심상정 의원은 공히 대선 후보 경선 참여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신당권파 내부에서는 유 전 대표가 경선보다는 야권 연대 논의에 주력하면서 차기 정부에서 일정한 역할을 도모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결국 두 사람이 서로의 능력과 역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신당 창당에 나섰고, 이를 통해 각자가 상정한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고립 위기’ 구당권파, 대중적 인지도 있는 이정희 전 대표 다시 내세울 듯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구당권파에는 비상이 걸렸다. 겉으로는 “지난 10년간 보수 진영의 공세에 맞서 온몸을 내던지며 지켜온 당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자는 주장에 동의할 당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며 신당권파의 신당 창당 움직임을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고 정치적으로도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다. 구당권파가 8월9일 ‘당 사수를 위한 당원 비상회의’를 결성하면서 내부 전열 정비에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다.

구당권파는 이정희 전 대표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신당권파가 조직적으로 당 해산을 요구하며 당원들에 대한 설득 작업을 시작한 만큼 일정한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는 이 전 대표가 구심력을 발휘해야 당원들의 동요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당권파의 핵심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공식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백의종군 형식으로 사실상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봐도 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당권파 입장에서는 별다른 묘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 여론이 악화해 있는 데다, 현재대로라면 12월 대선에서 존재감을 인정받기도 어렵다. 그나마 원내 3당의 지위는 유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권파 비례대표 의원들이 ‘당내 당’을 꾸리게 되면 원내 응집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구당권파와 손잡은 울산연합 핵심 관계자는 “통합진보당이 살아나려면 어떤 식으로든 이석기·김재연 의원 문제를 매듭지어야 할 텐데 답답하다”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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