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눈물
  • 김재태 편집부국장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2.08.12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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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에 이처럼 뜨겁고 긴 열대야의 날들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혹독한 무더위와 함께 찾아온, 생애에 이처럼 뜨겁고 가슴 벅찬 열기와 함성이 있었을까 싶었던 올림픽의 나날이었습니다. 온몸을 던져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쳐준 선수들이 있어 우리의 여름은 행복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단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당초 기대한 ‘10-10(금메달 10개-종합 순위 10위권 내 진입)’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선수단이 28년 만에 최소 규모로 꾸려졌음에도 메달을 획득한 종목 또한 폭이 넓어졌습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한데 어울려 기량을 겨루는 올림픽은 두말할 나위 없는 지구촌의 축제입니다. 인류가 화합하는 데 스포츠만큼 훌륭한 매개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림픽의 열광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들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오심픽’이라는 말에 함축된 오심의 오점이 대표적입니다. 엿가락처럼 늘어난 1초 때문에 지난 4년의 집념과 열정을 약탈당한 신아람의 눈물은 올림픽이 끝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것도 시간의 표준이 되는 나라 영국에서 일어난 ‘시간의 굴욕’입니다. 그 밖에도 선수들의 희망을 짓밟았던 오심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데도 오심이 오히려 갈수록 늘어나는 이면에는 올림픽 정신의 변질이 있습니다. 올림픽이 강대국 간 자존심 대결의 무대로 왜곡되고, 권력과 자본의 외압이 지속되는 한 이같은 오심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올림픽의 진정성을 괴롭힐 것입니다. 신아람의 눈물은 다름 아닌 스포츠의 눈물입니다.

 어차피 순위를 가려야 하는 스포츠는 무한 경쟁일 수밖에 없습니다. ‘1등만 기억하는’ 경쟁 체제의 가장 확실한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스포츠에 아낌없이 열광하는 것은 그 경쟁이 공정하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열심히 준비한 사람은 누구나 차별 없이 온당한 대가를 받아야 진정한 스포츠입니다. 지금처럼 곳곳이 혼탁해져 있는 세상에서 스포츠마저 ‘공정’을 잃어버린다면 우리의 열광은 갈 곳을 잃은 채 지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스포츠의 공정을 바로 세우려면 룰이 정확하게 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관객의 눈 또한 공평무사해야 합니다. 승자와 패자의 기쁨과 슬픔 모두에 마음을 기울여주어야 합니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에도 큰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사격 2관왕을 차지한 진종오 선수는 귀국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뿐만 아니라 은메달, 동메달 선수도 챙겨주십시오.” 올림픽 전부터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었던 복싱의 신종훈 선수는 16강전에서 탈락한 뒤 “제가 죄 지은 사람 같아요. 사람이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건데…. 댓글을 보니 너무 심하더라고요. 그분들이 과연 제가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지 아시는지…. 얼마나 하루하루 긴장하고 피를 말렸는지를 아시는지…”라고 말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페어플레이로 경쟁한 스포츠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숭고한 땀의 기억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올림픽은 끝났습니다. ‘공정·공평’을 향해 부릅떴던 눈들이 다시 사회로 돌려져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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