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칠 줄 모르는 ‘탈세의 진화’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8.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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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제대로 내면 바보?

국가 경제 흐름을 해치는 세금 탈루의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면서 ‘탈세와의 전쟁’이 점점 첨예해지고 있다.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전문직을 가릴 것 없이 ‘탈세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세금 빼먹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백화점업계에서는 현금 결제를 앞세운 신종 탈세 수법도 등장했다. 탈세는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떻게 적발되는지를 집중 추적했다.

ⓒ 일러스트 권오환

 ‘세금을 걷는 관리’를 뜻하는 ‘세리(稅吏)’는 성경에서도 창녀나 부랑자와 같이 천한 직종으로 여겨졌다. 세금 징수는 과거나 지금이나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다.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세금을 일종의 손실로 보고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하는 세금 줄이기는 ‘절세’라고 한다. 주로 감면이나 공제 혜택을 이용한다. 반면, 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금을 줄이려는 시도는 ‘탈세’라고 한다. 탈세는 자영업자, 중소기업, 대기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업종에서 일어나고 있다. 납세자들과 국세청은 박테리아와 백신처럼 서로 진화를 거듭하며 탈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치과 전문의 김 아무개씨(42)는 수술비를 현금으로 지불하는 환자에게는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그렇게 얻는 현금 수입은 모두 직원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했다. 국세청에는 현금 수입을 누락해 소득을 신고했다. 김씨는 세무조사에 적발되어 관련 세금 20억원을 추징당했다. 김씨의 사례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탈세 수법이다. 고객에게 현금 결제를 유도해 이를 직원 명의의 차명 계좌를 통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주로 치과나 성형외과에서 횡행하고 있다.

유독 치과와 성형외과의 탈세가 많은 이유는 비(非)보험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시술을 현금으로 결제하면 추적이 힘들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수도권에 있는 한 예식장은 비용을 현금으로 결제하는 고객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했다. 국세청에는 현금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관할 우체국을 통해 예식장으로 전해지는 축전의 개수와 실제 결혼식 수의 차이가 큰 점을 이상하게 여긴 한 국세청 직원에게 덜미를 잡혔다.

치과·성형외과도 ‘현금 우대’로 유인

이현동 국세청장이 지난 6월25일 열린 ‘2012 국세 행정 포럼’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에는 전문직 자영업자들에게 과세 역량이 집중된 틈을 노려 신종 탈세도 일어나고 있다. ‘백화점 현금 결제 탈세’이다. 백화점 매장은 크게 임대 매장과 수수료 매장으로 나뉜다. 임대 매장은 임대보증금을 내고 영업한다. 수수료 매장은 매출의 일정 비율을 백화점측에 지불한다.

일부 수수료 매장에서 고객이 현금으로 결제하면 일정 액수를 할인해주는 거래를 하고 있다. 수수료 매장에서 현금 결제 방식으로 할인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이 아무개씨는 “현금으로 결제하면 일정 금액을 할인해준다. 손님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좋고, 매장 주인은 해당 소득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세금과 백화점에 지불할 수수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자영업자 탈세에는 일종의 전제 조건이 있다. 국세청에서 고소득 자영업자 조사 업무를 맡고 있는 김 아무개씨는 “자영업자 탈세는 현금 결제가 이뤄져야 가능한데 현금으로 결제하는 것이 소비자와 영업자 모두 유리한 경우 탈세가 일어나기 쉽다”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성형외과 현금 결제의 경우 환자는 시술 결제 이력을 남기지 않을 수 있고, 의사는 소득을 누락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숨어 있다. 수수료 매장도 현금 결제가 손님과 매장 주인 모두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지난해 소득 적축률이 37.5%로 조사되었다. 소득 적축률은 실제 소득 중 신고를 누락한 소득의 비율을 뜻한다. 50% 가까이 육박하던 5년 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이다.

기업이 행하는 탈세 방식은 자영업자보다 규모가 크고 복잡하다. 가장 만연하는 탈세는 접대비 성격의 경비를 다른 계정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세법상 접대비에는 경비 처리를 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기업 규모에 따라 수입 금액의 0.03~0.2%까지 쓸 수 있다. 그 이상 사용하는 금액은 세무조사 때 지적받게 된다. 이 때문에 접대비를 많이 사용해야 하는 업종에서는 일종의 ‘꼼수’를 쓰고 있다. 접대비를 판매촉진비 등 다른 명목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접대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제약업계가 가장 심하다. 국내 한 제약업체의 영업 직종에 종사했던 최 아무개씨는 “제약 영업을 하면서 회사에서 지급하는 법인카드로만 접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업 직원에게 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지급되는 ‘일비’도 접대에 쓰이는 경우가 흔하다. 욕심 있는 영업사원은 월급이나 인센티브로 받는 개인 돈도 영업비 및 접대비로 사용한다”라고 전했다. 국내 굴지의 회계법인 소속 윤 아무개 이사는 “판촉비·광고비 등 다양한 명목으로 지급되는 돈도 알고 보면 접대비인 경우가 많다. 아예 급여 형식으로 주기도 한다. 특히 제약회사는 세무조사를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안 걸리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런 것들이 횡행한다”라고 전했다.

대기업 법인세 탈루는 실익도 적고 쉽지 않아

한 호텔에서 국세청 직원들이 압수한 세무조사 자료들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중소기업과 달리 대기업은 법인세 탈루가 쉽지 않다. 법인세 탈세로 얻는 실익이 적어 탈루할 만한 유인이 없다. 기업 회계 감사를 맡고 있는 윤이사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대기업 입장에서 법인세를 탈루한다는 것은 위험성만 크고 실익은 적은 무의미한 행동이다. 분식회계를 해서 크게 ‘한탕’ 하지 않는 이상 법인세 탈루로 이득을 보는 수준은 미미하다”라고 전했다.

대기업의 주된 탈세 관심사는 상속세와 증여세에 집중되어 있다. 대기업 오너가 증여세 탈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내야 할 상속세가 천문학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증여세는 금액이 클수록 커지는 누진세에 해당한다. 대기업 오너들은 대부분 재산이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에 달한다. 재산에 비례해 증여세도 엄청나다. 예를 들어 오너가 1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한다면 정상적으로 내야 할 증여세는 약 4천억원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오너 일가 재산 승계는 주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재산의 90% 이상이 주식이기 때문이다. 주식은 현금과 달리 가격이 일정하지 않다. 회사 가치에 따라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상속이나 증여를 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내려갔을 때 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낮추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상장 기업의 주가는 시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조정이 어렵지만 비상장 기업은 가능하다. 비상장 기업 주식은 과거 3년 내 손익과 자산을 통해 주식 가치를 평가한다. 윤이사는 “인위적으로 3년간 비상장 기업의 이익을 낮게 관리해 주식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물증이 없고 심증만 있어, 관계 당국에서도 잡아내기 힘들다”라고 전했다.

회계법인과 공조해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법도 행해진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김승연 회장은 한화S&C의 경영권을 세 아들에게 승계하기 위해 주가를 낮췄다는 혐의를 받았다. 한화S&C 주식의 가격은 주당 22만원대에 이르렀으나 회계사와 공모해 주당 가치가 4천6백14원이 나오도록 가치 평가 보고서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 아무개씨는 주당 5천100원에 한화S&C 주식을 매수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형사증거법에서 요구하는 유죄를 위한 엄격한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윤리적으로 비난할 소지는 있다’고 판단했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도 계속돼

주식 가치를 낮추는 방법은 기업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쓰기 힘들다. 오너 일가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세간의 관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감 몰아주기’ 방식이 쓰이기도 한다. 그룹의 일거리를 몰아줌으로써 자식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이익이 나도록 하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에버랜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25%가량의 지분을 갖고 있다. 에버랜드의 주요 매출은 삼성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롯데후레쉬델리카는 지난해 총매출의 90%가량을 롯데 계열사 간 거래로 냈다. 신격호 롯데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씨와 셋째 부인의 딸 신유미씨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단순히 대기업 오너 일가가 주주로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감을 몰아주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세무 당국의 시각은 다르다. 특히 ‘현대글로비스 사태’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이 주주로 있는 법인 간 거래가 일정 비율을 초과하면 이에 대해 과세를 하는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이 시행되었다. 특정 기업 매출 중 특수관계자인 법인과의 거래 비율이 30% 이상을 초과할 경우 대상이 된다. 이는 곧 친족 기업 간 거래에서 생기는 이익을 증여로 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7월 새누리당이 제출한 ‘경제 민주화 2호 법안’ 또한 재벌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기업의 탈세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중 과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 이사는 “원래 기업이 이익을 내면 주식 가치가 계속 커지게 되고 언젠가는 과세가 되는데, 그 외에 늘어나고 있는 과정에도 과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중 과세의 성격도 있다. 또, 엄밀히 말하면 법인 간 거래인데 주주에게 과세를 한다는 점도 생각해볼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최근에는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세율이 적게 적용되는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금을 회피하는 세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조세피난처는 법인 소득의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낮은 세율을 부여하는 지역을 말한다. 중견 기업을 운영하는 홍 아무개씨는 스위스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국내 기업에 출자한 후 배당 소득 71억원과 주식 매각 양도 대금 2백83억원을 챙겼다. 그리고 이 금액을 모두 조세피난처에 개설한 자신의 계좌로 이체해 세금을 탈루했다. 홍씨는 결국 소득세 1백33억원을 추징당하고, 해외 금융 계좌 미신고에 따른 과태료를 냈다.

해운회사를 운영하던 최 아무개씨는 조세피난처 라이베리아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이후 선박 운영 수익 등 1천7백억원을 스위스와 홍콩의 차명 계좌에 은닉했다. 최씨는 사망 직전 은닉 자금을 인출해 상속인에게 송금하거나 자금 사용처를 불분명하게 하며 마치 상속인에게 몰려줄 재산이 없는 것처럼 위장했다. 그러나 결국 국세청에 덜미를 잡혀 1천5백15억원을 추징당했다.

대기업들도 조세피난처 곳곳에 법인을 두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국내 30대 대기업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해외 법인이 42개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해서 이것이 곧 탈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세청은 중견 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의 역외 세금 탈루 가능성에도 관심을 갖고 역량을 쏟고 있다. 올 2월에는 국세청 국제조사 인력 7백명 중 외국 회계법인 연수 등을 마친 정예 요원 100명을 선발해 대기업 조사에 투입했다. 대기업의 국외 발생 소득의 신고 누락 여부, 국내 소득의 변칙적인 국외 이전 혐의 등을 조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국세청이 지난해 초부터 이같은 역외 탈세와의 전쟁을 펼친 결과 올해 상반기까지 1조4천억원의 탈루 세금을 추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조직적이고 비밀리에 일어나는 탈세는 도대체 어떻게 적발되는 것일까? 국세청에서 20여 년간 조사 업무 등을 수행하다 나와 세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한 인사는 세금 탈루 적발은 주로 내부 고발자에 의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조사를 수행했던 대다수의 경우가 내부 고발에 의해 정보를 얻은 것이다. 가끔 내게 세금 탈루와 관련한 문의를 하는 고객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지금 당신과 형·동생 하던 직원이 언젠가 이 문제로 당신을 신고할 날이 오게 되니 자중하라’고 경고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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