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힘으로 뻗어가는 ‘명문 인맥’
  • 이춘삼│편집위원 ()
  • 승인 2012.08.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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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 인맥 지도 | 용산고

용산고등학교 ⓒ 시사저널 최준필

농구 선수 허재(현 전주 KCC이지스 감독)는 현역 시절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질풍 같은 기세에 상대는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는 속설도 깼다. “스타는 지도자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말을 비웃듯 자신이 맡은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런데다 6척 장신의 두 아들도 뛰어난 기량을 뽐내는 농구 선수이다. ‘축복받은 농구 DNA’를 가진 가족은 허재 감독과 허웅(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 1학년), 허훈(용산고 2년) 3부자이다. 아버지와 아들 둘은 모두 용산고 동문이다.

맏아들은 용산고 시절 이미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를 지냈고, 둘째는 “전성기 시절 아빠를 빼닮았다”라는 말을 듣고 있다. 허훈은 올해 남자 고등부 MVP의 영예를 안았다. 아버지는 중앙대, 장남은 연세대인 터에 차남을 뺏어가려는 대학들의 물밑 경쟁이 벌써부터 치열하다. 이 가족은 용산고와 가까운 후암동에서 살고 있다.

용산고는 전통적으로 농구가 강한 학교이다. 전국대회에서 4관왕, 22연승 등의 화려한 전적을 세운 기록도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전국 최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용산고는 고교 평준화 이전 서울의 ‘5대 공립(고등학교)’ 중 하나로 꼽힌 학교이다. 용산고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인 1917년 4월 설립된 5년제 용산공립중학교로부터 비롯된다. 당시 용산중에는 서울고의 전신인 경성중학교처럼 일본인 학생들이 주로 다녔고, 한국인 학생들은 극소수였다. 인근 후암동이 일본인들이 자리 잡은 주요 거류지였기 때문이었다.

참여정부 때 이해찬 총리 등 전성기 이뤄

광복 후 일인들이 떠난 후 1946년 9월9일, 과거와 단절한 6년제 공립 용산중학교로 새롭게 출발했다. 1951년 9월 학제 개편에 따라 용산고와 용산중으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다. 올해 63회 졸업생을 배출하며 4만여 동문 가족을 아우르게 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해 10월 용산의 학우 100여 명이 학도병으로 참전했고, 11월 평남 덕천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50여 명이 전사한 뼈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용산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가장 주목받는 고등학교로 떠올랐다. 노대통령의 임기인 2003년 2월~2008년 2월 가운데 중반부인 2004년 6월~2006년 3월에 걸쳐 2년 가까이 이해찬 현 민주통합당 대표가 총리직을 수행했다. 그는 ‘실세 총리’ 라는 별명을 들으며 역대 총리 중 드물게 총리로서의 권한을 행사했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재임 기간이 이 전 총리와 겹치는 시기가 있어서 집권 여당 의장과 ‘실세 총리’가 같은 고교 동문으로서 머리를 맞대었던 것이다.

같은 시기 이종석 세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과 통일부장관의 중책을 맡아 외교·안보 분야를 총괄 지휘했고, 육군 중장 출신인 권진호 전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과 호흡을 맞췄다.

그 밖에 김용덕 전 금감위원장, 권오승 전 공정거래위원장, 이택순 전 경찰청장이 주요직에 포진해 이 전 총리를 정점으로 한 용산고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했다.

용산고 출신 현직 국회의원으로는 이이재 의원(새누리당·동해 삼척)이 있고 동문 중 장관을 지낸 인물로 박긍식 한국과학문화연구원 원장(전 과학기술처장관), 최낙정 해양문화재단 이사장(전 해양수산부장관), 허재영 국토정책연구원 이사장(전 건설부장관)이 있다. 최낙정 이사장은 행시에 합격해 해운항만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래 해항청과 해양수산부를 잠시도 떠나지 않은 ‘한 우물 파기’ 관료였다.

용산고 출신들이 여의도 증권가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흥은행의 마지막 은행장인 최동수 한화증권 고문을 필두로, 증권업협회장을 연임한 바 있는 황건호 금융투자협회 회장이 있다. 증권업협회장의 경우 배창모 전 회장도 있다.

전·현직 증권업계 최고경영자(CEO)들도 두루 포진해 있다. 특히 황건호 회장과 같은 졸업 회수인 20회부터 25회 사이에 전·현직 증권업계 CEO들이 눈에 띈다. 유흥수 LIG투자증권 사장은 황회장과 같은 20회이고, 정회동 솔로몬투자증권 사장은 이들보다 5년 후배이다. 김성태 전 대우증권 사장과 김우평 SK증권 이사회 의장(전 SK증권 사장)도 각각 21회와 22회 졸업생으로 20회 이후 기수에서 특히 증권업계 CEO가 많이 배출되었다. 용산고 출신 증권인들은 정기 모임을 가질 정도로 교류가 활발하다.

유창무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이장훈 전 한국신용정보 사장, 이헌출 전 LG카드 사장도 용산고 출신이다.

재계에서도 용산고 출신들은 두드러진다. 자택이 서울 청운동이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차남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3남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 3부자가 집에서 가까운 경복고를 다닌 데 반해, 정주영 회장의 동생들 집안에는 용산고 출신이 많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용산고-고려대 경영학과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고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외아들이다.

정회장은 1988년 현대자동차에 대리로 입사해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 대표이사 부회장이던 1998년까지 자동차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듬해인 1999년 정세영 당시 현대자동차 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일터를 옮겼고, 그해 8월 현대산업개발을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자동차 쪽에 몸담은 경력은 만 11년, 건설 쪽으로 옮겨온 지는 13년째가 된다.

정회장에게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브랜드 ‘아이파크’는 여러 모로 각별하다. ‘아이파크’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2001년 3월. 회장 취임 후 그가 가장 추진력 있게 밀어붙인 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점이 더 뿌듯한 일이다.

1976년 3월 설립된 주택건설 전문 업체 한국도시개발과 1977년 10월 설립된 국내외 토목·플랜트 건설업체 한라건설이 1986년 11월 합병해 현대산업개발로 탄생했다. 재계에서는 정세영, 정몽규 부자가 경영 일선에 나선 1999년 이후를 ‘현대산업개발의 제2 도약기’로 보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현재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직을 맡고 있다.

정주영 회장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그의 두 아들인 정몽진 KCC 대표이사 회장, 정몽익 대표이사 사장 3부자가 모두 용산고 동문인데, 정몽규 회장과 정몽익 사장은 사촌지간이며 동기동창이다.

19회 김창근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을 맏형으로 윤석경 SK건설 부회장(21회), 김철규 전 SK텔링크 사장(22회) 등이 SK그룹 내 대표적인 용산고 인맥이다.

용산고 출신 현직 CEO 중 최고령은 대웅제약 윤영환 회장이다. 윤회장은 1934년생으로 용산고 4회 졸업생이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보다도 2회 선배인 윤회장은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과도 동기동창이다.

재계·학계 등 다방면에서 위용 과시

고 박태준 전 포항제철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2대 회장에 올랐던 황경로 전 포철 회장은 군 생활 중 경리장교로서 상관인 박회장과 만난 인연으로 그 후 박회장을 측근에서 꼼꼼하게 보좌했던 전문경영인이다.

현대자동차 최초의 전문경영인을 지냈던 이양섭 엠에스오토텍 회장은 8회 졸업생으로 현재 용산고 동문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모교 사랑이 깊다. 이회장은 자동차업계에만 40년간 몸담은 전문가이다.

또, 임창빈 창텍스트레이딩 회장은 미국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세계한상대회 초대 회장으로 카펫 원료를 공급해 연간 1천2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표적인 한상(韓商)이다.

용산고 출신의 또 다른 기업인으로는 임충헌 한국화장품 대표이사 회장(10회), 김영창 우진산전 사장(11회), 홍종만 넥센타이어 회장(14회), 정희용 청석엔지니어링 회장(15회), 경규한 리바트 대표이사 사장(17회), 이세용 태원전기산업 회장(19회), 강교식 부영 사장(21회), 현만영 아이마켓코리아 사장(21회), 주우환 코리아세븐 사장(22회), 배중호 국순당 대표이사 사장(22회), 임종순 웅진홀딩스 사장(27회) 등이 있다.

용산고 출신 법조인 중에는 김주환 전 대법관, 함정호 전 대한변협 회장, 조대현 전 헌법재판관 등 대선배를 이어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강일원 서울고법 부장판사, 성백현 서울고법 부장판사, 임종헌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이중제 창원지검 마산지청장이 있다.

한시와 시조에 능해 공직에 있을 때도 수많은 명문(名文)을 남겼던 송종의 전 법제처장도 용산고 출신이다. ‘밤나무 검사’로 익히 알려진 송 전 처장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김영삼 정부의 마지막 법제처장으로 관직을 떠난 후 변호사 개업을 마다하고 충남 논산 양촌리의 ‘천고재(天古齋)’라 이름 붙인 집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고 있다. 여러 차례 법무부장관 물망에도 올랐던 그이지만, 지금은 밤나무와 딸기를 가꾸며 영농에 몰두하고 있다.

학계에는 김병식 초당대 총장, 노건일 한림대 총장, 박준영 을지대 총장, 윤대원 일송학원(한림대) 이사장이 있다. 노건일 총장은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내무 관료로 충북도지사, 청와대 행정수석, 교통부장관을 역임하고 관계를 떠난 후 인하대 총장을 지냈으며 올봄에 한림대 총장으로 초빙되었다. 윤대원 이사장은 한림대 설립자인 고 일송 윤덕선 박사의 장남이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하고 외과의사로 일했다. 윤이사장은 고 윤덕선 박사의 유지를 기려 2006년 ‘일송상’을 제정해 매년 의학·교육·사회봉사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인사들에게 수여해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유인촌 전 문화체육부장관에 의해 쫓겨났던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서울문화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복귀했다. 김위원장은 ‘참여정부 인사 표적 해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9월 임기 3년의 문예위원장에 임명된 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12월에 해임되었다.

당시 유인촌 장관이 기금 손실 운영의 책임을 그에게 물은 것이다. 그는 이후 유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2010년 말 해임 처분이 위법하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이사장이 맡은 서울문화재단은 유 전 장관이 2002년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당선인의 인수위에 참여하며 대표로 취임했던 곳이기도 하다.

연예계에는 원로 영화배우 윤일봉씨를 비롯해 박중훈씨, 탤런트 김석훈·김세윤·양택조·이창훈 씨가 있다.

정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이부영 서울대 정치학과 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이이재  명지대 행정학과 국회의원(새누리당·동해 삼척)
이해찬 서울대 사회학과 민주통합당 대표
관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강교식 고려대 경제학과 충북개발공사 사장
김인철 한국외대 행정학과 감사원 감사위원
박긍식 서울대 화학과 한국과학문화연구원 원장
박용현 한양대 정외과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
박우섭 서울대 미생물학과 인천시 남구청장(민주통합당)
박찬우 성균관대 행정학과 소청심사위원장
박해진 고려대 법대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
성무용 연세대 상학과 천안시장(새누리당)
손명수 고려대 정외과 서울지방항공청장
심윤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원장
이영근 고려대 법대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정규남 성균관대 통계학과 통계청 사회통계국장
정일영 연세대 경영학과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최낙정 고려대 법학과 전 해양수산부장관
한원택 성균관대 행정학과 함경남도지사
허재영 고려대 법학과 국토정책연구원 이사장
홍윤식 서울대 법대 국무총리실 국정운영1실장
외교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김병권 한국외대 무역학과 주아르헨티나 대사
김봉현 서울대 언어학과 외교통상부 다자외교조정관
엄기성 성균관대 정외과 주우한 총영사
임재홍 서울대 외교학과 주태국 대사
장시정 서울대 독어교육과 주카타르 대사
재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경규한 서울대 경제학과 리바트 대표이사
권박 서울대 약학과 한국쉐링 사장
김종성 성균관대 체육학과 로케트그룹 회장
김주일 연세대 건축과 금성건설 대표이사 사장
김창근 연세대 경영학과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
박선근 서울대 약대  대원제약 사장
박승하 한양대 금속과 현대제철 대표이사 부회장
박진호 서울대 항공공학과 에넥스 대표이사 사장
배중호 연세대 생화학과 국순당 대표이사 사장
신충식 고려대 사학과 NH농협은행장
신택중 서울대 금속과 일진다이아몬드 부사장(CTO)
유흥수 고려대 경제학과 LIG투자증권 사장
윤영환 성균관대 약학과  대웅제약 회장
임충헌 고려대 생물학과 한국화장품 대표이사 회장
장기택 서울대 법대 밀레니엄서울힐튼 사장
장치혁 단국대 법정대 전 고합 회장
정몽규 고려대 경영학과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익 고려대 경영학과 KCC 대표이사 사장
정몽진 고려대 경영학과 KCC 대표이사 회장
정상영 동국대 법대 KCC 명예회장
정회동 서울대 경영학과 솔로몬투자증권 사장
조수인 서울대 전자과 삼성디스플레이 OLED부문 사장
한상범 연세대 요업과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사장
홍종만 연세대 경제학과 넥센타이어 부회장
법조계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강민구 서울대 법대 서울고법 부장판사
강승준 서울대 법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강일원 서울대 법대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정원 서울대 법대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김홍준 고려대 법학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문준필 고려대 법대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배호근 서울대 법대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성백현 서울대 법대 서울고법 부장판사
송종의 서울대 법대 전 법제처장관
이중제 한양대 창원지검 마산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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