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1번지’ 영토는 더 넓어졌다
  • 이규대 기자 · 윤명진 인턴기자 ()
  • 승인 2012.08.1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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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목동·중계동 현장 취재 / 학원 폐업 러시는 착시 현상…밀집 현상 사라졌을 뿐 주변부로 확산

서울 오목교역 일대 학원가. ⓒ 시사저널 최준필

‘사교육 1번지’가 붕괴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최근 들어 부쩍 자주 회자된다. 서울 대치동과 목동, 중계동은 대형 종합 학원에서부터 중소형 학원, 교습소 등이 밀집된 ‘대한민국 사교육 특구’로 유명하다. 쉽게 꺼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사교육 열풍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곳들이다. 그런데 이곳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하나 둘씩 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에서는 “현 정부의 사교육 억제 정책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다”라는 자찬을 늘어놓기도 한다. 과연 사교육은 정말 위축되고 있는 것일까. <시사저널>이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과 목동, 중계동 현지를 집중 취재했다.

결론적으로, 사교육은 아직 건재했다. 다만 그 형태만이 변했을 뿐이다. 오히려 학원가의 분포도는 훨씬 더 넓어졌고, 방식도 더 다양해졌다. 그러다 보니 과거처럼 ‘대치동’과 같은 특정 지역에 집중되었던 학원 밀집 현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현상이 마치 학원가가 와해되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취재진이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찾은 지난 8월14일. 여름 방학을 맞은 학원가는 여전히 학생들로 넘쳐났지만, 분명히 과거와는 다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우선 큰길을 따라 걷다 보면 크게 ‘임대’라고 써 붙인 상가 건물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최근 학원을 폐업하고 사무실을 임대로 내놓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기 때문이다. 한때 성황리에 운영되었던 ㄷ영어학원은 최근 문을 닫고 35평 규모의 사무실을 임대로 내놓았다. 주인 없는 사무실 안에는 아직 처분하지 못한 책걸상이 쌓여 있었다.

학원 규모를 줄이는 경우도 많다. 한때 건물 5개 층을 사용했던 대형 학원 ㅅ아카데미는 최근 층 하나를 통째로 줄였다. 강의실이 있던 60평 규모의 2층을 임대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비어 있다.

이에 대해 한 부동산업자는 “요즘 학원들이 맥을 못 춘다. 폐업하는 곳이 많고, 비어 있는 사무실도 꽤 된다. 과거에는 그 자리에 곧바로 새로운 학원이 들어왔는데 요즘은 다르다”라고 말했다.

원인은 학생 수 감소였다. 이 지역 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학원가의 학생 수는 지난해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의 학생 수는 예년의 80% 정도라는 것이다. 대치동의 이런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학원 시장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 학원가. ⓒ 시사저널 최준필

해당 지역 학생들, 사교육을 ‘필수’로 인식

중계동과 목동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지역 학원 관계자들은 “예년에 비해 학생수가 20~30% 정도 줄었다” “지금 학원가가 과거에 비해 불황인 것은 사실이다”라는 공통된 반응을 보였다. 다만, 대치동처럼 임대 매물이 많이 나오는 등의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중계동 은행사거리에 위치한 학원들의 경우, 일부 문을 닫은 학원이 눈에 띄었으나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학원들이 폐업보다는 규모를 축소하는 쪽을 택했기 때문이다. ㅅ부동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학원 규모를 축소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예 문을 닫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권리금이 많이 떨어지는 등의 변화는 있지만, 학원 매물이 나오면 거의 곧바로 나간다”라고 말했다. 다소 위축되기는 했으나, 아직 학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요는 유지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목동 학원가는 세 지역 중 사정이 가장 나았다. 문을 열지 않은 학원이 더러 눈에 띄기는 했으나, 임대 매물로 나오거나 비어 있는 사무실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과거에 비해 어려워진 부분은 있지만 학원 문을 닫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안정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지역 부동산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에 대해 ㅇ영어학원의 한 강사는 “이 동네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어머님이 많다. 그런 탓에 사교육과 관련해서는 외부 요인에 흔들림이 없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학원 경기가 위축된 것은 최근 주요 학원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왜 대치동에만 공실이 많이 생기는 것일까. 이는 대치동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 ㅁ보습학원의 한 아무개 원장은 “요즘 학원 매물이 늘어나는 것은, 과거보다 수입이 줄어든 학원 소유주들이 땅값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어 있던 강남 노른자위 지역에 굳이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일선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이 확대된 탓도 있다. 학교에서 늦게까지 수업을 받은 후 바로 동네 학원으로 향하는 경우가 늘어나다 보니, 강남 지역 전반의 사교육 수요를 끌어오던 대치동의 입지상 장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치동의 학원 ‘공급’이 여타 지역으로 확대된 정황도 나타났다. ‘사교육 1번지’의 영토가 넓어진 꼴이다. 대치동 ㅎ부동산 관계자는 “예전에는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학원업자가 대치동으로 진입하는 사례가 많았다. 대치동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그런 사례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대치동에서 송파, 판교, 용인 쪽으로 장소를 옮기는 사례가 더 많이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즉 폐업한 학원 중 일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강남 주변부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볼 때, 대치동 학원가에 공실이 늘어나는 표면적 현상만 가지고 학원 시장이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취재 과정에서 접한 학생들의 반응은 ‘학원 위기론’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집이 수서동이라고 밝힌 경기고 1학년 이 아무개군(17)은 “3개의 학원을 다니고, 집에서는 2개의 과외를 더 한다. 주변 친구들도 5개 정도 학원과 과외를 하는 것이 대세이다”라고 말했다.

진선여고 2학년에 다니는 장 아무개양(18)은 “여전히 대치동이 (학원가로) 활성화되어 있다. 친구 중에는 8개까지 다니는 경우도 있다.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4~5개 정도의 학원을 다닌다”라고 말했다. 도곡동에서 온 김 아무개양(18)도 지금 3개의 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김양은 “대치동 학원가가 위축되었다는 것을 잘 못 느낀다. 이 근처에 살아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닌다. 나처럼 3개 정도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취재진이 만난 대다수 학생은 학교에서 사교육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현 정부의 사교육 억제 정책이 제대로 된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현지 관계자들 중에는 고개를 젓는 이가 많았다. 수능보다 내신의 변별력이 강조되는 정책, 입학사정관제 등 입시 전형을 다양화하는 정책 등은 기존 스타일의 학원 사교육을 위축시킨 대신, 실제는 또 다른 사교육을 팽창시키는 ‘풍선 효과’를 낳고 있었다.

주요 학원가로부터 벗어난 곳에서 국어강사로 일하는 김 아무개씨(29)는 “주요 학원가의 사정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학원 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2004년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목동, 미아삼거리 등지에서 학원 강사로 일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금은 서울 삼성역 부근의 소규모 보습학원에서 일한다. 김씨는 “2008년부터 수능 사교육을 견제하고 내신을 강조한 사교육 억제책이 시작되었다. 특히 지난 2010년에는 국정 교과서가 없어지면서, 학부모들은 각 학교의 교과서에 집중한 ‘맞춤형’ 수업을 해주기를 원했다. 이런 변화에 맞춰 학원들이 진화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진화한 사교육의 새 트렌드는 ‘관리’였다. 대형 학원에서 단순히 강의식 수업을 하는 것을 넘어, 공부 스케줄 및 진학 상담 등을 포함해 모든 학습을 소규모 밀착형으로 관리해주는 것이다. 지금 김씨가 있는 학원에는 인근 4개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온다. 각 학교의 과목마다 선생님이 따로 있다. ‘ㄱ중 국어’ ‘ㄴ중 수학’과 같은 식이다. 한 선생님이 2~3명을 대상으로 밀착 수업을 한다. 이렇듯 학교 내신을 겨냥해 세분화·전문화한 학원이 새롭게 각광을 받으면서, 예전만큼 주요 학원가로 갈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흐름은 대치동 등 주요 학원가로 이미 침투한 지 오래다. ‘자기 주도적 수업’ ‘과외식 수업’을 표방하며 소규모 그룹 과외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학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맞춤형’ 학원·과외 새롭게 각광받아

개인 과외 사업자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현행법상 대학생 및 대학원생이 아닌 이가 과외 수업을 하려면 별도의 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 말 3만6천여 개 수준이었던 개인 과외는 약 5년 만에 7만7천여 개(2012년 6월 기준)로 급증했다. 과외가 대학생들의 전유물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학원강사 경력이 있는 전문 인력이 과외 시장에 대거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중계동 주공6단지 아파트에서 수학 과외 수업을 진행하는 한 과외교사는 “요즘 과외가 일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과외는 아무래도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하지 않나.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맞춤형으로 가르쳐주는 것을 요즘 학부모들이 원한다”라고 말했다. 그도 최근까지는 학원 강사로 일했던 인물이다.

다양화한 입시 전형에 ‘맞춤형’인 학원 및 과외들도 새로이 각광을 받고 있다. 대전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정 아무개양(16)은 방학을 맞아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 정양은 민족사관고(민사고) 진학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대전에 있어서는 도저히 목표를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상경했다고 했다. 서울 학생들과 같은 ‘스펙’을 갖추려면 체계적인 사교육을 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양은 “과거에는 민사고가 ‘영재 판별 검사’를 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사교육 정책이 바뀌면서 그것이 면접으로 대체되었다.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 민사고 면접 전문 학원을 다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특정 방식의 전형에 특화된 맞춤형 학원들이다.

이런 형태의 학원이나 과외에서는 여전히 대치동이 독보적인 위치를 갖고 있다. 목동의 ㅎ종합학원 관계자는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사교육의 경우, 어떤 학생이 뽑히는지 기준이 학교마다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거기에 대한 정보를 모아 관련 상품을 끊임없이 뽑아내고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고액이다”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의미의 학원이 주춤하는 사이, 뒤바뀐 교육 정책에 맞게 진화한 새로운 사교육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치동이 발 빠르게 적응하면서 ‘대형화’에서 ‘내실화’로 진화하고 있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교육의 현장은 여전히 막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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