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추스른 일본차 ‘대반격’ 시동 걸었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8.26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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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대규모 리콜, 일본 대지진, 태국 홍수 등 잇단 악재에 시달리며 악전고투하던 일본 자동차업계가 부활의 날개를 펴고 있다. 토요타와 혼다, 닛산 등 주요 업체들은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차들이 주춤하는 사이 미국 시장에서 쾌속 질주했던 현대·기아차 앞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혼다는 4월5일 뉴욕 모터쇼에 2013년형 크로스오버 차량을 선보였다. ⓒ AP연합

일본 자동차 3사가 다시 아우토반에 올라탔다. 갖가지 악재 탓에 악전고투하던 일본 자동차업체가 올해 들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대규모 리콜, 일본 도호쿠 대지진, 태국 홍수, 엔고(高) 같은 악재가 잇따르면서 토요타, 혼다, 닛산은 성장 궤도에서 벗어나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했다. 일본차가 주춤하는 사이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국·유럽·중국·인도 시장에 새 모델을 잇달아 투입하며 치고 나갔다.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일본차의 시장 점유율이 추락하는 와중에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은 치솟았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한때 9.4%까지 올랐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미국의 시장 수요는 올해 1천6백만대까지 회복되었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마이너스 7% 성장한 토요타는 올해 1~7월 28.3% 성장했다. 혼다는 18.9%, 닛산은 14.7% 성장했다. 세 업체 모두 시장 평균 성장률 14%를 넘어섰다. 수익성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혼다는 영업이익률 7.2%를 기록해 실속을 챙겼다. 토요타는 6.4%, 닛산은 5.6%를 기록했다. 지난 2002년 달러당 1백25엔이던 엔화 가치는 올해 1분기 달러당 80엔까지 치솟았다. 엔화 가치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나빠진 것을 감안하면 일본 자동차 3사의 수익성 개선은 의미가 크다. 자동차 한 대당 영업이익은 토요타가 1백65만원, 혼다가 1백45만원, 닛산이 1백14만원을 기록했다. 토요타와 혼다의 대당 영업이익은 지난 2009년 이래 최고치이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업체와 비교하면 아직 모자라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2백8만원과 1백81만원의 대당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다.

토요타는 일본 자동차업계의 맏형답게 빠르게 세계 시장 지배력을 회복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 2백35만7천대를 팔았다. 분기 판매량으로는 사상 최대이다. 수익성도 눈에 띄게 나아졌다. 2분기 영업이익률은 6.4%까지 올랐다. 4년 만에 6%대로 복귀한 것이다. 엔화 가치가 30%나 치솟았으나 토요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회복이라기보다 쾌속 질주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토요타는 2007년 회계연도(2007년 4월~2008년 3월)에 8백81만대, 2008년 회계연도에 8백91만대를 팔아 연간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미국 GM까지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업체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규모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탓에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지난 2008년 9월 파산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사지 않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엔화 가치가 치솟았다. 대규모 리콜 사태까지 터지면서 영업력까지 훼손되었다. 토요타는 2009년 6백67만대를 팔았다. 판매량이 1년 만에 2백24만대나 줄어들었다. 25% 넘게 역성장한 것이다. 2010년에 살아나는가 싶더니 2011년 초 일본 도호쿠 지방 대지진이 터졌다. 토요타는 다시 주저앉았다. 지난해 2분기에는 1백22만1천대까지 판매량이 줄어 최악의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2011년 한 해의 판매량이 6백69만대에 그쳐 2010년 7백56만대에서 다시 6백만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토요타는 올해 들어서자마자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분기에도 2백26만9천대를 팔면서 세계 자동차 1위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매출액도 1, 2분기에 각각 5조7천억 엔과 5조5천억 엔을 넘겼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0% 가까이 성장했다. 판매량이 눈에 띄게 개선된 곳은 북미 시장이다. 지난해 평균 분기 판매량은 43만8천대까지 줄어들었으나 올해에는 63만4천대까지 늘어났다. 13%까지 떨어졌던 시장 점유율은 13.8%까지 회복되었다. 아시아 지역의 판매량은 2009년보다 두 배 이상 폭증했다. 5%까지 떨어졌던 중국 시장 점유율은 다시 오르고 있으나 유럽 시장 점유율은 4%에서 바닥을 다지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영업 비용은 풀어야 할 과제

토요타는 올해 초 북미국제오토쇼에서 렉서스 신형 모델을 언론에 공개했다. ⓒ AP연합
판매량이 늘어나자 생산량도 회복되고 있다. 토요타는 올해 상반기에 4백64만6천대를 생산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0% 늘어났다. 엔화 가치 강세 탓에 일본 내 생산은 줄이고 해외의 현지 생산 비중을 늘린 것이 주효했다. 지난 2008년 40%에 불과했던 해외 생산 비중이 올해 상반기에는 50%까지 커졌다. 생산량과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지난 2분기 토요타의 영업이익률은 6.4%까지 올랐다. 4년 만에 6%대로 복귀한 것이다. 토요타는 지난 2007년 분기 영업이익률 9~10.4%를 자랑했다. 그러다가 2009년에 마이너스 3.7%로 적자 전환했다. 영업이익률은 올해 1분기에 4.2%로 회복세를 보이더니 2분기에는 6.4%로 치솟았다.

강상민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경쟁사 입장에서 토요타의 최근 실적은 편치 않다. (토요타는) 엔고 환경에 양호하게 적응하고 있고, 연구·개발(R&D) 투자도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연구·개발 투자 위축은 성장 잠재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 지난 2010년 토요타의 연구·개발비는 2007년에 비해 30%나 줄었다. 올해 다시 분기 평균 2천억 엔을 넘어설 것으로 보여 본격 회복되는 흐름이다. 윤필중 삼성증권 연구원은 “토요타가 오랜 부진에서 벗어나는 것은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차에게는 적지 않은 위협 요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색스비 챔블리스 미국 조지아 주 상원의원(왼쪽)과 함께 기아차 조지아 주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제공
혼다는 올해 4~6월 영업이익 1천7백60억 엔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6백80% 성장했다. 혼다는 ‘어스드림스(Earth Dreams)’라는 새 엔진 시스템을 신형 어코드에 장착한다. 직분사 방식에다 무단 변속기를 채택해 기존 모델보다 연비가 10% 개선된다. 혼다는 앞으로 3년 안에 모든 양산 차종의 연비를 세계 1위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술의 혼다’라는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포부이다. 이로 인해 혼다는 미국 오하이오 공장에 직분사 엔진과 무단 변속기 부품을 양산하기 위해 6억 달러를 투자한다. 혼다는 또, 미국 인디애나 공장의 생산 능력을 5만대 늘린다.

일본 자동차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영업 비용이 현대차나 기아차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 토요타는 현대차보다 두 배나 많은 판매 인센티브를 자동차 판매상에게 제공하고 있다. 현대차가 판매 인센티브를 자동차 한 대당 8백68달러로 책정한 것과 달리 토요타는 1천7백68달러나 지급하고 있다. 인센티브 금액이 많아지면 그만큼 영업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해 수익성이 떨어진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제값 받기’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 업체가 벌이는 물량 공세에 품질 향상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11%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거둬 세계 2위에 올랐다.  

현대차는 올해 초 북미 국제오토쇼에서 제네시스 쿠페 개조차를 공개했다. ⓒ 연합뉴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에 8.1% 성장했다. 전 세계 자동차 수요 성장률 4.5%를 넘어선 것이다. 상반기에만 2백18만대를 팔았다. 하반기에도 2백12만대를 팔아 올해 4백29만대 판매가 무난할 듯하다. 영업이익 성장률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62% 올랐다. 전 세계 생산 능력은 4백42만대까지 늘어났다. 기아차의 미국 조지아 공장은 9~10월 2교대에서 3교대 체제로 바꿔 7만대가량을 추가로 생산할 방침이다. 터키 공장은 10만대에서 20만대로 생산 능력을 늘린다. 지금처럼 가동률이 1백8~1백9%를 유지하면 5백만대까지 생산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나 기아차는 생산 능력을 늘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생산 물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7월 말 글로벌 재고량이 1.8개월분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재고량은 2개월분이었다. 이 탓에 미국 시장은 올해 상반기 14.8% 성장했으나 현대차는 10.5% 성장하는 데 그쳤다. 현대차는 올해 6월 해외 생산 비중을 54.7%까지 늘렸다. 2008년 해외 생산 비중은 40%에 불과했다. 

현대차의 미국 현지 딜러가 고객에게 현대차 모델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제공
상당수 미국 시장 전문가는 현대·기아차가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서 선전한 것을 ‘호랑이 없는 곳에서 여우가 왕 노릇했다’고 과소평가한다. 일본 자동차업계가 종이 호랑이로 전락한 틈을 타 한국 자동차업체가 빈자리를 꿰찼다는 것이다. 이제 호랑이가 원기를 회복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의 한·일전은 이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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