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 금지에 의한 교회 쇄신을 기대한다
  • 성병욱 ()
  • 승인 2012.09.0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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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이라면 세습이 자연스럽지만 공화국에서는 웃음거리, 조롱 대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3대 세습이 세계인의 눈에 기괴하게 비치는 이유이다. 10여 년 전부터 갑자기 눈에 띄기 시작한 우리나라 대형 교회의 세습 풍조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창피스럽고, 일반 사회인들에게는 교회가 본이 되기는커녕 조롱과 지탄 대상이 되는 요인이다.

우리나라 대형 교회 세습의 효시는 서울 강남의 충현장로교회였다. 1997년 김창인 목사가 뒤늦게 신학을 공부한 아들 김성관 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운 것이다. 아버지 김원로목사는 얼마 전 “아들에게 교회를 맡긴 것이야말로 일생일대의 실수이다”라고 공개적으로 회개했다.

그 후 감리교에서도 2001년 대표적 대형 교회인 광림교회, 2008년 금란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이 아들에게 승계되었다. 두 교회 원로목사의 동생이 시무해온 임마누엘교회도 세습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장로교 대형 교회인 소망교회도 분당에 약 100억원을 들여 곽선희 목사 아들에게 교회를 세워주었다. 서울 명일동의 대형 장로교회도 아들로의 세습이 거의 확정 단계이다.

인천 숭의교회는 할아버지, 아들을 거쳐 손자로 3대에 걸쳐 담임목사직이 이어졌다. 서울 신정동의 대한교회는 목사에게 아들이 없어 사위에게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경향 각지에서 규모 큰 교회에서 적지 않게 목회 세습이 이루어졌거나 진행 중이다. 물론 미자립 교회나 농어촌의 상황이 어려운 교회에서라면 자식이 대를 이어 목회를 하는 것은 자기를 희생하는 감동적인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습이 문제 되고 있는 대형 교회에서 세습 목회는 담임목사직뿐 아니라 돈, 명예, 권력을 자녀에게 세습하는 일이 된다. 큰 교회로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해 자녀에게 특혜를 주자는 발상에는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신앙 공동체라는 기독교의 신앙 고백과는 달리 물적 공간으로 보는 물신주의와 잘못된 사유(私有) 의식이 깔려 있다.

목회 세습은 공정 경쟁 원칙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도 하다. 세습이 문제 된 대형 교회라면 목회자만도 수십에서 100여 명에 이른다. 수많은 목회자를 이끌 담임목사라면 오랜 목회 경험과 공부로 연마된 중진 목사 중에서도 경쟁을 거쳐 청빙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자녀에게 넘겨주자고 이런 경쟁 기회를 원천적으로 빼앗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감리회가 장정(교회법) 개정위에서 부모와 자녀 또는 자녀의 배우자가 연속해서 동일 교회를 담임할 수 없으며, 부모가 장로인 교회에서 장로의 자녀가 담임할 수 없도록 개정안을 마련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이 개정안은 9월 중순에 소집될 총회입법의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광림교회 목회 세습 후 세습 금지 문제가 처음 논의되었을 때는 목회자 자녀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어 부결되었었다. 그때와 달리 이번 장정 개정위에서는 반대 없이 목회 세습 금지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난 4년간 감리교단의 표류에 대한 반성과 겹쳐 개혁안 통과에 대한 조심스런 기대가 느껴진다.

요즘에는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얘기를 교회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다.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의 통렬한 회개와 교회의 갱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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