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아닌 ‘여성’을 그리다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2.09.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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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디>, 버마 민주화 이끈 아웅산 수치 여사의 삶과 사랑 그려

영화
어린 딸을 안은 아버지. 딸은 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 조르고, 아버지는 아이에게 영화로웠던 ‘버마’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잠시 후, 아버지는 살해당한다. 국민투표를 논의하던 자리였다. 오열하는 어머니 옆에 평화롭게 잠들어 있던 어린 딸은 자라서 영국의 평범한 가정주부가 된다. 영화 <더 레이디>의 시작이다.

<더 레이디>는 버마 민주화의 영웅이자 현역 국회의원인 아웅 산 수치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프랑스 감독인 뤽 베송이 그의 생애에 감명받아 만들었단다. 

장군의 딸에서 여성학자로,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아내로, 그리고 다시 조국의 민주화 영웅으로 변모해온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다’는 수식어로도 묘사하기 어려운 깊이를 갖는다. 그러므로 애초에 2시간여의 러닝타임 안에 그의 삶이 가진 의미가 모두 담길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터이다.

영화는 수치의 삶을 비교적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지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수치가 아니라 그의 남편 마이클 에어리스이다. 실제로 수치의 정치적 신념을 지지하고 그의 연금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1998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삶 역시 드라마틱하기는 매한가지다. 영화는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카메라는 계속 버마와 영국을 오가고, 수치의 상황과 에어리스의 상황이 나란히 묘사된다. 그런 면에서 영화 <더 레이디>는 한 나라의 민주화 영웅 이야기이기보다는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남녀의 러브스토리에 가깝다. 영화 속 수치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피상적이다. 영화 <더 레이디>가 그리는 수치는 민주화를 염원했던 아버지의 딸이자 가족을 아끼는 여성일 뿐이다. 가족을 포기하고 국가를 선택해야 했던 그의 고뇌는, 애틋하기만 한 부부애에 가려 증발되었다.

감독은 영화 <더 레이디>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프로젝트를 모두 미뤄두고 2년을 매달렸을 정도로 작품에 애정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애정만으로는 걸작을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다.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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